기계와 소통하는 시대 여는 열쇠, ‘소프트웨어’ 연구에 있다

이정호 기자 2023. 4. 23.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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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성호 한국전기연구원 책임연구원

태어난 지 아직 5년도 안 된 둘째 아이가 말하는 것을 듣고 있다 보면, 어찌 저 작은 입으로 저렇게 조잘조잘 말을 잘할까 하는 생각이 든다. 하루 동안 자신에게 있었던 일들을 자기 나름의 언어로 표현하는데, 가끔 단어나 문장 구조를 생각하려고 멈칫하기는 하지만 자연스럽게 의사소통하기에는 어려움이 거의 없다.

휴대전화에 찍어둔 2~3년 전 아이의 영상에서는 단어를 나열하거나 짧은 문장으로만 대화를 했는데, 이제 접속어로 중문을 만드는 것은 물론이고 나름의 농담까지 섞어가며 아빠를 놀리기도 하는 것을 들어보면, 그 단계적 발달 속도에 놀라지 않을 수 없다.

그런데 최근 기술 발달 추세를 보면 지능은 사람만 갖춘 게 아닌 시대로 나아가는 듯 보인다. 필자는 최근 이사를 하면서 신혼 때 구입해 12년 사용했던 세탁기를 버리고 새 세탁기를 장만하게 됐다. 크기가 대형화하고 색상 등 디자인이 고급화한 것 외에는 제품이 크게 진화한 것을 바로 느낄 수가 없어 좀 의아했다. 하지만 주문한 세탁기가 집에 설치되던 날, 확실히 이전과는 달라진 성능을 마주할 수 있었다.

최근 가전기기들은 하드웨어보다는 소프트웨어 측면의 발전으로 각종 기능이 다양해지면서 전체적으로는 ‘지능화’ 경향을 띠는 듯 보인다. 이번에 구매한 세탁기는 비슷해 보이는 세탁물을 넣어도 재질을 인식해 적절한 세탁 방법을 스스로 선택할 수 있다고 한다. 이뿐만 아니라 설치 기사의 안내에 따라 몇 가지 조작을 하고 나니 휴대전화를 통해 원격에서도 작동 상태 모니터링이 가능했다.

게다가 이 ‘녀석’은 휴대전화 애플리케이션(앱)을 통해 자꾸만 말을 걸어온다. 물론 “빨래가 곧 끝납니다, 바로 건조를 해 보시면 어떨까요” 또는 “문제가 생겨 작동이 정지되었습니다”처럼 계속해서 이어갈 수 있는 대화라기보다는 어떠한 행동이나 조치를 요구하는 문장이 대부분이다. 하지만 말 한마디 못하고 시키는 대로 일만 해주던 이전 세대 세탁기에 비하면 엄청난 발달이고 진화다. 조금 더 시간이 지나면 세탁물의 디자인 등을 감지하고 옷차림이나 생활패턴에 대한 조언을 할지도 모르겠다.

이처럼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기기들의 소프트웨어적인 측면이 진화하면서 기기들과의 소통이 점차 익숙해지는 것 같다. 운전하다가 음악이 듣고 싶으면 말로 명령하고, 소파 사이 어딘가에 끼어 보이지 않는 리모컨을 찾을 필요 없이 말로 채널을 고르는 시대가 됐다.

특히 2016년 구글의 알파고와 한국 바둑기사 이세돌의 대국 이후, 인공지능(AI) 등 관련 기술이 급격하게 발달하고 있는데, 머지않아 컴퓨터 앞에 앉아 타이핑하지 않고 말로 칼럼을 작성하고 있는 나 자신을 볼 수도 있을 것 같다.

정보경제학 분야 권위자인 에릭 브린욜프슨과 앤드루 맥아피의 저서 ‘제2의 기계시대’가 출판된 지도 거의 10년이 돼 간다. 그들은 제1의 기계시대가 하드웨어적인 측면이었고, 제2의 기계시대는 소프트웨어적인 측면이 중심이 될 것이라고 이야기했다. 실제로 최근 한국전기연구원에서 수행하고 있는 주요 연구개발 주제와 내용을 살펴보면, 예전처럼 하드웨어 측면의 연구개발(R&D)도 물론 있지만, 소프트웨어 측면의 R&D가 증가하는 추세를 보인다. AI 기술을 접목한 R&D로 실현한 전기산업 기기·시스템과의 소통을 통해 지금보다 효율적이고 안전한 사회를 만들어 갈 수 있기를 소망해 본다.

이정호 기자 ru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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