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인기, 이런 데에도 쓴다…고래 위에서 ‘왱왱’ 댔던 이유 알고 보니

이정호 기자 2023. 4. 23.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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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연구진이 멕시코 해역에 띄운 무인기가 지난해 초 흰수염고래 위에서 ‘전자 꼬리표’를 투하하기 위한 준비를 하고 있다. 전자 꼬리표는 고래의 등에 달라 붙어 고래가 헤엄치는 위치와 수심, 수온 등을 감지한다. 무인기로 전자 꼬리표를 투하하면 배를 타고 사람이 고래에게 바짝 접근해 직접 꼬리표를 붙이지 않아도 돼 충돌사고 위험이 사라진다. 오션 얼라이언스 제공

#길이 수십m짜리 고래 한 마리가 깊은 물 속에서 해수면으로 천천히 부상한다. 파란 바닷물에 고래의 윤곽이 언뜻언뜻 비칠 정도로 수면과의 거리가 좁혀진다. 이 상황을 소형 무인기(드론)가 제자리 비행을 하며 지켜본다.

그러다 갑자기 고래가 힘차게 떠오르며 등이 수면 밖으로 노출된 순간, 무인기에서 뭔가가 툭 떨어진다. 500㎖짜리 생수병만 한 이 물체는 고래의 등에 찰싹 달라붙는다. 고래는 지느러미를 천천히 움직이며 이 물체를 등에 단 채 물 속으로 사라진다.

이 모습은 최근 미국 연구진이 인터넷에 공개한 신개념 고래 연구 기술의 시연 장면이다. 기술의 핵심은 고래가 어떤 환경에서 헤엄치는지를 알아내는 장비인 ‘전자 꼬리표’를 공중에서 고래 등을 향해 떨어뜨려 붙이는 데 있다. 대단하지 않은 아이디어 같지만, 사실은 그렇지가 않다. 지금까지 과학계는 이런 전자 꼬리표를 부착하려고 고래와의 ‘충돌사고’ 위험을 감수해왔다. 사람이 배를 몰고 가 손이 닿을 정도로 고래에게 바짝 접근해 전자 꼬리표를 등에 박는 방법을 썼기 때문이다.

고래 연구하려다 충돌사고 위험

미국 해양대기청(NOAA)과 고래 보호 비영리단체인 ‘오션 얼라이언스’ 등에 소속된 연구진은 고래의 행동과 생태를 연구하기 위해 무인기를 동원하는 방법을 고안했다고 최근 발표했다. 연구 결과는 국제 학술지 ‘로열 소사이어티 오픈 사이언스’ 최신호에 실렸다.

고래는 숨을 쉬려고 물 밖으로 몸을 내밀기는 하지만 하루 중 95%를 물 속에서 보낸다. 이 때문에 과학계는 고래가 물 밖으로 나오는 순간을 잡아내 몸에 전자 꼬리표를 부착하는 방식으로 연구 자료를 얻는다. 전자 꼬리표는 고래가 활동하는 위치와 수심, 수온 등을 알아내 물 밖으로 전송하는 미니 컴퓨터다. 고래의 서식 환경을 쉽고 정확하게 알아낼 수 있다.

문제는 전자 꼬리표를 고래 몸에 부착하는 방식이다. 지금은 사람이 수면에 다가온 고래를 기동성이 좋은 배를 타고 추격하다가 총이나 긴 대롱를 닮은 도구로 바늘이 달린 전자 꼬리표를 발사해 몸에 박는다.

이렇게 하려면 고래에게 수m까지 접근해야 한다. 충돌 가능성이 크다. 고래도, 사람도 다칠 수 있다. 실제 충돌하지 않아도 고래는 사람의 접근 자체가 달갑지 않다. 사람이 탄 배의 엔진에서 나오는 소음, 그리고 그들이 자신의 몸에 박으려는 뾰족하고 따끔한 꼬리표가 모두 스트레스다.

지난해 초 멕시코 해역에서 한 고래 연구자가 무인기를 하늘에 띄울 준비를 하고 있다. 무인기에는 바닥에 고성능 흡착판을 단 ‘전자 꼬리표’가 탑재돼 있다. 오션 얼라이언스 제공
공중 투하식 흡착판으로 해결

연구진이 내놓은 해결책은 간단하다. 고래와 수백m 떨어진 거리에서 무인기를 조종해 전자 꼬리표를 고래의 등에 떨어뜨리면 그만이다. 수송기가 보급품을 투하하는 것과 비슷하다. 사람이 고래 가까이 접근할 필요가 없다.

연구진은 이 같은 방식을 멕시코 해역에서 지난해 2월부터 3월까지 흰수염고래에게 시험했다. 흰수염고래는 다 자라면 몸길이가 약 30m, 몸무게는 150t에 달한다.

연구진이 쓴 무인기는 어른이 두 팔로 감싸 안을 정도의 비교적 작은 덩치를 지닌 중국산 상용 기체였다. 시험 기간에 흰수염고래를 향해 무인기가 3~4m 높이에서 전자 꼬리표를 낙하한 횟수는 총 29차례였다. 이 가운데 꼬리표가 등에 잘 달라붙은 횟수는 21차례였다. 성공률이 70%에 달했다.

연구진이 고래를 발견하고 무인기를 이륙시켜 전자 꼬리표를 부착하는 데에는 평균 2분45초 밖에 걸리지 않았다. 이때 사람이 탄 배와 고래의 거리는 평균 490m였다. 전자 꼬리표를 신속하고 손쉽게 부착할 수 있었고, 고래와 사람 모두 충돌 걱정 없이 안전한 거리를 유지했다는 얘기다.

박격포탄처럼 날개 달아 ‘자세 안정’

흥미로운 점은 전자 꼬리표의 모양이다. 연구진은 전자 꼬리표에 고래의 피부에 꽂힐 만한 바늘 같은 뾰족한 물체를 장착하지 않았다. 고래에게 스트레스와 고통을 유발할 수 있기 때문이다.

대신 고성능 흡착판을 사용했다. 욕실에서 비누 거치대를 벽에 붙일 때 쓰는 흡착판과 기본 원리가 같다. 연구진은 전자 꼬리표의 바닥 부위에 흡착판을 4개 달아 지구 중력에 이끌려 떨어지는 힘으로 고래의 등에 달라붙게 했다.

연구진이 고안한 전자 꼬리표는 두 종류였는데, 560g짜리 전자 꼬리표는 비교적 무거워 고래 등에 잘 달라붙었다.

하지만 200g짜리 전자 꼬리표가 문제였다. 너무 가벼워 바람의 영향을 받았고 낙하 자세가 수직으로 유지되는 게 어려웠다. 전자 꼬리표가 수직으로 떨어지지 않으면 고래 등에 빗맞게 돼 잘 달라붙지 않는다.

연구진은 가벼운 전자 꼬리표 후반부에 날개를 달아 문제를 해결했다. 박격포탄처럼 만든 셈이다. 날개가 비행 자세를 안정적으로 유지시켜줘 고래 등에 수직으로 떨어지는 효과를 냈다.

전자 꼬리표는 약 13시간 동안 고래에 붙어 작동할 수 있다. 다만 이번 시험에 사용된 전자 꼬리표는 고래에 부착된 지 1~3시간 안에 자동으로 떨어지도록 고안됐다. 고래의 생태 관찰이 아니라 부착 능력을 알아보는 데 방점이 찍혀 있다.

연구진은 논문을 통해 “향후 이런 새로운 조사 기법을 가능하도록 연구자들에게 광범위한 무인기 조종 훈련이 이뤄져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정호 기자 ru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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