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냐 중국이냐”...당신의 자녀, 어떤세상서 키우겠습니까? [한중일 톺아보기]
조선시대 명재상 서애 류성용은 한반도의 위치에 대해 이렇게 평했습니다. ‘배(腹)와 등(背)양쪽에서 적(敵)이 몰려오는 형국’ 이라는 이 말은 그때와는 비교할 수 없이 부강해졌음에도 한국이 처한 숙명적 대외 현실을 잘 드러내주는 표현입니다.
패권국 미국과 이에 도전하는 중국의 대립을 중심으로 ‘지정학의 귀환’ 이라는 말이 등장했습니다. 양국은 인도·태평양에서 특히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으며 동남아, 즉 아세안에서도 어느때보다 치열하게 경쟁중입니다.
아세안은 중국과 인도를 잇는 대륙국가들이자 해양국가들의 집합으로 태평양과 인도양을 연결하는 해상 요충지 입니다. 때문에 역사적으로 이곳을 장악하는 세력은 절대 우위를 점하곤 했습니다. 포르투갈, 스페인, 네덜란드, 영국, 프랑스, 일본, 미국 등 16세기 이후 패권에 도전했던 나라들이 반드시 동남아에 진출했던 이유이기도 합니다. 전략적 위치로 인해 생기는 힘을 의미하는 ‘위치권력’이라는 말이 아세안 만큼 어울리는 지역도 없죠.
서정인 전 아세안 대사는 현재 한국의 상황이 아세안의 입장과 유사하며, 때문에 그들의 미중 딜레마에 대한 전략을 참고해야 한다고 조언합니다. 아세안과 한국의 전략에 대해 물었습니다. 다음은 일문일답.
그래서 아세안은 자신들이 중심이 돼 주도하는 지역기구를 갖고 있고 이를 통해 어느 한쪽에 올인하지 않겠다는 목소리를 내고 있죠. 이들은 미중에 대해 현실주의적 시각에서 균형, 편승, 헷징 전략을 복합적으로 구사합니다.
이에 반해 한국은 뒤를 받쳐주는 국제기구는 없습니다. 그리고 아세안도 남중국해 안보 이슈가 있긴 하나, 북핵만큼의 생존 이슈가 있는 건 아니죠.
지금 아세안이 실무부터 정상회담까지 다른 나라들과 연간 약 1400회 가량 회의를 합니다. 한국과 하는 회의가 120회 정도 됩니다. 한국이 미중 대립 구도에서 운신의 폭을 넓히려면 아세안을 벤치마킹해 한국 주도의 소다자 협의체를 확대해 가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한미일도 좋고 한중일도 좋습니다. 미중이 모두 참여하고 아세안이 중심이 되는 ARF, EAS 처럼 한국도 에너지, 기후변화, 자유무역, 빈곤문제 등 글로벌 공공재 이슈를 선도함으로써 발신력을 높이고 실질적 기여도 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인태 전략 역시 신남방 정책처럼 아세안을 중시한다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인태 전략이 인도 태평양 지역을 포괄하는 지역전략이라면, 그 밑에 한-아세안연대구상(KASI·카시)은 동남아에 초점을 둔 세부 지역전략 입니다. 인태전략의 비전과 원칙은 한국의 동남아 정책의 방향성을 제시하는 나침판 이라고 보면 되겠습니다.
차이점은 신남방 정책이 경제에만 치중하다 보니 아세안에서 한국에 대해 상인 국가적 이미지를 줬다는 점이아쉬웠다면, 카시는 정치안보 분야까지 포괄하고 있습니다. 아세안과의 관계를 좀 더 깊고 종합적으로 가져가겠다는 점에서 차별화 됐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지금 정부에서 카시 로드맵이 준비중인데, 아세안판 인태 전략인 ‘인도-태평양에 대한 아세안의 관점’(AOIP)과 연결고리를 찾고 시너지 효과를 고려해 설계하는게 필요하다고 봅니다.
그리고 지난해 한-아세안 정상회의때 윤석열 대통령도 인태전략이 특정국가 배제가 아니라고 강조하기도 했습니다. 박진 외교 장관 역시 인태 전략 로드맵 발표때 중국을 협력국으로써 북태평양 카테고리에 포함시켰습니다.
지금까지 한국, 미국, 일본, 영국, 캐나다 등 11개국이 인태 전략을 내놨는데 이중 한국, 아세안, 인도 3개국·지역만이 ‘포용성’을 명기했습니다. 때문에 아세안이 중시해온 ‘열린 지역주의’와 궤를 같이하고 있다고 봐야 됩니다.
그렇지만 미중 문제는 어떤 체제속에서 우리가 살 것인가의 문제와도 직접 연관되는 것입니다. 궁극적으로는 대한민국의 정체성에 대한 문제 이기도 하죠.
한국형 인태 전략의 3대 비전이 자유·평화·번영 입니다. 이 세 가지는 자유 민주주의의 근간을 이루는 것들 입니다. 그런 점에서는 결국 가치판단이 들어갈수 밖에 없는 측면이 있다고 생각됩니다.
경제라는 먹고사는 문제가 매우 중요하죠. 하지만 이것은 추후에라도 회복의 여지가 있다면 안보에 대한 이슈는 자칫 잘못 다뤘다간 국가의 존립 자체가 어려워지게 됩니다. 때문에 미중 양국을 두고 한국인들과 후손들이 과연 어떤 세상, 어떤 체제속에서 살고 싶은지 이런 것들에 대해 잘 생각해서 외교 전략을 가져가야 된다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그리고 외교관으로서 지난 경험을 떠올려 보면 중국도 그렇고 상대국을 오해하는 경우도 많아서 소통을 더 잘 할 필요가 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한국이 이렇게 하면 중국이 저렇게 생각하는게 아니냐 지레짐작 하는 경우도 있거든요. 때문에 우리가 더 긴밀하게 협의하고 소통 할 여지가 있습니다.
또 앞서 언급했듯 한국의 인태전략이 미중에 대해 양자관계로만 풀기엔 한계가 있으므로 중층적인 한-아세안 협의체를 강화해 전략적이고 입체적으로 활용했으면 좋겠습니다. 그런 맥락에서 쉽지 않지만 지금이야말로 어느때보다 스마트 외교가 필요한 때라는 생각이 듭니다.
엄밀히 말해 아세안 10개국 모두는 아니고 베트남, 필리핀, 말레이시아, 브루나이, 인도네시아 5개국이 중국과 분쟁중이라고 보면 됩니다. 그래서 아세안은 남중국해 이슈를 아세안 전체 차원 보다는 중국과의 개별 국가 차원에서 보고 있습니다.
다만 역내 평화와 안정에 대한 우려로 2002년 아세안과 중국간 남중국해에 관한 당사국 선언(DOC)이 채택됐는데 법적 구속력은 없습니다. 그리고 지금은 ‘남중국해 갈등 방지 및 신뢰 구축을 위한 행동 준칙(CoC)’ 체결이 협상 중이죠.
현재 분쟁 당사국 중 가장 강하게 중국에 맞서는 나라는 베트남입니다. 그 다음으로 필리핀이 대립했고요. 특히 2013년 필리핀의 제소로 2016년 헤이그 중재재판에서 중국이 주장하는 9단선을 부정하는 판결이 내려졌지만 중국은 이를 완전히 무시해왔죠.
이후 필리핀은 두테르테 대통령때 경제협력을 위해 중국에 대해 로우키로 접근했는데요. 전반적으로는 베트남, 필리핀 모두 미국과의 전략적 제휴를 모색하면서도 중국과의 경제 관계도 고려해 과도한 갈등은 가급적 지양하는 모습입니다.
말레이시아, 브루나이 등 베트남, 필리핀 보다 국력이 약한 당사국들은 대개 중국에 대한 공개 비판은 자제하고 대화 및 국제법에 근거한 평화적 해결을 지지한다는 입장 입니다.
그동안 한국은 국제법 원칙하에 남중국해의 평화와 안정, 항행 및 상공 비행의 자유, 해양 역량 및 안보 증진을 위한 협력 증진, CoC에 대한 기대 정도의 입장만을 표명해 왔습니다.
하지만 ‘글로벌 중추국가’를 지향하는 인태 전략은 법의 지배와 규칙기반 질서를 강조하고 있으므로 남중국해 이슈에 대해 보다 전향적 입장 표명을 고민해야 할 것으로 보입니다.
한국이 아세안의 핵심이슈인 남중국해 문제에 대해 최소한의 입장만 밝히면서 아세안에게 신뢰받는 정치안보 파트너로서의 위상 확보가 어려웠다는 지적이 있기 때문입니다. 한국은 아세안의 대화 상대국들중 유일하게 남중국해 이슈 관련 ‘우려(concern)’ 표명을 하지 않은 국가로 분류된 것으로 알려져 있죠.
따라서 향후 어느 한쪽 편들기가 아닌 선에서 우려 표명을 검토해야 할 것으로 보입니다.
※다음 회에선 ‘아세안에서 중국·일본과 비교한 한국의 위상’ 에 대해 들어봅니다. 하단 기자페이지 ‘+구독’을 누르시면 쉽고 빠르게 받아보실 수 있습니다. 인터뷰 영상과 자세한 내용은 매일경제 월가월부 유튜브 채널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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