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엔] ‘20년 소방관 임용취소’ 논란…댓글 1,800건 들여다보니?
"베테랑 소방관이 20년 만에 '임용 취소' 처분을 받았습니다."
짧은 한 줄이 시작이었습니다. KBS 보도로 처음 소식이 알려졌고, 다른 언론 매체들이 주목하면서 큰 반향이 일었습니다.
논쟁도 예상보다 뜨거웠습니다. 인터넷에서는 "안타깝지만 임용을 취소해야 한다", "20년 소방 생활을 고려하면 과도한 조치다", "구제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등 갑론을박이 오갔습니다.
20년 전 채용 당시 경력 미달이 뒤늦게 드러나, '임용 취소' 처분을 내린 소방당국의 결정은 과연 정당한 것일까요?
KBS 취재진은 보다 건강한 공론의 장을 만들기 위해 관련 기사 댓글에 나타난 뉴스 이용자 인식과 법률 전문가들의 의견을 들어봤습니다.
[연관 기사]
‘가짜 경력’으로 20년 소방 근무…“임용 취소 검토”
https://news.kbs.co.kr/news/view.do?ncd=7642876
20년 만에 적발…‘가짜 경력’ 소방관 더 있었다
https://news.kbs.co.kr/news/view.do?ncd=7645035
“20년 베테랑 잃어”…허술한 채용 책임은 누가?
https://news.kbs.co.kr/news/view.do?ncd=7646040
‘경력 미달’ 채용…소방청, 결국 전수조사
https://news.kbs.co.kr/news/view.do?ncd=7648698
소방관 20년 만에 ‘임용 취소’…허술한 채용 책임은?
https://news.kbs.co.kr/news/view.do?ncd=7652598
‘소방관 임용 취소’ 논란…전문가도 “처분 지나쳐”
https://news.kbs.co.kr/news/view.do?ncd=7656857
■ 기사 댓글 1,800건 전수 분석…뉴스 이용자 인식은?
취재진은 관련 보도가 시작된 지난 4일부터 16일까지, 포털사이트 '네이버'와 '다음'에 유통된 기사 25건에 적힌 댓글 1,800건을 수집했습니다.
'텍스트 마이닝' 기법을 활용해 댓글에서 명사와 형용사 등 주요 키워드를 뽑아 해당 키워드와 함께 쓰인 단어들 사이의 관계망을 그렸습니다.
뉴스 이용자들이 어떤 의도로 댓글을 썼는지 확인하기 위해섭니다. 분석 결과 관계망은 크게 3가지 키워드를 중심으로 나타났습니다.
첫 번째 관계망은 '20년'이라는 단어를 중심으로 펼쳐졌습니다. '근무'·'베테랑'·'열심'이라는 단어들이 함께 묶였습니다.
해당 소방관의 근무 경력 20년을 중요하게 생각하고, 이를 고려해줘야 한다는 맥락으로 풀이됩니다.
두 번째 관계망은 '소방관'이라는 직업적 특성에 주목했습니다. '나라'·'국민'·'소방'이라는 단어들이 함께 쓰였고, 비중은 상대적으로 작지만 '봉사'·'민원'이라는 단어도 같이 묶였습니다.
"소방관은 국민 안전을 위해 헌신한다"는 사회적 인식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마지막 관계망은 소방당국 결정에 대한 인식이었습니다. '국가'·'담당자'·'잘못' 등의 단어가 큰 비중으로 묶였지만 '원칙'·'당연'이라는 단어는 상대적으로 작은 비중으로 묶였습니다.
뉴스 이용자들이 '임용 취소'라는 소방당국의 결정을 부정적으로 보고 있는 것으로 풀이됩니다.
정한진/KBS공영미디어연구소 데이터 분석가
"기사 댓글을 알고리즘으로 분석했더니 크게 3가지 형태로 나타났습니다. 뉴스 이용자들은 전반적으로 해당 소방관의 경력 부족 사실을 부정하지는 않지만, 잘못에 비해 지나치게 많은 책임을 지고 있다고 판단하는 것 같습니다."
■ 전문가 6명 중 5명, "임용 취소 처분 지나쳐"
전문가들의 의견도 크게 다르지 않았습니다.
KBS 취재진은 변호사와 법학자 등 법률 전문가들에게 "임용 취소라는 소방당국 결정이 지나치다고 생각하느냐"고 물었고, 전문가 6명 가운데 5명이 다양한 이유로 "그렇다"고 답했습니다.
첫 번째 이유는 경력 부족으로 인한 자격 미달이 법률이 엄격히 정한 결격 사유가 아니라는 점입니다. 국가공무원법은 '금고 이상 형을 받은 사람 등이 공무원으로 임용될 수 없다'고 규정하는 데 여기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또, 통상 범죄 수준의 비위 행위를 저지른 공무원들에게 임용 취소 처분이 내려지는 기존 사례들을 고려할 때, 해당 소방관에게 임용 취소 처분을 내리는 것은 지나치다는 의견도 있었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임용 취소된 소방관이 수사기관으로부터 거짓 기재 등 이른바 채용 부정 행위를 저질렀다는 판단을 받지 않았다는 점도 지적됐습니다.
노호창/호서대학교 법행정학과 교수
"임용권자가 정한 지원자격에 해당 소방관이 일부 미달하는 사실이 있습니다. 하지만 지원 당시 분명히 드러났던 것이 아니고, 그렇다고 자격이 전혀 충족되지 못했던 것도 아닙니다."
"결국, 임용권자가 심사를 잘했어야 했는데, 그렇지 못했던 것에 대한 책임을 20년이 지난 지금에서야 해당 지원자에게 떠넘기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반면, "판단이 어렵다"고 견해를 밝힌 한 변호사는 임용 취소 처분이 적법 절차에 따라 이뤄진 행정 행위라고 말했습니다.
또, 허술한 채용 과정을 진행한 소방당국 책임이 있지만, 소방관에게도 서류 전형 당시 응시 책임이 적지 않다고 견해를 덧붙였습니다.
■ "어떤 이익을 보호할 것인가?"…현명한 저울질 필요해
전문가들은 현재 진행되는 소방청 전수 조사에 대해서는 한목소리를 냈습니다.
적발되는 인원이 더 많아질 경우 소방당국은 여러 사회적 이익을 고려해 신중한 판단을 내려야 한다는 것입니다.
임용 취소 처분이라는 결정으로 과거 소방당국의 잘못된 채용 과정을 바로잡을 수는 있겠지만, 최소 10년 이상 구조 현장을 누벼온 베테랑 구조 인력을 한꺼번에 잃게 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김태형 / 변호사
"임용 취소된 소방관은 해군 해난구조대(SSU) 출신으로 수난사고에 특화된 구조 인력입니다. 생사를 오가는 위험한 현장에서 인명을 구조하고 실종자를 수색하는 일을 하죠."
"이런 위험직 근무를 누가 손들고 하려 할까요? 대체 인력을 찾기 쉽지 않습니다. 이런 분들을 시험 공고상 일부 자격 미달을 이유로 돌려보낸다면, 누가 이익을 얻는 것인지 한 번 따져봐야 합니다."
또, 임용 취소 처분은 이미 오랜 세월 소방관과 소방당국 사이에 쌓인 신뢰가 한꺼번에 무너지는 결과를 낳기 때문에, 당사자나 소방 조직 전체에 미치는 피해가 생각보다 크다고도 지적했습니다.
조아라/ 변호사
"임용 취소는 소방당국에서 과거 잘못 임용한 부분을 20년 만에 취소하는 행위입니다. 공무원 신분 상실, 20년 근무 경력 상실, 연금 불이익 등 소방관 개인에게 지대한 경제적 불이익을 줍니다."
"특히, 조사 대상 상당수는 40대 이상이라 새로운 생계 수단을 찾기도 어렵습니다. 이 때문에 한꺼번에 많은 인원이 임용 취소 처분을 받으면, 소방 내부 질서·기강이 흔들리거나, 충성도 유지가 힘들어질 수도 있겠죠."
이번 임용취소 사태 관련 기사에 달린 이용자 댓글 1,800건의 반응과 법률 전문가들의 견해는 '과도한 처분'에 가까웠습니다.
소방청은 이달 말까지 각 시·도별 현황 파악을 마무리하고, 그 결과에 따라 관련 조치를 결정할 방침입니다. 취재진은 이번 사회적 논쟁이 소방청의 숙의로 이어질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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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형관 기자 (parole@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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