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 친구와 함께 마신 생맥주는 썼다 [밥 먹다가 울컥]

박찬일 2023. 4. 23.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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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집에서 일하는 사람들에게 놓은 돈을 걷으러 다니는 건 거친 일이라고 했다. 철수는 ‘손 씻는다’는 말을 많이 했다. 그러기에 그는 이미 꽤 망가져 있었던 것 같다.
1980년대 한국에 들어온 칼스버그는 쌉쌀한 맛이 강해 예전엔 영업이 잘 되지 않았다.ⓒ시사IN 조남진

이제 화류계의 멤버가 된 옛 친구 철수와 앉은 두부 두루치기 집은 매캐한 양념 타는 연기로 가득했다. 철수는 이미 교과서에 나오는 초등학생 철수처럼 생기지 않았다. 눈빛은 상했고 어깨에는 긴장이 들어가 있었다. 녀석답지 않게 말이 많았다. 전화를 걸러 자리를 비우려 하자 그가 벽돌 같은 모토로라 이동전화기를 내밀었다.

“야, 이거 써.”

“요금 비싸다던데.”

“괜찮아, 친구 덕에 써보는 거지. 국제전화는 걸지 마라. 큭큭.”

전화기는 지지직 끓었다. 군대 무전기처럼 감도가 나빴다. 상대방 목소리가 잘 들리지 않아 나도 모르게 목소리를 높였다. 술집에 있던 사람들이 큰 목소리에 놀라 우리를 보고는 이내 고개를 돌렸다. ‘모토로라 벽돌 전화기’는 당시 부자이거나 깡패가 쓰는 것이었다. 부자가 대폿집에 오지는 않을 것이고, 누구겠나. 나는 우쭐해서 별로 중요하지도 않은 이야기를 길게 통화했다. 깡패보다 깡패 친구가 더 어깨에 힘을 넣는 법이다. 녀석은 ‘더 써. 더 쓰라구’ 하는 표정으로 나를 보고 웃었다.

“광화문 곰은 아니지만 사채 일을 좀 했어. 못할 일이더라. 관두고 이리 나왔다.”

“‘광화문 곰’이 뭐야?”

그는 짧게 설명했다. 유명한 사채업자라고, 재벌도 그 사람에게 돈을 빌린다고 했다.

“에이, 무슨 재벌이 사채업자에게 손을 벌려. 농담하지 마. 근데 어떻게 살았어?” 두부 두루치기는 참 흔한 안주였다. 멸치육수로 맛을 내고 매운 다지기를 풀어서 두부를 얹어 조려 먹는 안주. 대폿집에서만 파는 삼류 안주이지만 제일 맛있는. 값이 워낙 싸서 이제는 이문 남길 게 없어서일까, 서울 술집에서는 찾아보기 힘들어졌다. 25도짜리 소주가 500원인가 할 때였다.

“두부는 왜 먹게 된 거야?” 내가 물었다.

“웨이터 하다가 동네 형이 불러서 일수 사무실에서 일했어. 신촌로터리에 ‘우산속’이라고 디스코장 있었지? 그 뒤에 사무실에 있었는데 출근하면 밥 주고 용돈도 줘. 점심 먹고 형들 따라 돈 받으러 다녔지. 술집 아가씨나 마담들, 멤버들한테 빌린 돈을 받는 거야. 문제는 걔들이 자주 없어져요. 일수를 덜 찍고 사라지는 거지. 주민등록 주소에 가봐야 다 말소되어버려서 찾지도 못해. 봉고차 타고 전국을 돌아다녔어. 아가씨들 찾으러.” 술집 일을 하는 아가씨들은 사라지면 서울의 반대편에 가서 일한다고 했다.

“사람 심리가 빤해. 대략 반대로 가는 거야. 신촌이면 천호동으로, 연신내면 신사동으로 간다고. 화류계 물장사는 밤에 시작하는데 늬들 눈에는 안 보이지만 새로 세상이 하나 생긴다. 낮 세상, 밤 세상이 달라. 캄캄해서 아무것도 안 보이는 밤인데도 우리들 눈에는 그게 낮이야. 밤에 일하는 사람들은 밤 지도가 있어. 딱 하면 다 보인다고.” 지독하고 무서운 사무실 형들은 수법도 꽤 놀라웠다고 한다.

“부녀보호소 같은 데 가서 잡는 사람도 있어. 불법으로 일하던 아가씨들이 잡히면 거기서 좀 갇혀 있다가 나오는데, 나오면 딱 잡는 거야. 아가씨들이 어느 술집이든 가서 선불을 땡길 수 있는데, 그걸 고스란히 수금으로 받아오더라고. 원금보다 이자가 더 높아.” 재형저축이라는 게 있던 시절이다. 3년 동안 600만원을 적금으로 부으면 만기에 1000만원을 주는 고금리 시대였다. 사채는 오죽했을까.

“선이자 떼고 주고, 딸라(달러)에 반 딸라가 기본이야. 아가씨들이 제일 무서워하는 게 깡패가 아니야. 이자지.” 술집에서 일하는 사람들에게 놓은 돈을 걷으러 다니는 건 거친 일이었다고 했다. 다른 지역에 가면 그 지역에도 깡패가 있고 건달이 있었다. 밤에만 생기는 지도로 먹고사는 사람들. 족보(?)를 맞춰봐서 순순히 일이 풀리기도 하지만 대개는 영역(나와바리) 침범이 되는 일이어서 출혈도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영화에서 보는 것 같은 큰 사고는 안 내려고들 했단다. 서로 불법 일이었으니까. 하지만 감옥에 자주 갈 수밖에 없었다.

“평소엔 그냥 놔둔다고. 형사들과 술도 같이 마시고 그래. 그러다가 갑자기 유흥가 돈 싸움으로 누가 죽고 신문에 난다 그러면 형사들이 싹 움직인다고.”

철수와 마셨던 생맥주는 없다

대충 그런 얘기들을, 흥미롭게 들었다. 나중에 소설을 써야지, 철수 얘기를 쓰면 베스트셀러가 될 거라고 생각했다.

“난 개인들 수금은 안 해. 그거 못하겠더라.” 요샛말로 사채 불법추심 행위랄까. 막무가내의 시절에 벌이던 만행이었다. 신용카드가 없던 때라 돈 빌릴 데 없는 사람들은 동네에서 계를 한다. 돈이 돈을 먹는다고, 한번 돈이 말리면 빚 갚느라 또 빚을 낸다. 다른 사람 통해서 또 번호계에 가입해 돈을 당긴다. 그러면 물어야 할 돈이 천정부지로 올라간다고 했다. 번호계는 빨리 받아 쓰면 갚아야 할 이자에 곗돈까지 해서 점점 더 돈이 불어나기 때문이다. 그러면 더 이상 돈 빌릴 데가 없어지고 소문이 나면서 ‘부도’가 난다. 그때 사채업자에게 돈을 빌린다.

“별사람들이 다 있어. 도박 경마 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멀쩡한 회사원이나 장사하는 사람들, 그냥 일이 없어서 생활비 꾼 사람들. 그런 데 가서 돈을 받아오는데 기가 막혀.” 대개 빚을 많이 지면 도망을 간다. 야반도주다. 그전에 정보를 얻어야 한다고 했다. 사채업자들 사이에 소문이 돈다고 했다. 사채업자 A, B를 거쳐 C에게도 돈을 빌린다면 그건 악성 채무라고 했다.

그쯤 되면 A, B의 사채업자는 ‘채무자가 자빠지기 전에’ 빨리 회수를 하려고 한다. 철수가 제일 하기 싫었던 건 ‘애들 학교에 찾아가는 것’이었다고 했다. 말 안 해도 뭔지 알 만한 얘기였다.

“막내(사채업자 보조) 때는 봉고차에 이불을 싣고 다녔어. 빚진 사람 집에 들어가서 그냥 거실에다 이불 깔고 있는 거야. 라면도 몇 개 사가서 끓여 먹어. 응? 그 집 가스에다 끓여 먹지 그럼 어디에 끓여 먹냐. 냉장고에서 신김치 꺼내서 먹지. 어떤 때는 화투를 한 목 가지고 가. 혼자 가면 (운수) 패 떼고, 둘이 가게 되면 맞고 치는 거야. 그냥 그러고 있으면 몇 푼이라도 주인이 돈을 마련해서 온다고.” 이불도 꽃그림 그려진 빨간 담요가 최고라고 했다. 그걸 둘둘 말아 들고 집에 쳐들어가면 그렇게 위압감을 준다나.

“돈이 어디서 나오든 우리는 상관없어. 친척들, 친구들한테 빌리라고 쪼는 게 기본이지. 근데 그쯤 악성이 되면 이미 빌릴 만한 데는 다 빌린 거야. 그러면 몰래 사채업자를 알려줘. 일단 돈을 받는 게 주목적이니까. 어느 날은 채무자 집에 가면 집주인은 사라져서 없고 우리끼리 (사채업자들) 만난다니까.”

철수와 그날 많이 취했다. 옛날 동네 얘기를 하면서 우리는 더 취했다. 손 씻는다는 말을 그가 많이 했다. 그러기에 철수는 이미 꽤 망가져 있었던 것 같다. 술자리에 부하들이 자꾸 와서 뭔가를 전하고 갔다.

녀석을 마지막으로 본 건 내가 일하는 사무실 근처였다. 여전히 모토로라 전화기를 들고 주머니에 손을 깊이 찌른 특유의 걸음걸이로 다방에 들어서던 장면이 선하다. 녀석은 얼굴에 주름이 잡혔고 피곤해 보였다. 눈에 핏발도 서 있었다. 사채는 하지 않는다고 했다.

“이제 사업을 한다. 그 동네는 글렀다. 니가 좀 도와주라.” 무서웠다. 뭘 돕니 내가.

야장 까는 생맥줏집에서 노가리에 생맥주를 마셨다. 맥주는 크라운만 먹던 녀석이었다. OB는 싱겁다고. 내게 고등학생 때 칼스버그를 주던 녀석다웠다. 칼스버그는 쌉쌀한 맛이 강해서 1980년대 한국에 상륙한 후 영업이 잘 되지 않던 맥주였다. 크라운 생맥주 서너 잔을 급히 마시더니 녀석이 말을 꺼냈다.

“우리 (중국) 동포들이 한국을 와야 하는데 비자가 안 나와. 니가 힘 좀 써야겠다.” 나는 당시 작은 잡지사에서 일하고 있었다. 그게 무슨 대단한 ‘빽’이라고 나를 찾았을까. 녀석이 막장에 오고 있었던 것이다. 세상 물정 잘 모르던 나였지만 그게 무슨 일인지 감이 왔다. 녀석의 말을 들어보니 맞았다. 그러니까 한국에 와서 불법취업하려는 중국인 내지는 중국 동포를 관광객으로 위장하여 입국시키려는 일이었다. 그게 큰돈이라고 했다.

“네가 어디 빽 좀 써서 관광비자 좀 나오게 해주라.” 내가 법무부에 가서 이불 깔고 화투 친다고 나올 비자가 아니었다. 평생을 밤의 논리로 해결해온 녀석으로서는 그게 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아니, 실제로 그런 작업을 성공시키는 경우가 왜 없었으랴.

기어이 녀석이 생맥주 값을 내고 갔다. 며칠 뒤인가 녀석이 와서 내 신용카드를 빌려 갔다. 다음 달 카드 청구서에 내가 무슨 세라믹 담요를 샀다는 할부 내역이 인쇄되어 있었다. 220만원을 24개월 할부로 샀다는 것이다. 30년이 다 된 얘기다. 그러고는 철수와 지금까지 연락이 되지 않는다. 그 후 어느 동창이 내게 전화 한 통을 걸어온 적이 있다.

“내가 TV에서 봤다. 영등포역 앞에서 노숙자들이 밥을 타 먹는데 거기 분명히 철수가 서 있었다고. 잡으러 가봐라.” 철수와 마셨던 생맥주도 없고, 이제 철수도 없다. 세상일이 그렇다.

박찬일 (셰프)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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