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도 당부한 '충당금'…5대 은행, 1분기 2배 이상 더 쌓는다
충당금 탓 '최대이익'행진 1분기 끝날듯…배임논란 '문제없음' 내부결론
(서울=연합뉴스) 신호경 민선희 오지은 기자 = "수익이 좋은 시기에 은행이 충당금을 충분히 쌓고 이를 통해 어려운 시기에 국민을 지원해야 한다"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 2월 15일 은행 산업의 과점 피해를 지적하며 이런 역할을 주문했는데, 실제로 주요 시중은행과 금융지주들이 1분기 실적에 반영할 충당금을 당초 계획보다 크게 늘리기로 방침을 정했다.
보다 직접적으로는 '충당금 산정 과정에서 약 3년에 걸친 대출 원금·이자 유예 상황과 악화가 예상되는 미래 경기를 보수적으로 반영해달라'는 금융 당국의 권고를 받아들인 결과다.
은행과 금융지주 입장에서도 중소기업·자영업 등 취약 부문의 부실 가능성에 대비하고, 충당금을 늘릴수록 이익은 줄어 부담스러운 '역대 최대 이익' 경신도 피할 수 있다는 점에서 나쁘지 않은 선택이다.
당국 "중소기업 등 취약부문 충당금 적립률 낮다" 지적
23일 금융권에 따르면 지난 19일 5대 은행(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 재무·리스크 담당 임원(부행장급)과 금융감독원은 비공개 간담회를 열고 충당금을 주제로 의견을 나눴다.
이 자리에서 당국 관계자들은 은행 충당금이 여러 가지 측면에서 적정 수준보다 적을 가능성을 지적했다.
우선 코로나19 사태 이후 약 3년간 이어진 대출 연장·이자 유예 등 금융지원에 따른 착시 현상 문제가 거론됐다.
현재 각 은행은 부도율(PD·1년 내 해당 여신이 부도 처리될 가능성 예측치), 부도시 손실률(LGD·부도 발생 시 해당 여신 가운데 회수하지 못하고 손실 처리되는 비율) 등을 기반으로 적정 충당금 적립 규모를 산출한다. 통상적으로 과거 10년의 PD·LGD 관측 데이터가 활용된다.
하지만 최근 3년(2020∼2022년)의 경우 은행이 코로나19 피해 소상공인 등에 계속 대출 원금 상환과 이자 납부를 미뤄줘 연체율이나 부도율 등의 부실 지표가 실제 상황보다 낮게 나타나는 만큼, 단순히 10년 데이터를 사용하면 충당금이 지나치게 적게 책정될 위험이 있다는 게 당국의 우려다.
아울러 당국은 경기가 갈수록 나빠지는 흐름을 반영해 충당금 산정 과정에서 PD 등을 보수적으로 추정할 필요가 있다는 의견도 전달했다.
특히 최근 중소기업 연체율이 오르고 있지만, 중소기업에 대한 충당금 적립률이 오히려 대기업보다 낮다는 사실을 지적하며 중소기업 등 취약부문에 대한 충분한 충당금 적립을 여러 차례 강조한 것으로 알려졌다.
"미래위험 대비해 2분기 충당금 규정 개정…3분기부터 점검"
당국은 올해 1분기의 경우 이런 대출 연장 등 금융지원 특수성과 미래 경기 전망 등을 반영해 각 은행과 금융지주가 알아서 충당금을 많이 쌓도록 요청했다. 2분기부터는 같은 맥락에서 충당금 관련 규정도 개정하겠다고 예고했다.
시중은행 관계자는 "주요 은행이 참여하는 태스크포스(TF)를 통해 2분기 안에 충당금 관련 규정을 고치고, 3분기부터 이행 여부를 점검하겠다는 뜻을 금감원이 분명히 밝혔다"고 전했다.
각 은행의 내부 충당금 산출식을 획일적으로 통일하기는 어렵더라도, 충당금 산정 과정에서 미래 경기 전망 가운데 가장 보수적 시나리오를 기반으로 삼으라거나, 기준이 되는 PD 등의 지표를 일정 수준 더 높여 반영하라는 등의 가이드라인(지침)이 조만간 제시될 것으로 은행권은 예상하고 있다.
"충당금, 작년 1분기의 2배이상 가능성"…5대 금융지주 1조6천억원 넘을듯
5대 은행과 금융지주는 당국의 권고를 받아들여 당장 이번 주 발표할 1분기 실적에 당초 계획보다 많은 충당금을 반영하기로 의견을 모았다.
A은행 관계자는 "일반적으로 신규 충당금 적립액은 상대적으로 연초에 적고 연말로 갈수록 늘어나는 경향인데, 은행이나 금융지주나 올해의 경우 이례적으로 1분기부터 상당 규모의 충당금을 쌓고 출발할 방침"이라며 "실적 발표 전이고 여전히 조정 중이라 구체적 수치를 공개할 수 없지만, 은행 기준으로는 작년 1분기의 약 2배 이상에 이를 가능성이 있다. 다른 은행들도 비슷한 분위기일 것"이라고 말했다.
B은행 관계자도 "실적 발표 앞두고 숫자를 말할 수는 없지만, 이번에 매우 보수적으로 충당금을 적립할 계획"이라며 "발표 후 실적을 보면 '정말 보수적으로 많이 쌓았구나'라는 평가가 나올 것"이라고 예고했다.
5대 금융지주와 은행은 지난해 연간 각 5조9천368억원, 3조2천342억원의 대손충당금을 새로 적립했다.
분기별로 나눠보면 5대 금융지주의 경우 ▲ 1분기 7천774억원 ▲ 2분기 1조5천585억원 ▲ 3분기 1조171억원 ▲ 4분기 2조5천838억원을, 은행의 경우 ▲ 1분기 3천17억원 ▲ 2분기 1조171억원 ▲ 3분기 4천409억원 ▲ 4분기 1조4천745억원을 쌓았다.
그 결과 5대 금융지주와 은행의 2022년 말 현재 충당금 잔액은 각 13조7천608억원, 8조7천24억원에 이른다.
예상대로 올해 1분기 충당금이 실제로 작년 같은 기간의 두 배로만 불어도 금융지주에서는 최소 약 1조6천억원, 은행에서는 약 6천억원이 추가된다.
은행·금융지주도 공감…'최대 이익' 부담스럽고 연체율↑
은행과 금융지주 내부에서도 현시점에서 충당금을 충분히 늘려 놓을 필요가 있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무엇보다 실제로 연체율 등 건전성 지표가 나빠지는 추세라, 향후 경기 악화와 함께 중소기업·자영업자, 다중채무자 등 취약 대출자의 부실이 갈수록 커질 위험에 미리 대비해야 할 처지다.
5대 은행의 2월 신규 연체율 평균은 0.09%로 1월(0.08%)보다 0.01%포인트(p) 또 높아졌고, 1년 전인 지난해 2월(0.04%)과 비교하면 두 배를 넘어섰다.
아울러 코로나19 사태 이후 수년간 금융지주와 은행에 붙은 '역대 최대 이익' 수식어도 이제 부담스러운 상황이다.
대통령까지 나서 이자 장사로 불린 이익으로 은행 임직원들끼리 '돈 잔치'를 한다고 비난한 만큼, 금융지주·은행이 최대한 충당금을 늘려 그만큼 1분기 순이익을 줄일 가능성이 있다.
한 금융지주 관계자는 "정부뿐 아니라 여러 기관이 공통적으로 경기 침체를 경고하고 있는 만큼, 충당금 증액에는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며 "더구나 지금 충당금을 아끼고 일부러 이익을 늘려 여론의 주목을 받을 이유도 없지 않으냐"고 반문했다.
충당금 확대가 본격적으로 논의된 지난 19일 간담회 이전에도 이미 시장에서는 농협을 제외한 4대 금융지주(KB·신한·하나·우리)의 1분기 순이익이 순이자마진(NIM) 축소 등으로 작년 1분기보다 1% 남짓 적은 4조5천300억원대를 기록할 것이란 전망이 나왔다.
여기에 당초 시장 예상보다 충당금까지 급증할 경우, 이익 감소 폭은 커지고 역대 최대 이익 행진도 확실히 끝날 것으로 예상된다.
일각에서 제기된 '배임' 가능성에 대해서도 검토를 마쳤다는 게 은행권의 설명이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법률 자문 등을 거쳐 미래 경기 악화 등을 반영한 충당금 증액에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결론을 얻었다"고 전했다.
shk999@yna.co.kr, ssun@yna.co.kr, built@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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