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세계서 27개 공장 건설… K배터리 ‘인재 모시기’ 전쟁
숙련자 부족하면 초기 수율에 악영향
배터리 업계, 대학과 학과 신설 논의
배터리 업계가 약 80조원을 투자해 전 세계 27개 공장을 건설 중인 가운데, 인력 유치를 위한 인재 확보 전쟁을 벌이고 있다. 반도체, 스마트폰, 가전 등 탄탄한 인력풀이 완성된 전통 산업군에 비해, 이제 막 태동하고 있는 2차 전지는 전문가 집단이 두텁지 않기 때문이다.
23일 배터리 업계에 따르면 LG에너지솔루션, 삼성SDI, SK온 등 배터리 빅3 업체는 잇따라 채용공고를 내거나 인재 채용 행사 등을 통해 인력 확보에 나서고 있다. 일부 기업은 대학교와 함께 배터리학과 신설 등을 논의하고 있다.
◇ 배터리 빅3, 인재 모시기 경쟁 ‘치열’
삼성SDI는 지난 14일부터 경력사원 채용 공고를 시작했다. 채용 분야는 ▲중대형전지 사업부 ▲소형전지 사업부 ▲전자재료 사업부 ▲SDI연구소 등 50여개 직무에 대한 경력사원을 채용하고 있다. 삼성SDI 관계자는 “구체적인 경력사원 채용 규모를 밝힐 순 없지만 역대급 규모로 선발할 계획을 가지고 있다”고 말했다.
삼성SDI는 지난해에도 각 사업부 임원이 직접 나서 국내와 미국 뉴욕에서 박사급 인력을 대상으로 하는 ‘테크&커리어 포럼’을 열기도 했다. 또 삼성SDI는 지난달 화학·화공, 재료·금속, 섬유·고분자, 기계, 전기전자, 산업공학과 졸업생을 대상으로 신입 사원 채용에도 나섰다.
삼성SDI는 해외 인재 확보에도 열을 올리고 있다. 중국 상하이에 배터리 연구소 ‘SDI R&D 차이나(SDIRC)’를 설립하고 중국 대학들과 산학 협력을 추진하고 있다. 이 연구소는 독일 뮌헨, 미국 보스턴에 이은 3번째 연구·개발(R&D) 센터다.
최윤호 삼성SDI 사장은 2021년 12월 삼성SDI 대표이사로 부임해 ‘초격차 기술경쟁력’, ‘최고의 품질’, ‘수익성 우위의 질적 성장’ 등 3가지 경영 방침과 이를 위한 인재 확보와 육성의 중요성을 지속적으로 강조해왔다.
SK온은 미국 조지아 공장 운영을 위한 인력 2600명 고용 목표를 2년 가량 앞당겨 달성했다. 올해는 400명을 추가로 채용한다는 방침이다. SK온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코로나19)로 인해 인력 채용에 어려움을 겪었지만 ‘드라이브 스루’ 채용 박람회와 무료 맞춤형 교육 프로그램인 ‘퀵스타트’ 등 적극적으로 구인 활동을 벌여왔다. 여기에 퇴역군인과 예비역, 군인 가족 등을 채용하면서, 브라이언 켐프 조지아주 주지사에 감사 인사를 받기도 했다.
LG에너지솔루션의 주요 경영진은 지난 8일(현지 시각) 미국에서 열린 글로벌 우수 인재 채용 행사 ‘BTC(Battery Tech Conference)’에 총집합했다. 이날 행사는 메사추세츠공과대학(MIT), 스탠포드, UCLA, 퍼듀, 아르곤 국립 연구소 등 미국 최고 대학 및 연구소에서 선발된 석·박사 인재 40여명이 참석했다. 이번 행사 신청자는 200명이 넘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2021년 행사 신청자가 50명이 몰렸던 데 반해 LG에너지솔루션에 대한 인재들의 관심이 급증한 것을 알 수 있다.
배터리 소재 기업인 에코프로는 지난해 800명을 신규 채용한 데 이어 올해도 1000여명을 채용한다는 방침이다. 특히 헝가리, 북미 등 해외 진출을 위한 글로벌 인재 채용에도 나설 계획이다. 이 채용으로 뽑힌 사원은 지주사를 비롯한 에코프로비엠, 에코프로이엠 등에서 근무하게 된다.
◇ 배터리 산업 태동기... 인재 육성 생태계 구축 필요
배터리 업계가 인재 모시기 경쟁을 펼치는 것은 2차전지 사업이 확산되는 시기이기 때문이다. 반도체, 스마트폰과 같이 40~50년 이상의 역사가 있는 산업의 경우, ‘대학 교육→신입 채용→전문가 양성→숙련자 보유’까지 일련의 인재 생태계가 잘 갖춰져 있다. 하지만 배터리 산업의 경우, 시장이 팽창하고 있는 초기인 만큼 인력 수요는 많지만, 경험을 가진 인재 및 전문가 공급이 부족한 상황이다.
배터리 업계가 겪고 있는 수율(전체 생산품 중 완성품의 비율) 문제도 숙련된 인재 부족의 영향이 크다. SK온 조지아 1공장 가동 초기에 배터리 수율이 낮았던 것도 미숙한 현지 작업자들이 투입된 탓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미국 인플레이션감축법(IRA) 시행으로 역내 생산의 중요성이 커지면서 현지 인력난이 더 심화될 전망이다.
경쟁사인 중국을 비롯한 외국 업체들이 높은 몸값을 제시하며 고급 인력을 빼가고 있는 상황도 K배터리에는 불리한 상황이다. 이에 국내 배터리 업계는 대책으로 국내 대학교와 연계에 맞춤형 인재를 양성하고 있다. 관련학과를 신설해 기업에서 장학금부터 해외연수까지 지원하고 입사시 가산점을 주는 등 다양한 당근책을 제시하고 있는 것이다.
LG화학은 배터리 소재 우수 인재 육성과 미래 기술 개발을 위해 한양대와 협력하기로 했다. 삼성SDI는 서울대, 포스텍, 한국과학기술원 등 유수의 대학과 배터리 인재 양성 협약을 맺었다. SK온은 성균관대·한양대·울산과학기술원과 함께, 산학 교육 프로그램을 시작했다. 에코프로는 한동대와 인재 육성 양해각서(MOU)를 체결했다.
배터리 업계 관계자는 “반도체, 스마트폰, 가전 제조의 경우 표준화 된 공장을 복사해 붙여넣기 하는 것처럼 만들 수 있는 마더팩토리를 보유하고 있다”며 “배터리 업계는 마더팩토리의 개념이 아직 없어 좋은 인재가 직접 챙겨야 수율이 올라가는 구조다. 앞으로 30개 이상의 배터리 공장이 새롭게 건설되거나 증설되는 만큼 배터리 업계의 인재 모시기 경쟁이 더욱 치열해질 것으로 전망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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