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저임금 1만원’ 10년 외친 노동계, 목표 달성 눈앞에 두자 “1만2000원”

세종=손덕호 기자 2023. 4. 23. 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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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군소후보 ‘최저임금 1만원’ 공약
정치권 확산돼 ‘소주성’으로 급격한 인상
노동계 과거 주장한 ‘평균임금의 50%’ 최저임금은 달성
그러자 ‘120대 대기업 임직원’과 비교…”4배 높다”

내년도 최저임금을 결정할 최저임금위원회가 지난 18일 열릴 예정이었지만 시작도 못 한 채 파행했다. 일찌감치 ‘시급 1만2000원’을 내년 최저임금으로 요구한 노동계 인사들이 회의장에서 ‘최저임금을 대폭 인상하라’며 투쟁 구호를 외쳤기 때문이다. 내년 최저임금은 올해보다 3.95%만 오르면 시급이 1만원이 되는데, 10년 가까이 외쳐 온 금액 달성이 눈앞에 보이자 ‘골대’를 2000원 더 올린 것이다. 그러는 사이 과거 노동계가 지속적으로 주장했던 ‘평균임금의 50%’라는 목표는 온데간데없어졌다.

18일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 앞에서 열린 '최저임금 대폭 인상, 최저임금위원회 독립성·공정성 보장, 권순원 공익위원 사퇴 촉구 기자회견'에서 참가자들이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최저임금 1만원’이 국민들의 피부에 와닿은 것은 문재인 정부에서 추진한 소득주도성장 정책 때문이었다. 소주성 정책의 목표는 ‘가계 소득을 늘려 소비를 진작해 경제성장을 이끌고 좋은 일자리로 이어지는 선순환 경제구조(소득주도성장특별위원회 설명)’를 만들겠다는 것이었고, 그 수단 중 하나가 최저임금 인상이었다.

문재인 전 대통령은 2017년 대선에서 최저임금을 2020년까지 1만원을 달성하겠다고 공약하고 당선됐다. 공약 달성을 위해 2018년 최저임금을 16.4%(6470원→7530원), 2019년 최저임금은 10.9%(7530원→8350원) 인상했다. 다만 급격한 최저임금 인상으로 부작용이 나타나자 2020년과 2021년 최저임금 인상률은 2.87%, 1.5%에 그쳤다. 그러나 그 뒤 2년 연속으로 최저임금이 5%씩 올랐고, 내년 최저임금이 380원(3.95%)만 더 오르면 ‘최저임금 1만원’이 달성된다.

‘최저임금 1만원’ 구호가 처음 등장한 해는 2012년이다. 청소노동자 출신 무소속 김순자 후보는 그해 치러진 대선에서 ▲비정규직 철폐 ▲주35시간으로 노동시간 단축 ▲6년 일하고 1년 쉬는 유급안식년 ▲모든 국민에게 월 33만원 기본소득 지급 등과 함께 ‘최저임금 1만원’을 공약으로 내세웠다.

2015년 6월 27일 오후 서울역 광장에서 민주노총 전국노동자대회가 열리고 있다. 이들은 '최저임금 1만원으로 인상'과 '노동시장 구조개악 저지'를 주장하며 최저임금 1만원 인상을 촉구하는 내용이 적힌 카트를 밀며 을지로입구까지 행진했다. /조선DB

그 전까지 노동계와 진보진영이 주장한 최저임금 목표는 ‘평균임금의 50%’였다. 민주노총은 2000년 최저임금심의위원회에 참여해 “현행 최저임금은 시급 1600원으로 전체 노동자 평균 임금의 30%에 불과하다”며 ‘평균 임금의 50%’를 요구했다. 2011년에도 다음해 최저임금 결정을 앞두고 노동자 평균임금 50%를 최저임금으로 법제화하라고 요구했다.

그러나 2012년 ‘최저임금 1만원’ 구호가 나온 후 상황이 급격히 바뀌었다. 2013년 1월 출범한 ‘알바노조’는 최저임금 1만원을 요구하며 한국경영자총협회(경총), 최저임금위원회, 청와대 인근에서 집회를 열었다. 이 구호는 기성 정치권으로 퍼졌다. 2014년 12월 이인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새정치민주연합(현 민주당) 당대표 후보로 출마하면서 “최저임금 1만원 시대를 열겠다”고 했다. 심상정 정의당 의원은 2015년 2월 국회 비교섭단체 연설에서 “최저임금 1만원 시대를 열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민주노총은 2015년 4월 ‘최저임금 1만원’을 공식 주장했다. 그해 최저임금은 5580원이었는데, 2016년에는 이보다 79.2% 올리자는 요구를 한 것이다. 한국노총과 민주노총 인사들로 구성된 최저임금위원회 근로자위원들이 2015년에 적용할 최저임금으로 최초에 요구한 금액은 6700원이었다. 목표를 한 번에 확 높여 잡은 것이다. ‘최저임금 1만원’ 구호에 정치권도 부정적이지 않았다. 2017년 대선 당시 문 전 대통령뿐만 아니라 주요 후보 5명 모두 당선되면 최저임금 1만원을 달성하겠다고 공약했다.

2018년 12월 11일 문재인 당시 대통령이 정부세종청사에서 고용노동부 업무보고를 받은 뒤 ‘주 52시간 근무제’를 담당하는 근로기준정책과를 찾아 직원들과 대화하고 있다. 문 전 대통령이“최저임금 인상 속도가 너무 빠르냐”고 묻자 직원들은‘속도 조절’필요성을 언급했다. 문 전 대통령 오른쪽은 이재갑 전 고용노동부 장관. /조선DB

문 전 대통령 임기 동안 소주성 정책과 함께 최저임금이 빠르게 인상되면서 최저임금은 ‘시급 1만원’을 목전에 두게 됐다. 이 과정에서 과거 노동계가 요구했던 ‘평균임금 50%’도 달성됐다.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에 따르면 2020년 최저임금(8590원) 최저임금은 전체 근로자 평균임금의 49.6%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세 번째로 높았다. 1위는 콜롬비아(61.3%)다. 프랑스(49.4%), 영국(47.8%), 독일(44.9%), 일본(39.2%)보다 한국이 높다.

한국노총과 민주노총은 내년도 최저임금을 올해보다 24.7% 높은 1만2000원을 주장하면서 노동자 평균임금이 아닌, 급여 수준이 높은 ‘대기업 임원과 직원’의 연봉과 비교했다. “국내 주요 120개 대기업 임직원의 평균 연봉은 지난해 1억196만원으로 올해 최저임금 연봉의 4배가 훨씬 넘는 금액”이라는 것이다.

경영계는 “최근 우리나라의 최저임금이 선진국에 비해 월등하게 높게 인상됐다”며 상당기간 안정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경총은 이달 초 발표한 자료에서 한국 근로자 중 최저임금 이하의 임금을 받는 비율(19.8%)은 OECD 회원국 중 멕시코(25%)에 이어 두 번째로 높다면서, “최저임금이 경제 수준, 노동시장 여건 등을 고려하지 않고 과도하게 인상되었기 때문”이라고 했다.

최저임금위원회 홈페이지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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