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금융권 폭탄까지”… 부동산 PF 소방수로 떠밀린 은행권 ‘속앓이’

진상훈 기자 2023. 4. 23.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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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동산 PF 위기는 2금융권이 키웠는데
시중은행, 대주단 협의체 참여 앞두고 시름
상반기 대규모 브릿지론 만기 도래
부동산 침체로 “연명치료 불과” 우려
대출금리 인하 압박에 PF 해결사까지
시중은행들이 부동산 PF 문제 해결을 위한 대주단 협의체 참여를 앞두고 고심하고 있다./조선비즈DB

최근 금융권의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부실에 대한 우려가 커진 가운데 시중은행들의 고심이 깊어지고 있다. 저축은행이나 보험, 카드사 등 2금융권에 비해 부동산 PF의 위험 노출 규모가 훨씬 적은 수준임에도 위기를 진화하는데 주도적인 역할을 해야 할 처지에 놓였기 때문이다.

시중은행들은 정부와 금융 당국으로부터 예대마진(예금과 대출의 금리 차이) 축소와 대출금리 인하 압박 등을 받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부동산 PF 문제 해결을 위한 ‘소방수’ 역할까지 떠맡게 된 것이다. 은행 안팎에서는 주택경기 침체와 미분양 물량 증가로 부동산 PF 부실 문제가 장기화될 경우 시중은행들의 실적까지 악화할 수 있다는 경고가 나오고 있다.

◇ 2금융권이 키운 부동산 PF 위기

23일 금융 시장 관계자에 따르면 금융 당국은 부동산 PF 위험에 사전 대응하기 위해 금융사들이 참여하는 ‘대주단 협의체’를 오는 24일부터 가동한다. 협의체에는 시중은행을 포함해 보험사와 여신전문회사(카드·캐피탈), 증권사, 저축은행, 상호금융조합 등 거의 전 업권의 금융사가 참여한다.

협의체는 금융사들의 합의를 통해 자금난에 시달리는 사업장을 위해 대출만기 연장과 채무상환 유예 등의 금융 지원을 한다. 상황이 악화돼 전체적인 금융 위기로 번질 가능성이 있는 사업장이 나올 경우 신규 자금을 수혈하는 방안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협의체 참여를 앞두고 시중은행 내부에서는 볼멘소리도 커지고 있다. 2금융권에 비해 시중은행들은 부동산 PF의 위험도가 훨씬 낮은 수준인데, 이번 협의체 참여로 사업 부실에 대한 공동 부담을 지게 됐다는 것이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지난해 9월 말 기준 비은행권의 부동산 PF 위험 노출액(익스포저) 규모는 대출과 채무 보증을 합쳐 총 115조5000억원으로 사상 최대 수준을 기록했다. 여신전문회사의 경우 5년 전인 2017년에 비해 PF 익스포저가 4배 이상으로 늘었고, 저축은행 역시 2.5배 수준으로 급증했다. 게다가 지난해부터 금리 인상으로 부동산 경기가 얼어붙으면서 부동산 PF 연체율은 2021년 3.7%에서 지난해에는 8.2%로 크게 올랐다.

반면 1금융권 시중은행들의 부동산 PF 위험도는 상대적으로 낮은 수준이다. 금융권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 신한·KB국민·하나·우리·NH농협 등 5대 시중은행들의 부동산 PF 대출 잔액은 14조6645억원으로 집계됐다. 또 연체율이 2금융권에 비해 훨씬 낮은 데다, 대부분 선순위 보증을 토대로 한 대출로 구성돼 있어 2금융권 PF 대출에 비해 부실 위험이 적다.

2022년 9월 기준 비은행권 부동산 PF 익스포저 현황/한국은행

◇ “대주단 협의체도 연명치료 불과”

시중은행들이 우려하는 더 심각한 문제는 대주단 협의체가 가동돼도 부동산 경기가 본격적으로 살아나지 못할 경우 장기적으로 PF 부실 문제가 심화될 가능성이 크다는 점이다.

부동산 PF는 ‘본PF’와 ‘브릿지론’으로 나뉘는데, 이 중 최근 부실 우려가 특히 커진 쪽은 브릿지론이다. 신용도가 낮거나 자금 여력이 부족한 시행사들은 사업 초기 토지 매입 등을 위해 주로 2금융권에서 고금리로 브릿지론을 통해 돈을 빌린다. 이후 개발 인·허가를 받고 시공사를 선정하면 1금융권 등으로부터 토지 담보대출로 본PF 자금을 받아 브릿지론을 상환한다.

그런데 지난해부터 부동산 경기가 침체돼 본PF로 넘어가지 못하고 진퇴양난에 빠진 시행사들이 늘면서 부동산 PF 부실 위험이 커진 것이다.

금융권 관계자에 따르면 전체 브릿지론의 절반 이상이 올해 상반기에 만기가 도래한다. 대주단 협의체가 가동되면 만기가 연장될 가능성이 크지만, 올해 하반기에도 부동산 침체가 지속될 경우 올해 말이나 내년 초에 다시 위기가 재연될 수밖에 없다. 게다가 만기가 연장되면 가뜩이나 높은 브릿지론의 금리가 추가 상승해 더 큰 부동산 PF 위기로 돌아올 수 있다.

◇ 예대마진 축소·대출금리 인하에 PF 부실 해결사 역할까지

시중은행들은 부동산 PF의 위기 진화를 위해 신규 자금을 대규모로 투입해야 하는 상황에 이를 경우 자칫 실적 부진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우려한다.

은행들은 지난해 금리 인상 흐름 속에서 주로 예대마진을 통해 사상 최대 수준의 이익을 거뒀다. 이를 두고 정부와 금융 당국은 올해 들어 은행권에 대해 과도한 예대마진을 줄일 것을 여러 차례 요구해 왔다. 또 미국의 기준금리 인상으로 채무자들의 빚 부담이 커지자, 대출금리도 인하하라는 압박도 지속되고 있다.

이 때문에 시중은행들은 지난해에 비해 사업 조건이 불리해진 상황에서 부동산 PF 부실을 해결해야 하는 역할까지 떠맡게 돼 올해 부진한 실적을 낼 가능성이 커졌다며 우려하는 것이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최근 주식 시장이 점차 살아나고 있지만, 부동산 시장은 신규 분양이 다시 활기를 띨 정도로 온기가 돌지는 못한 상황이다”라며 “특히 부동산 PF 사업 가운데 지방 분양 비중이 커 부실 우려가 단기간에 해소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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