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리스스토리] 금빛 한판승의 태극전사…마약 잡는 국가대표 꿈꾼다
경기북부청 국제범죄수사대 김성민 형사
아시안게임 2연속 유도 금메달리스트
"국민 안전으로 응원 보답하겠다"
[더팩트ㅣ김세정 기자] 수십번 심호흡하고 정신을 무장해도 매트에 오를 때마다 머리카락이 쭈뼛쭈뼛 섰다. 가슴에 달린 태극마크가 때로는 무거우면서도 벅찼다. 도복을 벗고, 이제는 범인을 잡으러 팔도를 뛰어다닌다. 두근거림은 비슷하지만 부담감은 지금이 더 크다. 언제 어디서 돌발상황이 발생할지 모르기 때문이다. '새내기' 형사에게 인생은 긴장의 연속이다.
◆한국 유도 중량급 간판스타, 경찰로 제2의 인생
경기북부경찰청 국제범죄수사대 소속 김성민 형사의 이력은 '금빛'이다. 아시안게임 2연속 금메달리스트. 2007년부터 유도 국가대표로 활약한 김 형사는 10년 넘게 한국 유도 100kg 이상 체급의 간판으로 활동했다. 도쿄올림픽을 앞두고 국가대표 최종선발전에서 고배를 마시면서 선수 생활을 접었다. 좌절하진 않았다. 김 형사에게 인생은 도전의 연속이니까.
경찰로 제2의 인생을 시작하기로 했다. 은사인 고 김재식 감독의 영향이 컸다. 히로시마 아시안게임 은메달리스트인 김 감독은 특채로 경찰관이 됐다. 김 형사는 "그분에게 배우면서 경찰관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고 말했다. 대회와 면접을 거쳐 2021년 무도특채에 합격했다. 이듬해 1월 중앙경찰학교에 들어간 날, 은사의 부고 소식을 접했다. 8개월 교육을 단단히 견뎌내고 마침내 제복을 입었다.
"유도복을 입을 땐 가슴의 태극기가 자랑스럽도록 경기를 했습니다. 옷만 바뀌었을 뿐 여전히 국가대표라고 생각합니다. 선수 때 응원을 많이 받지 않았습니까. 이제 경찰관으로서 안전을 지키면서 받은 걸 되돌려드린다는 생각을 합니다."
김 형사는 올해 2월 경기북부청 국제범죄수사대에 왔다. 외국인 관련 수사를 전담하지만 최근에는 주로 '마약범죄'에 집중한다. 외국인들의 마약 밀수와 유통이 늘어나면서다. 주무대는 경기 북부다. 그러나 마약범죄 특성상 다른 지역과도 얽혀 있는 경우가 많아 차를 타고, 배를 타고 전국을 누빈다. 김 형사는 "그래도 전지훈련보다는 덜 힘들다"고 말했다. 경찰이 된 후 가장 기억에 남는 사건을 묻자 쑥스러워하며 청산도에서 태국인 마약 사범들을 검거했던 일을 꼽았다.
"섬에 갔어요. 여기(경기북부청)에서 차로만 6시간이 걸리고, 배를 타고 또 1시간을 더 갔어요. 미리 들어가서 잠복하다가 거기 배에서 일하는 태국인들을 잡았어요. 저희가 가니까 배를 돌리더라고요. 바다 위에서 추격전까지 했어요. 갑자기 또 배를 선착장에 대더니 내려서 뛰어가더라고요. 저도 배에서 내려서 쫓아갔어요. 이 사람들이 불법체류 중이다 보니까 처벌 후 추방당하면 재입국이 힘드니까 필사적으로 뛰거든요. 그게 가장 기억에 남아요."
외국인들은 주로 자국민들끼리 밀집 지역에 모여 마약을 투약하고, 들여온 마약을 SNS로 유통도 한다. 김 형사가 검거한 태국인들은 필로폰과 카페인 등을 혼합한 합성마약인 '야바'를 소지하고 있었다. 경기북부청 국제범죄수사대는 6만 정의 야바를 압수해 유통을 차단하기도 했다.
"이들의 범행 수법이 변화하는 만큼 저희도 변화된 수사 방법을 찾으려고 노력을 많이 하고 있어요. 범죄자 입장에서 생각해 보고, 여러 방법도 시도해요. 마약사범을 많이 검거해서 시민들을 안전하게 보호하는 것이 경찰이 할 수 있는 최고의 방법이라고 생각해서 실제 단속도 많이 하고 있고요. 검거와 처벌이 마약사범을 위축시킬 수 있을 겁니다. 마약은 중독뿐만 아니라 신경계 손상도 가져오기 때문에 한 번의 호기심으로 인생이 바뀔 수 있거든요."
◆포기 없는 검거 의지…"자랑스런 경찰관으로 살고파"
유도에서 터득한 기술은 실무에 큰 도움이 된다. 상대방을 '잡는' 방법을 알기 때문에 범인을 어떻게 제압할지 신속히 파악할 수 있다. 2차 피해가 발생하지 않도록 과감히 먼저 제압하는 경우도 있다. 그렇지만 기술과 체력보다 가치있는 건 '정신력'이다. 김 형사는 "자신 있는 부분은 끈기와 집념이다.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검거하려는 의지가 있더라. 많은 도움이 된다"고 강조했다.
화려한 경력을 지녔는데도 김 형사는 "아직 배울 게 많은 신참"이라며 자신을 낮췄다. 그는 "운동만 하던 사람이라서 부족한 부분도 있다. 검거 후에 처벌을 위해서 서류 같은 것도 만들 게 많고 할 일이 많은데 지금 막 배우는 단계"라며 "제가 못하는 부분이 있으면 팀원들이 해야 하니까 그런 게 미안하다. 차근차근 배웠다면 도움이 될 수 있을 텐데. 노력을 많이 한다"고 했다.
이 때문에 자신처럼 무도특채로 새로운 인생을 꿈꾸는 후배들에겐 '배움의 자세'를 강조한다.
"새로운 도전이고, 다시 시작이거든요. 선수촌에서 나올 땐 고참이었는데 여기선 완전 초보입니다.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는 그런 마음가짐을 잘 가질 수 있어야 해요. 또 개인보다는 국민을 먼저 생각하는 사명감도 있어야 합니다."
유독 올림픽과의 연이 없었다. 김 형사는 "운동선수로 더 많은 영광을 받고 싶은 욕심이 있는 것은 사실이다. 올림픽 메달만 없어서 아쉽긴 하다"고 했다. 그래도 괜찮다. 경찰관 김성민으로 이룰 목표가 남아 있다.
"올림픽에서 메달을 땄더라도 제가 경찰이 되는 건 변하지 않았을 겁니다. 경찰로 퇴직하는 게 인생의 목표입니다. 국민 안전을 지키고 신뢰를 얻을 수 있는 명예로운 경찰관, 자랑스러운 대한민국의 경찰관으로 살겠습니다."
sejungkim@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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