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제비뽑기로 사도광산 강제동원”…‘조선인 공식 명부’ 존재 확인
[앵커]
일제 강점기 조선인이 대규모로 강제 동원됐던 사도광산, 일본은 이 역사를 외면한 채 세계유산 등재를 시도하고 있죠.
그런데 KBS 취재 결과, 당시 강제 동원됐던 조선인의 공식 명부가 존재하는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또 제비뽑기로 아버지가 광산에 끌려갔다고 증언한 피해자 유족의 이야기도 직접 들어봤습니다.
지종익 특파원의 단독 보돕니다.
[리포트]
사도광산을 찾은 정운진 씨가 갱도 곳곳을 만져보며 눈물을 글썽입니다.
일제강점기, 자신의 아버지가 끌려 왔던 강제동원 현장을 찾아온 겁니다.
좁고 어두운 곳에서 말 못 할 고통에 시달렸을 아버지를 떠올리며 울음을 터트립니다.
[정운진/강제동원 피해자 정쌍동 씨 아들 : "이런 데서 고생하시고...제대로 대접도 못 받고 했을 텐데 얼마나 가슴이 아픈지 모르겠습니다."]
아버지가 지냈던 마을과 기숙사 터를 둘러보고, 일본인 연구자들과 함께 강제동원 피해자들을 추모했습니다.
["'이렇게 마음 아픈 곳을 네가 걷고 있구나' (하시겠네요)."]
운진 씨의 아버지 정쌍동 씨는 1943년, 전북 익산에 살다 사도광산으로 강제동원됐습니다.
마을에 할당된 두 명을 채워야 해서 어쩔 수 없이 제비뽑기를 했는데 아버지가 가게 된 겁니다.
정 씨의 일본식 이름 '히가시모토 소도'는 사도시박물관이 보관 중인 조선인 담배 배급 명부에서도 확인됐습니다.
그로부터 80년, 그 아들이 사도 주민들 앞에서 아버지의 피해를 증언했습니다.
[정운진 : "하나뿐인 아들을 사지로 보내며 안타까워했던...조부모님의 모습에 마을 사람들 모두가 가슴 아파했습니다."]
강제동원된 조선인들의 이름이 기록된 공식 명부가 따로 존재한다는 사실도 새롭게 드러났습니다.
니가타현립문서관의 1414번 자료, '반도 노무자 명부' 즉, 한반도에서 온 조선인 노동자의 명단이란 뜻입니다.
1980년대 일본 연구진들이 사도광산 측으로부터 조선인 명단을 받아 마이크로 필름 형태로 보관한 것으로 보입니다.
아직 공개 안 된 강제동원 명단일 가능성이 큰데, 니가타현과 사도광산은 모두 공개를 거부했습니다.
[니가타현립문서관 관계자 : "거짓말로 '없다'고 할 수는 없기 때문에 이렇게 말씀드립니다만...(사도광산으로부터 허가 같은 게 있으면 볼 수 있습니까?) 물론입니다."]
사도광산의 연도별 강제동원 피해자 수, 모두 합쳐 1,519명이란 숫자가 유일하게 기재된 것으로 알려진 '사도광산사' 원본도 처음 확인됐습니다.
[다케우치 야스토/강제동원 연구자 : "전부 1,519명이라는 숫자가 나옵니다. 그래서 (전체 수가) 명확해진 겁니다."]
일본 정부가 사도광산의 세계유산 등재를 노리고 있지만 이곳의 강제동원 실태는 아직 제대로 파악되지 않았습니다.
우리 정부가 그 존재가 확인된 공식 명단을 확보하기 위해 적극 나서야 하는 이윱니다.
사도광산에서 KBS 뉴스 지종익입니다.
촬영:윤원덕/영상편집:서삼현/그래픽:서수민/자료조사:문지연
지종익 기자 (jigu@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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