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123층 롯데월드타워를 19분만에… ‘스카이런’ 마라톤 참가해 보니
3m폭에 반복되는 계단… 100층 도달하자 성취감
43분28초 만에 정상 밟았지만 내려가는데는 1분
다섯번째 ‘스카이런’ 2000명 참가, 참가비 6800만원 전액 기부
류제돈 롯데물산 대표 “남녀노소 즐거운 경험 만드는 것이 목표”
5세 최연소·82세 최고령 참가자도 가족과 함께 ‘완주’
19분46초와 43분28초.
123층의 롯데월드타워를 계단으로 주파하는 수직마라톤대회 ‘2023 스카이런’의 경쟁 부문 남성 우승자의 기록과 기자의 기록이다.
우승자 김창현(24)씨는 “70층 정도를 지나면서부터 힘들었다. 목에서 피 맛이 나더라”라고 했지만, 직접 뛰어보니 전혀 와닿지 않는 말이었다. 일주일에 두 차례씩은 꾸준히 운동을 하고 있어 ‘497m(롯데월드타워의 최상층 높이)쯤이야’라고 여겼지만, 첫 번째 피난안전구역이 있는 22층에서부터 고비가 찾아왔다.
롯데월드타워는 1층부터 22층까지 1개 층을 오르려면 약 30개의 계단을 밟아야 한다. 1개에 15cm 높이의 계단을 밟기를 수백 번, 계단에 익숙하지 않은 다리가 무겁게 느껴졌다. 김씨는 “1분 40초마다 10개층을 올라가는 것을 목표로 하고 도전에 임했다”고 했지만, 막상 계단을 오르다 보니 속도를 내는 것은 엄두도 내지 못했다.
첫 번째 피난안전구역이 있는 22층을 지나자 1개 층을 오르는 데 필요한 계단의 숫자가 23개로 줄었다. 다리도 점차 계단에 익숙해지면서 한결 편해졌지만, 땀이 나기 시작했다. 계단실의 바닥에도 앞서 타워를 오른 참가자들의 땀이 떨어졌다 마른 자국들이 여기저기 흩어져 있었다. 목에 두른 수건으로 얼굴을 닦는 참가자들도 보였다.
타워의 절반쯤인 60층에 도달하자 마련된 피난안전구역이 반갑게 느껴졌다. 피난안전구역은 타워에 화재 등의 긴급상황이 발생할 경우, 타워 안에 있는 사람들이 대피할 수 있도록 마련된 공간으로 타워의 22층, 40층, 60층, 83층, 102층에 모두 5곳이 마련돼 있다. 피난안전구역은 이날 스카이런 진행을 위해 참가자들이 휴식을 취할 수 있는 의자와 물과 음료 등을 제공하는 공간으로 사용됐다. 또 유사시 신속한 대응을 위해 응급구조사가 대기하기도 했다.
세 번째 피난안전구역이 있는 60층을 지나면서부터는 기계적으로 다리가 움직이며 계단을 올랐다. 3개 층마다 배치된 안전요원들이 참가자들을 응원하기 위해 “파이팅”을 외치며 손뼉을 치는 소리도 귀에 잘 들어오지 않았다. 계단을 활용한 제품 광고들도 있었지만, 폭 3m의 회색 계단실이 계속해서 반복된다는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
83층에 가까워지면서 계단실 한쪽에서 휴식을 취하는 참가자들이 눈에 띄었다. 스카이런은 좁은 계단실에 인파가 몰리는 것을 막기 위해 출발선에서 4~5명씩 조를 나누어 참가자들을 출발시키는데, 이때쯤부터 후발로 출발한 참가자들이 앞서 출발한 참가자들을 앞지르는 모습이 자주 나타났다.
우승자 김씨를 비롯해 이날 처음으로 정상을 밟은 참가자인 노현우(34)씨, 여성 부문 우승자 정해란(29)씨 등 많은 참가자가 ‘70층부터가 진짜 고비’라고 말한 까닭을 알 수 있었다. 계단에는 ‘돌아가기엔 너무 많이 올라왔어요. 우리는 완주할 수 있다’ 등의 문구가 쓰여 있기도 했다.
100층에 도달하자 끝이 가까워지고 있다는 생각에 기운이 났다. 성취감이 들기 시작하면서 100이란 숫자가 반갑게 느껴졌다. 특히 102층 안전구역을 지나 116층에 도달하면 고지가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을 알려주기라도 하는 듯 ‘현재 층부터는 롯데월드타워 전망대 서울스카이입니다’라는 문구가 나타나면서 계단실의 벽이 검은색으로 바뀐다.
앞서 이날 처음 정상을 밟은 노씨는 “정상에 올라왔을 때보다 116층에서 배경색이 바뀐 부분에서 끝난다는 느낌을 강하게 받았다”고 말하기도 했다.
123층에 도달하자 ‘삑’하고 배번호에 달린 센서가 자동으로 완주를 확인하는 소리와 함께 결승선이 눈앞에 보였다. 결승점을 통과하자 손바닥보다 작은 메달이 주어졌다.
메달의 앞면에는 롯데월드타워의 모습과 스카이런이라고 적혀있었고, 뒷면에는 롯데월드타워의 건축물 높이를 의미하는 숫자인 ‘555′와 층수 ‘123′, 계단 수 ‘2917′이 적혀있었다. 먼저 도착한 참가자들은 결승점을 배경 삼아 인증 사진을 찍기도 하고, 타워 밖 풍경을 배경으로 메달을 들며 사진을 찍으며 완주를 기념했다.
이후 스카이런 참가자 전용 엘리베이터를 타면 1분 만에 124개의 층을 내려가 지하 1층에 도착한다. 건물 밖으로 나가 부스에서 본인의 기록을 확인하고, 완주 키트를 받으면 대회는 끝이 난다. 휴대전화 앱을 통해 확인한 결과 2.15㎞를 걸었으며, 심박 수 범위는 130~199bpm인 것으로 나타났다. 소모한 열량은 238Kcal로 나타났다.
◇ 5번째 맞는 스카이런… 류제돈 “남녀노소 즐거운 경험이 목표”
22일 열린 스카이런은 2017년 시작돼 올해로 다섯 번째 열렸다. 코로나19 확산 이후 4만의 ‘노(NO) 마스크’ 대회로 참가 인원도 기존 1000명에서 경쟁 부문만 1200명에 비경쟁 부문을 포함하면 2000명으로 두 배가 됐다. 4만원의 참가비도 있지만, 지난달 20일 접수 첫날 5분 만에 신청이 마감됐다. 이번 대회로 모인 참가비 약 6900만원은 ‘보바스어린이의원’에 참가자 개인 명의로 전액 기부된다.
대회에 참가한 모든 참가자에게는 ‘푸마(PUMA)’에서 만든 스카이런 공식 티셔츠와 배 번호 등이 담긴 ‘레이스 키트’가 제공됐다. 경쟁 부문에는 기록에 따라 트로피와 함께 ‘롯데 상품권’ 123만원(1위), ‘시그니엘서울 스테이 2인 식사권(2위)’, ‘푸마 운동용품 세트(3등)’이 주어졌다.
류제돈 롯데물산 대표는 이날 개회사를 통해 “남녀노소 구분 없이 즐거운 경험을 만들어가는 것이 이 대회의 목적”이라며 “스카이런이 롯데월드타워만의 대표 행사로서 착한 대회, 자랑스러운 대회가 될 수 있도록 계속 발전 시켜 나가겠다”고 했다.
류 대표의 말처럼 기록이 아닌 가족이나 친구들과 나들이로 행사를 즐기는 참가자들도 많았다. 이날 대회 최연소 참가자인 박재희(5)군은 “계단으로 123층을 가보고 싶어 왔다”며 “엄마와 13층에 있는 집에 계단으로 올라가는 연습을 열심히 하고 왔다”고 했다. 박군은 이날 엄마 이지혜(36)씨와 박창현(38)씨와 함께 1시간 14분 만에 타워 정상에 올랐다.
최고령 참가자인 최재홍(82)씨는 “도봉산 아래 살고 있어서 평소에 걷는 운동을 좋아하고 30년 가까이 등산을 했다”며 “건물을 오르는 마라톤 대회가 열린다고 해 손녀에게 부탁해 함께 왔다”고 했다.
그는 “평소 다니는 산에서 계단을 오르는 연습을 하고 15층 건물인 자택을 계단으로 오르내리면서 연습도 했다”며 “45분을 목표로 오를 것”이라고 했다. 최씨는 이날 함께 온 손녀와 함께 47분30초의 기록으로 완주했다.
이날 경쟁 부문 여성 1위 기록을 세운 정씨도 함께 마라톤을 즐기는 지인들과 행사장을 찾았다. 정씨는 이날 24분28초의 기록으로 완주했다.
그는 “‘수직마라톤’이 이색적이라 함께 마라톤을 즐기는 지인들과 함께 참가하게 됐다”면서 “1등을 하니 축하해주는 사람들이 있어 더욱 좋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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