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재찬의 프리즘] 전세사기 피해자 구제법안 심의 서둘러야

양재찬 편집인 2023. 4. 22. 19: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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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해자 3명 극단적 선택
여야 뒤늦게 따로국밥 전세사기 대책
남탓 멈추고 법안 심사 서둘러야
주거 안정, 정치권이 지켜야 할 기본권
국회는 이제라도 초당적 · 최우선적으로 전세사기 피해 관련 법안 심의를 서둘러야 한다. 주거안정은 정치권이 마땅히 보장해야 할 기본권이다.[사진=뉴시스]

정치권과 국회는 늘 이런 식으로 뒤늦게 부산을 떤다. 피해자 3명이 극단적 선택을 하는 등 전세사기가 사회문제화하자 여야 정당들이 경쟁적으로 태스크포스(TF)를 구성하고 관련 대책을 발표했다. 여야는 전세사기 피해 주택의 경매를 유예하고, 피해자를 대상으로 한 긴급 저리 대출을 시행하는 데엔 뜻을 같이했다.

아울러 피해 주택을 경매 시 임차인에게 우선매수권을 부여하도록 제도를 보완하는 방안도 검토하기로 했다. 하지만 피해 주택을 공공매입하는 방안과 전세사기 피해자 구제 특별법에 대해선 이견을 드러냈다.

국민의힘은 피해 주택 공공 매입 방안을 두고 선순위 채권자에게만 이익이 돌아가고, 사인私人간 악성 채무의 공적 변제는 국가재정에 부담을 준다며 반대했다. 더불어민주당과 정의당 등 야당은 특별법에 의한 '선先지원 후後구상권 청구' 해법을 주장했다. 정의당은 초당적 전세사기 재난 대응기구 설치를 요구하며 '깡통전세 대책 3법'을 제안했다.

전세사기 문제가 불거진 원인과 관련해 여야는 이번에도 서로 네 탓을 했다. 국민의힘은 문재인 정부의 부동산 정책 실패로 집값이 급등한 가운데 졸속 임대차3법 개정으로 전세 문제를 악화시켰다고 주장했다. 민주당은 피해자들이 지속적으로 경매 중지를 요청했음에도 늑장 대응해 벼랑 끝으로 몰았다며 윤석열 정부 책임론으로 반격했다.

어느 정부가 책임이 크냐는 논란을 넘어 국회의 입법 미비와 소홀로 제도의 허점이 노출돼 전세사기의 피해가 커진 점을 간과할 수 없다. 국회 의안정보 시스템에 따르면 21대 국회에서 전세사기 방지와 피해자 구제 등을 위한 법안은 30여건에 이른다.

상습적으로 전세보증금을 돌려주지 않는 악성 임대인 명단을 공개하고, 세금 체납 시 임대사업자 등록을 불허하는 법안은 최근에야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전세사기의 주된 대상인 소형 빌라와 오피스텔을 분양대행업 관리 대상에 포함시키는 법률 개정안 등 20여건은 소관 상임위원회에 계류돼 있는 상태다.

국토교통부가 올해 2월 전세사기를 차단하겠다며 6개 법률을 바꾸기 위해 내놓은 13개 개정안 중 5건도 상임위 문턱을 넘지 못했다. 전세사기 피해자들 입장에서 가장 절실한 문제는 보증금 회수다.

공공이 피해 주택 채권을 매입해 임차인에게 적정 수준 보증금을 지급하는 법안 등은 3월말 발의됐다. 전셋집이 경매·공매되는 경우 재산세 등 지방세보다 세입자 임차보증금을 먼저 변제하자는 지방세법 개정안도 올라와 있다.

인천시에 따르면 속칭 '건축왕' '빌라왕' '청년 빌라왕' 등 3명이 소유한 주택은 3008호다. 이중 약 2500호가 전세사기 피해를 본 것으로 추정된다. 또한 피해자 중 절반 이상이 20∼30대 세입자다. 이미 집이 경매에서 낙찰된 피해 청년들은 수천만원 보증금을 날린 데다 전세계약 만료에 따라 전세대출금까지 갚아야 한다.

피해가 이 정도면 사회적 재난이다. 더구나 전세사기 피해가 인천을 넘어 경기도 동탄, 부산 등 전국으로 확산하는 모습이다. 주거안정은 마땅히 보호해야 할 국민 기본권이다. 전세사기로 고통받는 세입자들은 부동산 투기를 한 게 아니다. 낮에 일하고 저녁에 몸 뉠 곳을 찾는 청년들이 대다수다.

하지만 그동안 정부·여당의 전세 문제에 대한 대응은 너무 느리고 소극적이었다. 지난해부터 집값이 하락하면서 '깡통 전세'가 속출하고, '빌라왕' '건축왕' 등 전세사기 피해가 잇따랐다. 그럼에도 이번 비극적 사태가 터지기 전까지 정부가 내놓은 대책은 저리 전세자금 대출과 주거지원 정도였다.

거의 전 재산을 날릴 처지인 피해자들에게 또 대출을 받으라거나 월세를 내야 하는 주거지원이 과연 실효가 있겠는가. 대책이 나온 지 두 달이 넘도록 이를 이용한 피해자는 10명도 안 됐다.

국회의 입법 미비로 제도적 허점이 노출돼 전세사기의 피해가 커진 점을 간과할 수 없다.[사진=뉴시스]

답답하기는 거대 야당인 민주당도 마찬가지다. 민주당이 발의한 주택임차인의 보증금 회수 및 주거안정 지원을 위한 특별법안과 정의당이 발의한 공공매입 특별법안이 이미 상임위에 올라와 있다. 의지가 있다면 당장이라도 상임위를 열어 심의하고, 본회의에서도 처리할 수 있을 것이다. 국회에서 거론되는 5월 공청회, 6월 처리 일정은 너무 한가하다.

국회는 이제라도 초당적·최우선적으로 전세사기 피해 관련 법안 심의를 서둘러야 마땅하다. 최우선 변제금액을 상향 조정하거나 갭투기를 근절하는 대책도 긴요하다.

내년 총선을 의식해 대규모 공공투자사업 추진 여부를 결정하는 예비타당성조사의 면제 기준을 완화하는 데는 여야가 손을 맞춰 전격 처리하면서 국민의 주거안정과 관련된 긴급 중대 사안은 왜 이리 더딘가. 국회가 관련 입법을 더 이상 미적거리다간 사회적 재난을 방조하는 집단이란 지적을 면하기 어려울 것이다.

양재찬 더스쿠프 편집인
jayang@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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