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 독일 정치 개입하려 했다" 내부 문건 유출

김지희 기자 2023. 4. 22. 1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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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P, 크렘린궁·러 정치전략가 사이 회의 내용 문건 공개
유럽 내 반전 정서 불러일으키는 방안 중점 논의돼
2월 25일 독일 베를린에서 우크라 무기 원조에 반대하는 ‘평화 시위’가 열리고 있다. AP연합뉴스
[서울경제]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러시아가 친러 성향의 독일 내 극우·극좌 세력을 하나로 묶어 서방의 대러 전선에 균열을 일으키려 한 정황이 담긴 러시아 내부 문건이 공개됐다. 문건은 독일 정계를 개편해 반전(反戰) 여론을 높이고 우크라이나 지원은 약화시키려 했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미국 일간 워싱턴포스트(WP)는 유럽의 한 정보기관이 입수한 해당 문건을 살펴본 결과 러시아가 독일 급진좌파 정당 좌파당(Die Linke) 일부 세력과 극우정당 '독일을 위한 대안'(AfD)을 합쳐 새 정치연합체를 구성하게 하려 한 것으로 드러났다고 21일(현지시간) 보도했다.

크렘린궁 당국자와 러시아 정치전략가들 간에 진행된 회의 내용을 기록한 이 문건들은 작년 7월부터 9월 사이 작성됐다. 회의에선 독일을 시작으로 유럽에 반전 정서를 불러일으키는 방안이 중점적으로 논의됐다.

작년 7월 13일 회의를 주재한 세르게이 키리옌코 러시아 대통령 행정실 제1부실장은 유럽 국가들의 우크라이나 지원을 약화하기 위해선 독일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고 강조했다. 같은 해 9월 9일 작성된 문건에선 자라 바겐크네히트 의원을 중심으로 한 좌파당 일부 세력과 AfD를 연대시켜 새로운 정치연합체를 출범시킨 뒤 독일 내 선거에서 과반 의석을 획득하게 한다는 계획이 제시됐다.

당시 AfD의 지지율은 13% 안팎이었다. 동독 출신으로 한때 공산주의자였던 바겐크네히트 의원이 전국적으로 상승세를 보인 지지율을 등에 업고 공공연히 신당 창설을 고려 중이라고 말하던 시점이었다. 현지 주간지 슈피겔이 실시한 여론조사에선 바겐크네히트 의원이 AfD 지지세력의 표를 흡수해 전국투표에서 최고 24%의 득표율을 보일 것이란 전망이 제기되기도 했다.

러시아 측은 바겐크네히트 의원을 중심으로 한 좌파당 파벌과 AfD의 연대가 성사될 경우 AfD에 제안할 성명서까지 작성한 상황이었다고 WP는 전했다. 문제의 성명서에는 "무능한 정치인들이 독일을 태생적 동맹국인 러시아와의 분쟁으로 이끌고 있다"면서 러시아에 대한 제재가 독일의 국익에 배치된다는 등의 내용이 담겼다. 이 성명서가 실제로 AfD에 전달돼 검토됐는지는 확인되지 않았다.

다만 해당 문건들이 작성된 시점에 바겐크네히트 의원의 측근과 AfD 일부 구성원이 러시아 당국자들과 접촉한 사실은 확인됐다고 WP는 덧붙였다. 바겐크네히트 의원은 올해 2월 25일 베를린 브란덴부르크 문 앞에서 우크라이나에 대한 무기 제공을 중단할 것을 촉구하는 시위를 벌였다. 이 시위에는 AfD 소속 인사 다수가 참석한 가운데 경찰 추산 1만 3000명, 주최 측 추산 5만명이 모였다.

러시아가 독일 좌파당과 AfD의 결합을 추진한다는 방침을 정한 시점에 맞춰 AfD에선 바겐크네히트 의원을 지지한다는 목소리가 동시다발적으로 나왔고, 러시아 선전매체로 분류되는 독일 극우 잡지 '콤팩트(Compact)'는 '최고의 수상 - 좌우 모두를 위한 후보'라며 바겐크네히트 의원을 조명하는 표지 기사를 싣기도 했다고 WP는 지적했다.

AfD는 이러한 의혹을 묻는 말에 답변을 거부했다. 드미트리 페스코프 러시아 크렘린궁 대변인은 "이건 100% 가짜"라며 "우리는 지금껏 (독일 정치에) 결코 개입한 적이 없으며 지금은 정말로 이런 것에 쓸 시간이 없다"고 말했다. 바겐크네히트 의원은 WP에 보낸 성명에서 "AfD의 부류들과는 어떤 형태로든 어떠한 협력이나 동맹도 없을 것"이라면서 자신이 러시아 당국자나 대리인 등과 연락을 주고받았을 것이란 이야기는 "우스꽝스러운 이야기"라고 말했다.

WP는 러시아의 전신인 옛 소비에트연방(소련)도 평화시위를 악용해 서방을 분열시키려는 전술을 시도한 적이 있다고 지적했다. 익명의 독일 고위급 안보 당국자는 "우린 소련이 냉전 때부터 반전 운동에 영향을 미치고 조종하려고 시도했던 것을 알고 있었다"고 말했다.

김지희 기자 ways@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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