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언제 재판에서 졌지?”…‘노쇼 변호사’에 우는 의뢰인들 [법조 인싸]

안정훈 기자(esoterica@mk.co.kr) 2023. 4. 22. 1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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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개월 간 패소사실 안 알려도
눈 뜨고 당해야 하는 의뢰인들
“법원서 최소한의 안내 해줘야”
자격미달 변호사 솜방망이 처벌
징계기록 확인 어렵단 지적도
자료 접근·청구 공평하게 이뤄지는
‘디스커버리 제도’ 도입 격론
권경애 변호사. [사진=연합뉴스]
권경애 변호사가 본인이 수임한 학교폭력 소송에서 3회 불출석으로 원고 패소했음에도 판결 결과를 5개월 간 유족에게 알리지도, 기한 내 상고도 하지 않아 논란이 일고 있습니다.

학교폭력 피해자 유족은 애타게 답변만 기다리다 직접 권 변호사 사무실을 방문한 후에야 패소 사실을 알게 됐고, 패소에 따라 피고의 소송비용까지 물어줘야 하는 처지에 처했는데요.

이번 ‘법조 인싸’ 코너에서는 소송을 통해 드러난 권 변호사의 문제점은 무엇이었는지, 이러한 문제점을 방지하기 위한 민사소송 제도 개혁 논의에는 어떤 것들이 있는지 짚어보겠습니다.

“안 나오셔도 돼요” 해놓고 패소 사실 알리지도 않은 권경애 변호사
지난 2015년 고(故) 박주원양이 학교폭력으로 극단적 선택을 하자 어머니 이기철씨는 2016년 권 변호사를 선임해 본격적인 소송에 돌입합니다.

2016년 8월 3일 소장을 제출한 권 변호사는 1심에서 일부 승소했으나, 피고 측에서 항소하면서 이어진 항소심에서 3회 불출석하며 2022년 11월 24일 최종 패소했습니다.

민사소송법에선 원고 측에서 3회 불출석할 경우 원고가 항소를 취하한다는 의사로 받아들여지기 때문입니다.

권경애 변호사는 그 이후에도 5개월 동안 유족에게 패소 사실을 알리지 않았고, 판결 선고일로부터 2주 이내 상고를 제기해야 한다는 민사소송법을 따르지도 않아 패소가 그대로 확정됐습니다.

이상한 건 권 변호사가 “재판에 꼭 출석해야 하느냐”고 물은 이씨에게 “제가 대리인으로 가니 안 나오셔도 된다”고 안내했다는 점입니다.

권 변호사는 이씨의 법률대리인으로서 본인이 출석하겠다고 해놓고 불출석을 이어갔고, 최종 판결을 받고도 이를 이씨에게 고지하지 않았습니다.

소송 절차에 어두웠던 이씨는 소송 당사자였음에도 권 변호사를 통하지 않으면 판결이 어떻게 진행되는지 전혀 알지 못했고, 좀처럼 진척이 없자 그제서야 변호사 사무실을 찾아가 패소 사실을 알게 됐다고 합니다.

변호사 도움 없이는 재판 상황 알 수 없는 소송당사자들
서울중앙지방법원 전경. [사진=연합뉴스]
현행 민·형사소송 절차는 소송 당사자의 법률대리인에게만 절차 관련 내용을 직접 통보해주도록 규정합니다.

변호사에게는 법원에서 변론기일 통지서를 보내고 이메일 또는 문자메시지로도 날짜를 알려주기 때문에 몰랐다고 하기 어렵습니다. 권 변호사가 책임을 피하기 어려운 이유입니다.

그러나 이번 일을 통해 법조계에선 소송 당사자가 전적으로 법률대리인에게 관련 절차를 의존하는 기존 소송 제도에도 문제가 있지 않냐는 목소리가 나옵니다.

법률 이해가 부족한 경우 사건 검색 등을 할 줄 모르는 소송 당사자도 다수기에 최소한의 안내는 필요한 것 아니냐는 지적이죠.

물론 직업윤리상 변호사는 의뢰인에게 ‘성실의무’를 지켜야 할 책임이 있습니다.

엄격한 직업윤리를 담보하는 변호사란 직업의 특성상 이번 권 변호사의 논란은 극히 예외적인 경우에 속할 것입니다.

하지만 제도에는 구멍이 생기기 마련이고 제2, 제3의 권 변호사 논란은 앞으로도 얼마든지 나올 수 있습니다.

실제로 재판에 여러 차례 불출석해 패소하면서 대한변호사협회가 ‘성실의무’ 위반으로 징계한 변호사는 매년 꾸준히 나오고 있습니다.

변협 통계에 따르면 2020~2022년 3년 간 성실의무 위반을 이유로 징계를 결정한 건수는 총 32건입니다.

원고의 간절함을 망각한 처사임에도 징계 또한 ‘솜방망이’라는 지적을 피할 수 없는 수준입니다.

A변호사는 2019년 의뢰인 동의 없이 재심청구를 취하하고 변론기일에 2회 불출석해 사건을 종결시켰음에도 과태료 200만원의 징계에 그쳤습니다.

마찬가지로 변론기일에 불출석하고 상고이유서 제출기한을 넘겨 패소한 B변호사는 정직 2개월 처분을 받았습니다.

32건의 징계 중 5년 간 변호사 자격을 잃는 ‘제명’ 1건을 제외하고는 모두 정직 이하 처분에 그쳤습니다.

의뢰인 입장에서 변호사가 과거 불미스런 일에 얽혔거나 징계를 받은 적이 있는지 확인하기 어렵다는 비판도 있습니다.

변협은 변호사법 시행령에 따라 변호사의 징계처분 기록을 홈페이지에 공개하고 있으나, 징계처분 수위에 따라 최소 3개월(견책)에서 최대 3년(영구제명•제명) 동안 공개하는 데 그치고 있어 일반 시민이 변호사를 수임하는 데 커다란 ‘정보 격차’로 작용하고 있습니다.

“모두가 자료 접근 공평하게” ‘디스커버리 제도’ 도입 필요한가
보다 근본적인 관점에서 소송 제도 개편을 고민해봐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옵니다.

미국 소송에서 주로 운영하는 ‘디스커버리 제도’ 도입 검토가 그것입니다. ‘디스커버리’ 제도는 소송 전 원고와 피고 양측이 증거를 공개·청구하고 조사할 수 있도록 의무화하고 있습니다.

해당 제도에선 소송 이해관계자들이 소송 관련 자료에 대한 평등한 접근권을 보장받으며, 변호사나 검사가 이에 성실하게 임하지 않으면 판사가 징계를 내릴 수 있도록 해 자료를 충실히 제출하도록 유도합니다.

‘디스커버리 제도’의 효용성에 대해서는 법조계에서 아직 논박이 오고가는 상황입니다.

재판의 효율성과 실체적 진실 발견에서 유리하다는 찬성론이 있는 반면, 소송기간과 소송비용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다는 점에서 오히려 일반 시민들 입장에선 부담일 것이란 반론도 팽팽히 맞서고 있습니다.

서울 서초구 서초동에서 일하는 한 변호사는 이와 관련해 “판사가 증거조사를 주도하는 현행 소송방식보단 변호사가 할 수 있는 일이 늘어나고, 일감 증가와 수임료 상승을 기대할 수 있다는 점에서 ‘디스커버리 제도’를 지지하는 의견도 있다”며 “그러나 변호사 수임료가 상승한다는 게 반갑지 않은 의뢰인도 분명 있을 것이기에 장단점이 있는 제도일 것”이라는 의견을 밝혔습니다.

※‘법조 인싸’에서는 법조계의 ‘인싸’(를 꿈꾸는) 기자들이 법조계 인사들의 ‘인사이트’와 기자들의 관점을 전합니다. 주중 기사에서 팩트 전달에 집중했다면, 주말 코너에서는 법조계를 출입하며 쌓은 나름의 시각을 보여드리도록 노력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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