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달에 딱 13일만 수확...“미신” 오해 받지만 伊유명 와이너리 고집 부리는 까닭 [전형민의 와인프릭]

전형민 기자(bromin@mk.co.kr) 2023. 4. 22. 15: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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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와인의 조건은 무엇일까요? 좋은 비티스 비니페라(vitis vinifera·양조용 포도종 통칭)와 특징적인 기후와 토질(terroir·떼루아), 축적된 경험과 통찰력을 지닌 양조자 등 다양한 여건이 적절한 상호작용을 일으켜야 합니다. 그런데 사실 인간이 개입해서 좌지우지할 수 있는 부분은 극히 제한적이죠.

어쩌면 신이 인간에 내린 최고의 선물이라는 와인을 향한 수식어는, 인간의 손으로 어쩔 수 없다는 선각자들의 깨달음에서 비롯됐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인간이 만들지만 정작 인간의 의도대로만 만들어지지는 않는 술이라고 할까요. 이 때문에 한때 양조자들은 최고의 와인을 만들기 위해 자연을 극복하려고 했습니다. 사실 지금도 여러 와이너리에서는 과학을 통해 이런 노력하고 있죠.

그런데 최근에는 오히려 자연을 받아들이고, 주어진 환경 속에서 최고의 와인을 만드려는 다양한 시도도 나타나고 있습니다. 아직은 여러 논쟁거리가 남아있기는 합니다만, 포도 재배 과정에서부터 이후 양조 과정까지 화학 비료나 농약, 제초제를 사용하지 않고 자연을 따르는 농법을 바이오다이나믹(biodynamic·비오디나미)이라고 통칭하는데요. 유기농(organic·오가닉)과도 맥이 닿아있습니다.

와인프릭 첫 회에서 다뤘던 키안티클라시코(Chianti Classico) 지역 역시 바이오 다이나믹에 앞장서서 도전하고 있는 지역 중 하나입니다. 오늘은 최근 다녀온 따끈따끈한 키안티클라시코 지역 와이너리의 오가닉과 바이오 다이나믹 이이야기를 해보겠습니다. ※의미가 불분명한 내추럴 와인에 대해서는 다루지 않았습니다.

키안티클라시코의 상징인 갈로 네로. 키안티클라시코 지역 곳곳에 이런 검은 수탉 상징이 세워져있다. 사진은 라다(Radda) 지역에 세워진 갈로네로.
양조자는 거들 뿐… 와인은 자연이 만든다
갈로 네로(Gallo Nero·검은 수탉)로 유명한 키안티 클라시코 와인은 새로 도입하는 UGA(Unita Geografiche Aggiuntive·지리적 표시 단위)를 기준으로 전체 지역(74455㏊) 중 13.16%인 9800㏊에서 생산합니다. 전체 지역의 3분의 2가 산지인 것을 감안하면, 사람이 사는 부분을 제외하고는 거의 대부분 지역에 포도나무를 키우는 셈인데요.

키안티클라시코 와인협회(Consorzio Vino Chianti Classico)의 조반니 마네티(Giovanni Manetti) 회장은 “이 지역의 유기농 농법 보급률은 올해 60%에 이를 것으로 추산된다”고 말했습니다. 직전 조사에서는 52.5%였죠. 그는 우리에게도 친숙한 키안티클라시코 와인인 폰토디(Fontodi) 와이너리의 오너이기도 합니다.

한 지역에서 절반이 넘는 와이너리가 오가닉 인증을 받는 일은 흔하지 않습니다. 지역마다 조금씩 기준이 다릅니다만, 한동안 당연시되던 화학 비료를 사용하지 않아야 하고 그로 인한 생산량이 감소하는 것도 감수해야 하거든요. 여러모로 노동력도 더 투여돼야 합니다. 결국 오가닉과 바이오다이나믹은 생산자에게는 오히려 제약이자 불편한 방식인 셈이죠.

그렇다면 키안티클라시코 지역은 왜 이토록 오가닉과 바이오다이내믹에 진심인걸까요? 마네티 회장은 “사람의 활동이 포도에 영향을 주는 것을 최소화하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여기에는 ‘인터내셔널한 맛보다는 그 지역과 그 기후를 담아내는 와인을 만들겠다’는 키안티클라시코 지역 생산자들의 철학이 담겨있습니다. 당장의 돈벌이보다 제대로된 퀄리티의 와인을 만들겠다는 자부심이기도 하죠.

폰토디 조반니 마네티 회장. 마네티 회장은 와인 양조에 대해 “하늘과 땅 사이 어딘가에서 사람이 하는 일”이라고 말했다.
와인 양조, 하늘과 땅 사이 어딘가에서 사람이 하는 일
또 마네티 회장은 “와인을 만드는 것은 하늘과 땅 사이 어딘가에서 사람이 하는 일”이라며 “양조자는 단지 네이쳐 어시스턴트(자연의 보조자)일 뿐”이라고 강조했습니다. 와인을 만드는 요소 중 옮길 수 없는 것은 땅과 기후 뿐이고, 이를 표현해내는 게 바로 독창성이자 경쟁력이라고 본 것 입니다.

그는 “오가닉과 바이오다이내믹으로 자원을 아끼고 공해 배출을 줄이고 환경을 아낄 수 있는 농업의 미래”라고 덧붙였습니다. 최근 2~3년 사이 국내 기업들에서도 유행하는 지속가능경영(Corporate Sustainability Management)의 이탈리아 농업판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실제로 둘러본 폰토디 와이너리는 면적의 상당 부분을 끼아니나(Chianina) 소를 방목해 키우는 데에 할애하고 있었습니다. 암소만 무려 64마리에 달하는데요. 이는 암소의 분변을 포도밭의 지력(地力)을 돋우는 촉매제로 활용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끼아니나는 우리로 치면 한우 같은 토스카나 토착 소 품종입니다. 피렌체에 여행가면 흔히들 드시는 티본 스테이크가 이 소의 고기로 만들어졌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한국인들에게 잘 알려진 달오스떼(Dall’Oste) 레스토랑도 끼아니나 고기를 사용한다고 합니다.

폰토디에서 방목하고 있는 끼아니나. 폰토디는 포도밭의 넓은 초원의 일부를 끼아니나에게 양보했다. 폰토디는 화학비료를 전혀 쓰지 않고 여기서 나오는 암소의 분변을 거름으로 활용한다. /사진=전형민 기자
1달 중 13일만 와인을 만드는 이유
폰토디는 약간은 미신 같이 보이는 바이오다이나믹도 적극 도입했습니다. 가장 재밌는건 1달 중 평균 13일만 만들어진 와인의 병입이 가능하다는 점입니다. 가을에 포도를 수확하는 것 역시 13일만 가능하죠. 마네티 회장은 이를 ‘달이 차고 기우는 시기에 맞춰 외력(外力)의 간섭을 최소화하고, 가장 컨디션이 좋은 상태로 최상의 결과물을 얻기 위함’이라고 소개했습니다.

무슨 뚱딴지 같은 소리일까요? 일견 미신(superstition)에 가까워 보이는 설명에 선뜻 동의하지 못하자 그는 “바이오다이나믹은 미신이 아닌 과학”이라고 힘주어 말했습니다. 달이 지구를 타원형으로 도는 만큼, 달과 거리가 가까워지고 멀어지는 시기의 인력(引力·공간적으로 떨어진 물체끼리 서로를 끌어당기는 힘)이 다르기 때문에 달이 찼다가 기우는 시기(인력이 멀어지는 시기)가 좀 더 과실의 응축도가 뛰어나다는 설명입니다.

완성된 와인의 병입 역시 같은 원리입니다. 달이 차오르는 시기에는 와인이 보다 활성화돼있고 부피가 늘어나 집중도가 떨어지는 반면, 달이 기우는 시기에는 와인이 침착해지면서 집중도가 살아난다는 해석입니다.

이 뿐만이 아닙니다. 모든 양조 설비를 공정 과정에 따라 위에서 아래로 점차 내려오면서 진행되도록 설계했습니다. 포도를 수확한 것부터 발효와 숙성, 병입으로 이어지는 과정을 인위적인 힘을 최대한 가하지 않고 중력에 따라 자연스럽게 진행되도록 와이너리 자체를 설계한 겁니다. 어쩌면 우리가 폰토디에서 다른 키안티클라시코 와인에 비해 진한 과실미를 느꼈던 이유가 여기에 있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키안티클라시코, 판자노(Panzano) 지역 Conca d‘Oro 계곡에 위치한 폰토디 와이너리 전경. /드론 사진=전형민 기자
이러나저러나, 맛있으면 장땡
이러나저러나, 키안티클라시코와 폰토디를 비롯한 이 지역에서 생산되는 와인이 맛있고 우리나라의 입맛을 사로잡았다는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입니다. 전세계인이 찾고 있고, 특히 최근 수년 간 한국 시장의 성장세는 키안티클라시코 와인협회에서도 놀라워 할 정도니까요.(협회에 따르면, 수출국 중에 한국이 상위 10개국인 것은 물론이고 2021년 한국의 수입량이 2020년에 비해 2배, 2019년에 비해서는 4배가 증가했습니다.)

키안티클라시코는 프랑스와 함께 와인의 나라인 이탈리아에서도 가장 오래된 와인 양조 지역입니다. 역사로 따지면 고대 로마 이전인 기원전 800년경 에트루리아(Etruria)인들이 정착해 포도를 재배하고 포도주를 양조하기 시작했으니까요.

마침 이탈리아 와인협회보다도 오래된 와인기구인 키안티클라시코 와인협회가 내년 설립 100주년을 맞이합니다. 협회는 이를 기념해 100년 전 가장 먼저 협회를 창설했던 이 지역 와이너리 33곳이 공동으로 전세계에서 로드 이벤트(road event)를 벌일 계획입니다. 방어(defend)와 홍보(promotion)라는 협회 설립 초기의 정신을 다시 되새기겠다는 의미입니다.

소비자인 우리가 체감할 수 있는 가시적인 변화는 UGA(새로운 지리적 표시)의 도입이 될 전망입니다. 키안티클라시코 지역을 다시 떼루아의 특성에 따라 11곳으로 나누고 적절한 인증 과정을 거친 와인에 한해서 UGA 표시를 부착하는 방식입니다. 프랑스 와인에 비해 신뢰도가 다소 부족하게 느껴지는 이탈리아의 DOCG 체계를 보완할 수 있는 자구책이 될 것으로 기대됩니다.

현실에 안주해 과거의 영광과 유산을 뽐내기만 했어도 충분했을 키안티클라시코 지역의 양조자들의 도전과 혁신을 응원합니다.

와인은 시간이 빚어내는 술입니다. 인류의 역사와 함께 와인의 역사도 시작됐습니다. 그만큼 여러 가지 흥미로운 이야기들을 품고 있는데요. WSET(Wine & Spirit Education Trust) 국제공인레벨을 보유한 기자가 재미있고 맛있는 와인 이야기를 풀어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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