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달에 딱 13일만 수확...“미신” 오해 받지만 伊유명 와이너리 고집 부리는 까닭 [전형민의 와인프릭]
좋은 와인의 조건은 무엇일까요? 좋은 비티스 비니페라(vitis vinifera·양조용 포도종 통칭)와 특징적인 기후와 토질(terroir·떼루아), 축적된 경험과 통찰력을 지닌 양조자 등 다양한 여건이 적절한 상호작용을 일으켜야 합니다. 그런데 사실 인간이 개입해서 좌지우지할 수 있는 부분은 극히 제한적이죠.
어쩌면 신이 인간에 내린 최고의 선물이라는 와인을 향한 수식어는, 인간의 손으로 어쩔 수 없다는 선각자들의 깨달음에서 비롯됐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인간이 만들지만 정작 인간의 의도대로만 만들어지지는 않는 술이라고 할까요. 이 때문에 한때 양조자들은 최고의 와인을 만들기 위해 자연을 극복하려고 했습니다. 사실 지금도 여러 와이너리에서는 과학을 통해 이런 노력하고 있죠.
그런데 최근에는 오히려 자연을 받아들이고, 주어진 환경 속에서 최고의 와인을 만드려는 다양한 시도도 나타나고 있습니다. 아직은 여러 논쟁거리가 남아있기는 합니다만, 포도 재배 과정에서부터 이후 양조 과정까지 화학 비료나 농약, 제초제를 사용하지 않고 자연을 따르는 농법을 바이오다이나믹(biodynamic·비오디나미)이라고 통칭하는데요. 유기농(organic·오가닉)과도 맥이 닿아있습니다.
와인프릭 첫 회에서 다뤘던 키안티클라시코(Chianti Classico) 지역 역시 바이오 다이나믹에 앞장서서 도전하고 있는 지역 중 하나입니다. 오늘은 최근 다녀온 따끈따끈한 키안티클라시코 지역 와이너리의 오가닉과 바이오 다이나믹 이이야기를 해보겠습니다. ※의미가 불분명한 내추럴 와인에 대해서는 다루지 않았습니다.
키안티클라시코 와인협회(Consorzio Vino Chianti Classico)의 조반니 마네티(Giovanni Manetti) 회장은 “이 지역의 유기농 농법 보급률은 올해 60%에 이를 것으로 추산된다”고 말했습니다. 직전 조사에서는 52.5%였죠. 그는 우리에게도 친숙한 키안티클라시코 와인인 폰토디(Fontodi) 와이너리의 오너이기도 합니다.
한 지역에서 절반이 넘는 와이너리가 오가닉 인증을 받는 일은 흔하지 않습니다. 지역마다 조금씩 기준이 다릅니다만, 한동안 당연시되던 화학 비료를 사용하지 않아야 하고 그로 인한 생산량이 감소하는 것도 감수해야 하거든요. 여러모로 노동력도 더 투여돼야 합니다. 결국 오가닉과 바이오다이나믹은 생산자에게는 오히려 제약이자 불편한 방식인 셈이죠.
그렇다면 키안티클라시코 지역은 왜 이토록 오가닉과 바이오다이내믹에 진심인걸까요? 마네티 회장은 “사람의 활동이 포도에 영향을 주는 것을 최소화하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여기에는 ‘인터내셔널한 맛보다는 그 지역과 그 기후를 담아내는 와인을 만들겠다’는 키안티클라시코 지역 생산자들의 철학이 담겨있습니다. 당장의 돈벌이보다 제대로된 퀄리티의 와인을 만들겠다는 자부심이기도 하죠.
그는 “오가닉과 바이오다이내믹으로 자원을 아끼고 공해 배출을 줄이고 환경을 아낄 수 있는 농업의 미래”라고 덧붙였습니다. 최근 2~3년 사이 국내 기업들에서도 유행하는 지속가능경영(Corporate Sustainability Management)의 이탈리아 농업판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실제로 둘러본 폰토디 와이너리는 면적의 상당 부분을 끼아니나(Chianina) 소를 방목해 키우는 데에 할애하고 있었습니다. 암소만 무려 64마리에 달하는데요. 이는 암소의 분변을 포도밭의 지력(地力)을 돋우는 촉매제로 활용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끼아니나는 우리로 치면 한우 같은 토스카나 토착 소 품종입니다. 피렌체에 여행가면 흔히들 드시는 티본 스테이크가 이 소의 고기로 만들어졌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한국인들에게 잘 알려진 달오스떼(Dall’Oste) 레스토랑도 끼아니나 고기를 사용한다고 합니다.
무슨 뚱딴지 같은 소리일까요? 일견 미신(superstition)에 가까워 보이는 설명에 선뜻 동의하지 못하자 그는 “바이오다이나믹은 미신이 아닌 과학”이라고 힘주어 말했습니다. 달이 지구를 타원형으로 도는 만큼, 달과 거리가 가까워지고 멀어지는 시기의 인력(引力·공간적으로 떨어진 물체끼리 서로를 끌어당기는 힘)이 다르기 때문에 달이 찼다가 기우는 시기(인력이 멀어지는 시기)가 좀 더 과실의 응축도가 뛰어나다는 설명입니다.
완성된 와인의 병입 역시 같은 원리입니다. 달이 차오르는 시기에는 와인이 보다 활성화돼있고 부피가 늘어나 집중도가 떨어지는 반면, 달이 기우는 시기에는 와인이 침착해지면서 집중도가 살아난다는 해석입니다.
이 뿐만이 아닙니다. 모든 양조 설비를 공정 과정에 따라 위에서 아래로 점차 내려오면서 진행되도록 설계했습니다. 포도를 수확한 것부터 발효와 숙성, 병입으로 이어지는 과정을 인위적인 힘을 최대한 가하지 않고 중력에 따라 자연스럽게 진행되도록 와이너리 자체를 설계한 겁니다. 어쩌면 우리가 폰토디에서 다른 키안티클라시코 와인에 비해 진한 과실미를 느꼈던 이유가 여기에 있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키안티클라시코는 프랑스와 함께 와인의 나라인 이탈리아에서도 가장 오래된 와인 양조 지역입니다. 역사로 따지면 고대 로마 이전인 기원전 800년경 에트루리아(Etruria)인들이 정착해 포도를 재배하고 포도주를 양조하기 시작했으니까요.
마침 이탈리아 와인협회보다도 오래된 와인기구인 키안티클라시코 와인협회가 내년 설립 100주년을 맞이합니다. 협회는 이를 기념해 100년 전 가장 먼저 협회를 창설했던 이 지역 와이너리 33곳이 공동으로 전세계에서 로드 이벤트(road event)를 벌일 계획입니다. 방어(defend)와 홍보(promotion)라는 협회 설립 초기의 정신을 다시 되새기겠다는 의미입니다.
소비자인 우리가 체감할 수 있는 가시적인 변화는 UGA(새로운 지리적 표시)의 도입이 될 전망입니다. 키안티클라시코 지역을 다시 떼루아의 특성에 따라 11곳으로 나누고 적절한 인증 과정을 거친 와인에 한해서 UGA 표시를 부착하는 방식입니다. 프랑스 와인에 비해 신뢰도가 다소 부족하게 느껴지는 이탈리아의 DOCG 체계를 보완할 수 있는 자구책이 될 것으로 기대됩니다.
현실에 안주해 과거의 영광과 유산을 뽐내기만 했어도 충분했을 키안티클라시코 지역의 양조자들의 도전과 혁신을 응원합니다.
Copyright © 매일경제 & mk.co.kr.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 외국인도 극찬한 이 제도…사기꾼 득세에 사라진다면 [매부리레터] - 매일경제
- “일본까지 제칠 줄 몰랐다”…세계 9위 한국, 얼마나 많이 썼길래 - 매일경제
- 외국인이 돈뭉치 들고 달려왔다...올해 44% 급등한 기업은 - 매일경제
- “이정도면 진짜 나오겠네”…‘멋진車’ 제네시스 오픈카, 伊도 반했다 [카슐랭] - 매일경제
- 삼성전자 엎친데 덮쳤네…수천억원 날리게 생겼다는데 - 매일경제
- “00결혼해요, 그놈 보낸 청첩장 내게도 왔다”…보이스피싱 대응법 아시나요? - 매일경제
- [단독] 논산훈련소, 22군번 4900여명에게 23군번 잘못 부여…육군 ‘정정불가’ 통보 - 매일경제
- 월급 빼고 매달 5683만원 더 번다...4천명 넘어선 초고소득자 - 매일경제
- [속보] 尹 “日, 100년전 일로 무릎 꿇어야 한다는 생각 못 받아들여” - 매일경제
- 강남 “이상화♥, 금메달 딴 하루 말고 행복한 적 없다더라”(걸환장) - MK스포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