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아침 먹으니 공부 잘 돼요"…호평에도 겨우 2개교 신청, 왜?
기사내용 요약
서울교육청 '조식 시범학교' 정의여고 현장취재
시범 10개교 선정하려 했는데…예산·인력 문제
교육청 "내년도 본예산에 사업비 편성 검토 중"
[서울=뉴시스]김경록 기자 = "일단 학교에 오기만 하면 밥 먹는 게 해결돼요. 원래 아침 안 먹으면 점심시간 때까지 배가 엄청 꼬르륵 거리는데, 배고프지 않으니까 여기(위)로 관심이 안 쏠려서 든든하고 좋아요."
지난 20일 오전 7시30분, 서울 도봉구에 위치한 정의여고 3학년 김민서·도예린·신해인·오세희 학생은 학교에서 아침을 먹어 좋은 점에 대해 이같이 답했다. 2학년 박찬빈·이초원 학생은 "아침 먹으니 공부할 때 머리가 더 잘 돌아간다"며 웃었다.
"가성비가 좋다"는 반응도 있었다. 시리얼 3종과 우유, 갓 구운 크루아상과 식빵, 그리고 사과까지 포함된 조식의 한 끼 가격은 2000원. 요즘 편의점에서 삼각김밥 2개도 사 먹기 어려운 가격이다.
조식을 신청한 정의여고 학생 30명 중 23명이 7시20분부터 7시40분까지 아침을 먹고 수업에 들어갔다. 이들은 '잠보다 밥'을 선택할 정도로 만족도가 높다고 입을 모았다.
그런데 서울에서 기숙사를 운영하지 않는 학교 중 이처럼 아침밥을 제공하는 학교는 정의여고와 은평구 소재 선일여중 단 2개교에 불과하다.
정의여고와 선일여중은 서울시교육청이 추진 중인 '조식 시범 운영학교'다. 기숙사가 없는 일반학교에도 수요가 있는 경우 아침을 제공하겠다는 취지의 사업이다. 서울 10대 청소년 아침식사 결식율이 32%에 달한다는 김혜영 서울시의회 국민의힘 의원의 지적을 계기로 추진됐다.
하지만 호응은 저조했다. 교육청은 시범 운영학교로 당초 10개교를 선정하려 했으나, 정의여고와 선일여중밖에 신청하지 않았다.
학교가 아침밥 제공을 주저할 수밖에 없는 이유에는 '예산과 인력'이 핵심 문제로 꼽힌다.
정의여고도 예산 부족과 인력난을 겪고 있다. 김시내 영양사는 "학생들에게는 한 끼 당 2000원을 받고 있지만, 실제 단가는 한 끼 당 3000원"이라고 밝혔다.
교육청이 학교기본운영비 1000만원을 인센티브로 지급했지만 '역부족'이라는 반응이 나온다. 윤인국 정의여고 행정실장은 "토스트기와 오븐 등 기자재 구입에만 500만원이 쓰였다"며 "영양사와 조리원 인건비는 별도다. 부족한 부분은 학교 자체 예산으로 감당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토로했다.
매일 학생 30명의 아침밥을 준비할 인력도 부족하다. 현재 정의여고는 김 영양사와 양명순 조리원 총 2명이 준비, 조리, 배식까지 책임지고 있다. 이들은 "일찍 나와야 해 힘들지만 학생들을 위해 흔쾌히 수락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처럼 영양사 등 급식 인력이 학생들을 위해 오전 연장근무를 자처하는 경우는 드물다. 선일여중의 경우 급식 인력을 구하기 어려워 교장·교감 등 3명이 120명분의 아침밥을 직접 준비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메뉴가 단순해질 수밖에 없다. 열흘 연속 시리얼·빵이 제공되자 일부 정의여고 학생 사이에서는 '물린다'는 불만도 나온다.
김 영양사는 "주먹법 같이 간단한 메뉴나 소세지나 계란 반숙 등은 고민 중"이라면서도 "지금보다 더 일찍 나와야 할 것 같다"고 밝혔다.
정의여고는 시급을 1만3000원까지 올려 아르바이트 채용을 시도했지만, 짧고 이른 근무시간 탓에 구인에 실패했다.
교육청은 정의여고와 선일여중을 통해 조식 시범 운영 결과를 평가한 뒤 오는 2학기에도 이를 지속할지 결정할 예정이다.
결국 원하는 학생들에게 아침밥을 주는 이 사업의 성패는 '예산과 인력'에 달려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박선주 정의여고 교장은 "맞벌이 부부가 많은 상황에서 학교에서 학생들에게 아침밥을 제공하는 취지는 너무 좋지만, 예산과 인력이 충분히 확보돼야 학부모도 설득하고 학생들 신청도 이끌어낼 수 있다고 본다"며 "다양한 메뉴가 갖춰지면 아이들이 좀 더 많이 신청하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말했다.
교육청 관계자는 "전체 학교로 확대는 어렵겠지만, 두 시범학교의 반응이 좋아서 1학기 시범 운영을 토대로 평가 보고서를 작성할 생각"이라며 "내년 본예산에 학교기본운영비가 아닌 별도 사업비로 편성하는 것도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공감언론 뉴시스 knockrok@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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