휘트니 20년 이끈 와인버그, “미술관은 오케스트라”[영감 한 스푼]

김민 기자 2023. 4. 22. 1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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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일 서울 중구 신라호텔에서 만난 애덤 와인버그 휘트니미술관장. 사진: 전영한 기자. scoopjyh@donga.com


여러분 안녕하세요,

오늘은 2003년부터 20년 동안 미국 뉴욕 휘트니미술관을 이끌어 온 애덤 와인버그 관장과 만나서 나눈 이야기를 준비했습니다. 와인버그 관장은 에드워드 호퍼 전시 개막을 맞아 한국을 찾았습니다.

휘트니미술관은 미국 미술, 특히 살아있는 작가들의 예술을 중심으로 소개하는 기관입니다. 미술관이 흔히 역사에 기록된 작가를 다루는 것과는 사뭇 다른 접근이죠. 이런 방식은 미술관의 설립자였던 거트루드 밴더빌트 휘트니 여사(1875~1942)로부터 시작된 것입니다.

휘트니 여사는 미국 역사상 가장 부유한 가문 중 하나였던 밴더빌트가의 자제였습니다. 그녀의 집안사람들은 대대로 과거 유럽 거장들의 작품을 사들였지만, 스스로도 조각가였던 그녀는 자신의 주변에서 활동하는 예술가들을 후원했죠.

이런 미술관에서 30년 전부터 큐레이터로 계속 있었고, 또 20년 동안 관장을 맡아 온 애덤 와인버그(69)를 만났습니다. 그로부터 미술관 운영과 미국 미술의 정체성에 관한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호퍼가 주는 감각 - 시간, 기대, 고요함

에드워드 호퍼, 〈도시의 지붕들〉, 1932. 사진: 서울시립미술관 제공

물론 호퍼에 대해 묻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기사로 이미 소개했지만, 좀 더 자세한 내용을 전하겠습니다.

김민(민): 호퍼의 작품에 미국인들에게는 어떤 매력을 갖고 있나요?

와인버그(와): 호퍼의 작품들은 아주 정적이고 고요하게 보이는 것이 많습니다. 어떤 점에서는 일상을 붙잡고 그곳에 머무르고 싶어 하는 마음이 감동을 주는 것이 아닐까, 일상이 변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이 아닐까 생각을 해요. 그의 작품엔 분명 미국의 변화하는 시대상이 있지만, 그가 그 변화를 좋아하지 않았다는 것도 알 수 있죠.

민: 그때 미국은 세계 최강대국이 되기 직전이었잖아요. 그런데 왜 호퍼는 과거를 봤을까요?

와: 그가 무엇을 중요하고 가치 있게 여겼는지의 문제라고 봅니다. 도시 생활에서 사람들은 항상 서두르고, 바쁘고, 대화할 시간도 부족하죠. 그런 것을 호퍼는 불편하다고 느꼈고 어떤 점에서는 폭력적이라고도 느꼈을 거예요.

그는 변화의 페이스를 좋아하지 않았어요. 뉴욕 시외 허드슨강 변 작은 마을에서 자란 과거를 회상했을 겁니다. 물론 그가 평생 도시에 살며 그곳을 떠나진 않았지만 동시에 간결한 일상을 그리워했던 것이죠. 그는 변화를 싫어했지만, 시간을 멈출 수 없다는 것도 알았던 것 같아요.

민: 한국인들도 그의 작품을 공감할 것이라고 보시나요?

와: 서울처럼 큰 도시에 살면 항상 모든 것이 변하잖아요. 도시인들은 큰 변화를 앞둔 상황에서 조금만 천천히 가고 싶은 마음을 공감할 겁니다. 케이프코드의 집을 그린 작품을 보면, 그건 부자의 집도 가난한 사람의 집도 아니에요. 호퍼는 아주 작고 단순한 것도 모든 것이 중요하다는 것. 일상의 평범한 사람에게도 시가 있고 가치가 있다는 것을 보여줬고 이게 사람들이 좋아하는 이유라고 생각합니다.

에드워드 호퍼, 계단, 1949


민: 그런 것을 보면 호퍼는 보수적인 사람이었을 것 같습니다.

와: 맞아요. 정치적으로도 아주 보수적이었죠. 변화를 원하지 않았으니까요. 그럼에도 동시대의 일상을 외면하지 않았어요. ‘철길의 석양’이라는 작품은 평범한 기차역을 상징적인 장소로, 또 ‘밤의 창문’은 지금은 사라진 뉴욕의 고가 전철을 즐겨 탔던 호퍼가 본 도시 풍경을 그린 작품이니까요.

미술관은 오케스트라

미국 뉴욕휘트니미술관. 사진:휘트니미술관 제공


민: 휘트니에 오래 계셨어요.

와: 30년을 있었습니다.

민: 한국에도 많은 미술관이 지어지고 있습니다. 미술관에는 당연히 관객이 많이 와야 하지만, 또 너무 대중적인 입맛에만 맞추다 보면 깊이 있는 내용을 다루기가 어렵습니다. 그런 균형을 어떻게 맞추셨나요?

와: 작가들이 그림을 그리는 시대에는 사람들이 온전히 그것을 받아들이지 못해요. 그런 것을 미술관이 먼저 이해하고, 동시대에 응답하는 작가들을 보여주는 것이 중요하죠. 물론 때때로 잘 알려진 작가도 보여줘야겠지만요. 사람들이 예술가를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당연해요. 인내심을 가질 필요가 있죠.

민: 휘트니 여사가 생전 모은 미국 미술 작품을 메트로폴리탄에 기증하려고 했는데 거절당하기도 했잖아요. 그래서 새 미술관을 지었고요.

와: 작품 기증뿐 아니라 100만 달러도 메트로폴리탄 박물관에 기증하겠다고 했었어요. 여기엔 호퍼 작품도 당연히 있었고요. 그럼에도 당시엔 이해받지 못했죠. 미술 기관들이 열려있는 태도를 가져야 하는 이유입니다.

민: 재임 동안 연간 방문객이 40만에서 120만 명으로 늘고, 멤버십과 기부금도 확장되었어요. 비결이 무엇인가요?

와: 그동안 휘트니 건물을 확장한 것도 있지만, 더 중요한 비결은 전시 연계 프로그램을 만들었던 것이라고 생각해요. 또 저 뿐만 아니라 여러 다른 큐레이터들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을 충실히 보여줘 미국 미술의 다채로운 범위를 보여주려고 했죠.

오랜 기간 동안 ‘비전’을 쌓아가는 것이 중요해요. 미술관장들이 2~3년 동안만 머물고 떠나고는 하는데, 사람들은 오랫동안 무언가 유지되면 신뢰를 가져요. 훌륭한 기관을 만들기 위해서는 경영이나 예술 측면에서 모두 시간이 필요합니다.

민: 기관에 관한 비전은 관장의 직감에서 주로 나오나요?

와: 그렇기도 하지만, 또 미술관에는 많은 큐레이터가 있어요. 그들이 각자의 비전을 갖고 마치 오케스트라처럼 움직이죠. 오케스트라를 보면 드럼만 있는 게 아니라 브라스 등 다양한 악기들이 있잖아요. 그렇게 서로 다른 것을 연주하고 또 시간에 따라 변해야 하죠.

민: 예술에 관한 정보는 어떻게 수집하나요?

와: 많이 봐야죠. 보고 보고 보고 보는 것이 큐레이터와 디렉터의 일이에요. 또 열린 마음을 가져야 해요. 내가 좋아하지 않거나, 관심이 없는 것도 생각보다 가치 있을 수 있다는 마음가짐을 지녀야 합니다.

미술관에 들어가는 작품의 조건

휘트니미술관의 예정 전시 ‘Henry Taylor: B Side’. 사진: 휘트니미술관 제공

민: 미국 미술의 정체성은 뭐라고 생각하시나요? 요즘 미술사의 시각으로 본다면, 특징을 정의하기보다 어떤 과정이나 플랫폼으로 이해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만….

와: 고정된 정의는 없어요. 다만 휘트니미술관은 미국 출신의 작가, 혹은 출신이 아니더라도 미국에서 수년간 활동한 작가의 작품을 다 미국 미술로 봅니다. 민 씨가 지금 미국으로 가서 2~3년간 작업을 하면 휘트니에서 전시를 할 자격이 있어요.

만약 미국 미술의 정의가 있다고 해도 그건 끊임없이 변화할 거예요. 아티초크라는 식물 아시죠? (양파와 비슷한 식물) 아티초크의 잎을 하나하나 떼어내고 나면 그 중심에 남은 무언가가 미국 미술이 아닐까요?

민: 이렇게 여쭤볼게요. 미국에 작업하는 수많은 작가가 있습니다. 그중 선택된 사람들만 미술관에서 전시를 하게 되죠. 그 기준은 무엇인가요?

와: 그 사람의 작품이 신선한 비전을 갖고 있느냐, 새로운 표현 방식을 보여주고 있느냐가 중요하죠. 또 그것이 단순히 표현만을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만의 진정한 목소리를 담고 있느냐가 꼭 필요합니다.

민 씨가 기자이고, 여성이고, 한국인이고, 또 한때는 학생이었고…. 이런 다양한 정체성들을 그 사람만의 구체적인 무언가로 담아내야죠. 그러한 자신의 본질에 접근한 사람은 자연스럽게 좋은 작품을 하게 됩니다. 우리가 친구들이 말할 때 그가 진심으로 하는지 안 그런지 다 알 수 있잖아요? 예술 작품도 마찬가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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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일 서울 중구 신라호텔에서 만난 애덤 와인버그 휘트니미술관장. 사진: 전영한 기자. scoopjyh@donga.com

11월을 마지막으로 휘트니에서 떠나는 와인버그 관장은 남은 임기 동안 로이 리히텐슈타인의 작업실을 예술가 레지던시로 사용하는 프로젝트 등 여러 일을 처리할 계획이라고 밝혔습니다. 떠나는 기분에 대해 ‘기쁘면서 슬프다’(bittersweet)고 표현했고요.

한국에 있는 동안은 국립현대미술관, 리움미술관 등 여러 기관은 물론 광주비엔날레까지 돌아볼 예정이라고 합니다. 그러면서 “지금까지 5번 한국에 왔는데 앞으로 5번은 더 오고 싶다”고 말했답니다.

※ ‘영감 한 스푼’은 예술에서 볼 수 있는 다양한 창의성의 사례를 중심으로 미술계 전반의 소식을 소개하는 뉴스레터입니다. 매주 금요일 아침 7시 발행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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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독자 의견
(지난주 김윤신 인터뷰에 대한 의견입니다)

🔸 그렇게 훌쩍 떠나서 뭔가에 몰입하고 싶은데….

🔸 일희일비하는 이 시대에 묵직함을 안겨주시네요^^

🔸80년대 마음으로 아직까지 작품활동의 근간은 지지않는 열정이라 생각합니다

🔸전쟁을 겪고 자란 유년 시절을 읽는데 왠지 다른 전쟁 이야기보다도 와닿았습니다. 그시절 힘들었던 이야기를 처음 접하는 게 아닌데도 말이죠. 뉴스레터 읽을 때 직접 소리내서 읽는 걸 좋아하는데 오늘은 울먹이며 읽었네요. 그러다 ‘’노래하는 나무‘를 봤는데 작품이 너무 귀엽고 발랄해서 기분이 좋아졌어요. 나무 조각은 생소해서 마음이 가지 않았는데 이 작품을 보니 전시에 가고 싶어졌습니다.(진녹)

🔸삶과 예술이 함께 스며든 작품들과 평생 진정한 예술가로서 살아오신 선생님의 인생을 존경합니다. (꿈꾸는예술인)

🔸 작가의 삶이 남미대룩의 거대하고 강인한 나무가 있는 곳으로 이끌었던 것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오랜 세월이 흘러 다시 찾은 한국에서 이 곳의 나무를 만져보고 이야기할 때 한국과 한국인을 표현하시는것 같았습니다. 얌전하고 착하고 연하고… 섬세하며 친절한 나무와 함께하는 업을 하다보면 나무에 동화되어간다고 해요. (felix)

김민 기자 kimmi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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