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원 참사 희생자 36명의 이야기… 기자들이 쓴 '언론의 의미'
[인터뷰] '미안해 기억할게' 연재한 한겨레21 기자들
"하나의 이야기 쓸 때마다 그분들 삶에 들어갔다 나온 기분"
언론의 '빠른 망각'… "수많은 자료에도 취재경쟁 치열하지 않아"
놀러간 사람들? "유가족 향한 혐오는 제도적으로 차단돼야 할 때"
[미디어오늘 박재령 기자]
“진정한 추모는 우리 사회가 잃어버린 한 사람의 생애가 얼마나 소중했는지, 그것이 어떠한 과정을 거쳐 상실되었고 남은 자들의 삶은 어떠한지를 구체적으로 알게 될 때 시작된다. 유가족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우리는 제3자가 아닌 피해자의 시선으로 재난을 다시 느끼게 된다.”(유해정 작가)
“어떤 이의 죽음을 받아들이기 위해서는 그 사람이 어떤 삶을 살았고 그것이 어떻게 상실되었으며 그 마지막이 어떠했는지 알아야 한다.”(정원옥 문화과학 편집위원장)
이태원 참사 유족 인터뷰를 기획했던 신다은 한겨레21 기자가 인터뷰 과정에서 들었던 조언들이다. 참사 초기 익명파편으로 보도됐던 희생자들의 삶은 지난해 11월 유가족 기자회견을 기점으로 조금씩 뚜렷하게 그려졌다. 뉴스타파, 오마이뉴스, 한겨레 등이 '진정한 추모'를 고민하며 릴레이 유족 인터뷰를 시작했고 17일 기준 오마이뉴스가 47편 연재를, 한겨레가 36명의 인터뷰를 진행했다.
세월호 이후 참사를 대하는 언론의 태도가 조금은 나아졌다는 것이 중론이다. 각 언론이 내부에서 조심하고 고민하는 시간이 늘었다. 하지만 여전히 아쉬운 대목은 많다. 이태원 참사 직후 우르르 몰려가 다짜고짜 인터뷰를 요청하는 기자들에 유족들은 분노를 느꼈고, 신뢰성 문제로 내신 대신 외신과 인터뷰한 유족도 있었다. 지난 5일 희생자 36명의 이야기를 마치고, 특별호로 담아 유족과 시민들에 배포한 한겨레21 기자들에 물었다. 언론은 제 역할을 하고 있을까.
“기사를 쓰며 희생자들이 내 친구, 동생, 가족이 됐다”
참사 유족들이 처음 공개적으로 모습을 드러낸 지난해 11월, 신다은 기자는 사람들 추측과 달리 유가족이 자녀들의 생전 모습을 꺼내고 싶어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언론의 접근법이 미숙했을 뿐, 많은 유족들은 어떻게든 희생자를 세상에 그려내고 싶었다. 그 생생한 현장이 '미안해 기억할게'를 기획하게 된 계기였다. “그분들은 온몸으로 울며 자녀에 대해 이야기했다. 159명이라는 숫자로 뭉뚱그릴 수 없는 희생자 한 명 한 명의 소중한 삶이 있었음을 짐작할 수 있었다.” (신다은 기자)
그럼에도 인터뷰는 유족에게 두려운 결정이었다. “'놀러가서 죽었다'는 혐오표현”과 “희생자 명단이 지라시처럼 돌던 시기”였기 때문이다. 대다수 보도에서 희생자를 향한 도 넘은 댓글이 난무했다. 일부 언론은 핼러윈이 한국에서 변질됐다며 희생자를 탓하는 식으로 여론을 몰았다.
[관련 기사 : “핼러윈 변질” 외신 왜곡하며 피해자 탓하는 한국 언론]
“유가족분들에 상처를 주지 않기 위해 소통에 노력했다. '미안해, 기억할게'(한겨레 기획)의 경우 기사를 완성하고 1차 데스킹을 거친 뒤 초안을 유가족에 먼저 보여드리고 피드백을 받았다. 이 과정에서 기사에 쓰지 말았으면 하는 내용은 덜어내고, 사실관계가 틀린 부분도 바로잡았다. 한 희생자 유가족의 경우 이 과정까지 거친 뒤에 마음을 바꿔 기사를 다 썼지만 출고하지 않은 경우도 있었다. 가족 입장에선 몇 개월도 지나지 않아 희생자가 어떤 사람이었는지를 몇 시간동안 이야기하고 참사 당시 기억을 꺼내는 것이 무엇보다 힘든 일이었을 것이다.” (류석우 기자)
자연스레 인터뷰에 임하는 기자들도 심적 부담이 커질 수밖에 없었다. 허투루 쓰면 안 된다는 긴장감이 맴도는 한편 울컥하는 감정은 계속 눌러야 했다. 신 기자는 “어쩔 수 없이 많이 긴장했다”며 “인터뷰에 참여하는 기자들이 더 늘어난 뒤에는 아예 인터뷰 시 유의할 말과 표현, 안내사항을 한데 모아서 공유했다”고 했다.
“하나의 이야기를 쓸 때마다 그분들의 삶에 들어갔다 나온 기분이었다. 감정적으로 힘들고 어렵다를 넘어 무의식적으로 그분들의 삶이 제 안으로 들어온 느낌이었다. 인터뷰 이후에도 계속 생각이 나고 지인들이 쓴 편지를 보면 눈물이 난다. 특히 희생자들의 나이대가 저와 비슷하거나 대부분 조금 아래였기 때문에 더 그랬다. 기사를 쓰며 희생자분들이 제 친구, 동생, 가족이 됐다. 그런데 어느 유가족분이 인터뷰 끝난 뒤에 그러시더라. 계속 유가족 인터뷰를 하면 힘들지 않냐고. 평소에 감정 동요가 많이 없는 편인데, 오히려 기자를 걱정해주는 그 말을 들었을 때 정말 많이 울컥했다.” (류석우 기자)
유족 인터뷰 기획 당시 한겨레21 편집장을 맡았던 황예랑 한겨레 미디어전략실장은 이번 기획을 “절반은 오비추어리, 절반은 '기록'”이라고 설명했다. 황 실장은 “앞부분은 희생자가 어떠한 사람이었는지 추모하고, 뒷부분은 이태원 참사 당일 희생자에게 어떤 일이 벌어졌으며, 유족들은 무슨 일을 겪었는지를 기록하라고 기자들에 주문했다”며 “그 과정에서 마약을 검사하기 위해 부검을 강권한 경검찰, 한 달 안에 사망신고를 하지 않으면 과태료를 내야 한다고 재촉한 공무원, 유가족끼리 만나고 싶다고 해도 연락처를 알려주지 않은 지자체의 무심함 등이 드러났다”고 했다.
참사 초기 기자들에 분노했던 유족들… 인터뷰 후엔 “고맙다”
유족들은 참사 초기 한국 기자들을 기피했다. 홍주환 뉴스타파 기자는 지난해 미디어오늘에 “유족들 얘기를 들어보면 한국언론을 믿기 어려웠다는 분들이 많다. 괜히 자신의 정보, 번호를 알려줬다가 왜곡되게 소비될 수 있다는 두려움이 있으셨다. 오히려 정치 상황에 좌우되지 않는 외신을 신뢰하셨던 것 같다”고 말했다. 류 기자에 따르면 한 유가족은, “처음에는 빈소에 기자들이 너무 많이 들락날락하며 인터뷰를 요청해 너무 화가 났다. 이게(참사가) 거짓말인 거 같고 OO이가 아직 안 갔는데, 인터뷰할 이유가 없는데”라고 했다.
“참사 직후엔 대부분의 유가족 심정이 다 같았을 것이다. 언론은 참사 직후 유가족의 한마디를 원했지만, 유가족들은 최소한의 혼란과 감정이 수습된 이후에야 말을 하기 시작한다. 언론이 너무 언론사의 타이밍으로 접근한 게 유가족분들에게 첫 상처를 안겨준 게 아닌가 싶다. 유가족이 말할 타이밍을 기다려주지 않았다. 물론 기자들을 탓할 일만은 아니다. 유가족에 따라 기자를 만나고 싶어할 수도 있고, 다른 지인을 취재할 수도 있다. 하지만 유가족이 한마디 할 때나 오고갈 때 낙종을 하지 않기 위해 우르르 몰려가는 것 등 부담을 줄 수 있는 취재는 유가족들에게 큰 상처가 된다고 본다.” (류석우 기자)
[관련 기사 : 장례식 앞 우르르 몰려가 “신원 확인했나” 질문… 우리 언론 아직 멀었다]
신다은 기자는 참사 이후 보도 흐름의 문제로 두 가지를 꼽았다. '빠른 망각'과 '책임자 처벌식 보도'이다. 신 기자는 “초기에는 언론 모두가 합심하여 사안의 원인을 파헤치려고 노력했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참사 2~3개월 만에 관련 보도가 지면에서 크게 줄어들었다”며 “12월에 열린 국정조사만 해도 수많은 자료가 국회로 들어왔지만 취재경쟁이 그다지 치열하지 않았다. 재난의 진상규명은 곧바로 이뤄지지 않고 시일이 지나야 조금씩 이뤄지는데, 그 시간을 한국 사회가 그리고 언론이 기다려주지 못했던 것 같다”고 지적했다.
이어 신 기자는 “재난이 한두 명의 단순한 과실로 일어나지 않고 복합적인 시스템 실패로 일어난다는 사실, 그렇기에 처벌할 자를 찾기 이전에 구조적 원인을 짚는 진상규명 과정이 선행돼야 한다는 사실을 세월호 참사 이후 많은 조사자들이 지적해 왔다”며 “그런데 저희를 포함한 많은 언론사가 누군가를 책임자로 세우는 식의 작법을 오래 유지해 왔고, 재난 시에도 책임자를 찾아 문책하는 것만이 재발방지를 위한 보도라고 믿게 된 것 같다”고 했다.
이런 상황에서 유족과 관계를 유지하며 그들의 목소리를 세심히 담는 과정은 언론 신뢰 회복의 한 방향이었다. 류 기자는 “이태원 참사 유가족들은 참사 이후 언론으로부터 많은 상처를 입고 불신도 했지만, 동시에 많은 신뢰도 하고 계신다”며 “참사 이후 취재를 하며 유가족들로부터 가장 많이 들었던 말 중 하나가 '고맙다', '감사하다' 였다. 시간이 지나도 꾸준히 관심을 가지고 들여다 보는 기자를 신뢰해주시는 것 같다”고 했다.
'추상화를 세밀화로' 한겨레가 기획을 처음 연재할 때 쓴 표현이다. 4개월가량 이어진 일부 언론의 유족 릴레이 인터뷰는 희생자들의 삶을 조금은 사회에 드러내는 데 성공했을까. 언론은 지금의 경험을 자양분 삼아 더 앞으로 나아갈 수 있을까.
“지금 저희가 연재하고 있는 기록이, 저널리즘 측면에서 좋은 기사가 아니라고 생각하시는 분들도 있다. 그럼에도 대형 재난 이후에 희생자 한 명 한 명이 누군지 기록하는 작업은 사회가 참사를 기억하고, 애도하고 추모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생각한다. 한겨레를 비롯해 오마이뉴스, 뉴스타파 등 비슷한 작업을 하고 있는 언론의 활동이 축적돼 앞으로 더 나 방향으로 발전할 것이라고 믿는다. 모든 언론이 조금씩 더 나아지고 있고, 이번에도 아쉬운 점은 많지만 분명 세월호 때보다 변화한 점들이 있다. 젊은 연차의 기자들과 이야기를 나눠보면 이런 참사를 대할 때 회사 자체 기준이 없더라도 스스로 검열하고 조심하고, 공부하고 끊임없이 고민한다. 꼭 특정 언론사가 아니더라도 희생자에 관한 기록은 대부분 기자가 잘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를 끌고 가는 건 언론사의 몫이다.” (류석우 기자)
“우리 사회가 잃어버린 소중한 한 사람의 이야기를, 그 사람의 가장 가까운 가족에게 들으러 간다고 생각했다. 인터뷰를 하다 보면 어떻게 이런 사랑스러운 면모가 있었을까, 어떻게 이런 상황에서 그런 멋진 말을 했을까 놀라는 일들이 많다. 어느 한 사람도 허투루 살지 않고 자기 삶과 주변을 가꿨던 분들이다. 하나 아쉬운 점은 4050세대가 많이 담기지 못했다는 것이다. 아무래도 인터넷에서 '놀러간 사람들'이라는 식으로 희생자를 비난하다 보니 이태원에 있으면 안 되는 나이, 이태원 희생자로 불리면 수치스러운 나이라는 분위기가 있었던 듯 하다. 가족을 잃은 것도 모자라 사회적 비난까지 걱정해야 한다는 사실이 참담하다. 재난은 우리 모두의 안전에 관한 문제다. 참사 유가족들을 향한 혐오가 제도적으로 차단되어야 할 때다.” (신다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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