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트랙] 우리는 이정후 걱정을 해야 할까, 말아야 할까… 데이터에 물어보니
[스포티비뉴스=인천, 김태우 기자] KBO리그 최고 타자인 이정후(25‧키움)의 올 시즌 출발은 좋은 편이 아니다. 21일까지 첫 15경기 타율이 0.207에 머물고 있다. 3개의 홈런과 11개의 타점을 기록하기는 했지만, OPS(출루율+장타율)는 0.740에 그쳤다. 이정후의 지난해 타율은 0.349, OPS는 0.996이었다.
“이정후 걱정은 하는 게 아니다”는 말에 정작 당사자인 이정후는 멋쩍게 웃어 보이기도 했다. 그런 이야기는 알고 있지만, 정작 자신은 고민이 많다는 것을 에둘러 말하는 듯했다. 그러면서도 데이터를 믿고 묵묵하게 가보겠다는 생각을 드러내기도 했다. 데이터 분석팀과 이야기를 많이 나누는 이정후는 “타구 스피드도 작년보다 좋은데 타율이 안 나오는 건 결국에 운이 없는 부분도 있다”고 진단했다. 그렇게 생각해서라도 조급해 하지 않겠다는 의지가 읽혔다.
그렇다면 시즌을 10% 정도 치른 현재, 우리는 이정후 걱정을 해야 할까, 아니면 생업에 더 신경을 쓰는 게 좋을까. 이정후는 데이터 분석팀과 대화에서 숫자 이면의 데이터들이 나쁘지 않다는 것을 확인했다고 했다. KBO리그 9개 구단에 트래킹 데이터를 제공하는 ‘트랙맨’의 집계를 보면 이정후의 말은 옳다. 오히려 최고 성적을 냈던 지난해보다 더 좋은 구석들도 있다.
타구 속도는 단순히 힘이 좋아서나 무거운 방망이를 써서 좋아지는 건 아니다. 이런 요소들도 필요하지만 결국 정확하게 공을 맞혀야 궁극적으로 빛을 발할 수 있다. 힘과 기술을 두루 살펴볼 수 있는 대목으로 메이저리그에서도 타격 성적의 선행지표로 보는 경향이 있다. 타구 속도는 이정후의 말대로 지난해보다 올 시즌 초반이 더 좋다.
이정후의 지난 시즌 평균 타구 속도는 시속 142.9㎞로 리그 상위권이었다. 유효한 발사각이 나오는 타구들만 따로 집계해 평균을 매기면 148㎞에 이르렀다. 올해는 평균 타구 속도가 148.3㎞로 이정후 개인 최고치를 찍고 있다. 유효각 발사 평균 속도도 153.1㎞로 지난해보다 5㎞나 빨라졌다. 이정후는 여전히, 강한 타구를 날려 보내고 있는 것이다.
이정후는 지난해 메이저리그식 하드히트(시속 95마일 이상의 타구) 집계로 볼 수 있는 155㎞ 이상 타구 비율이 32.2%였다. 말 그대로 총알 타구라고 할 수 있는 165㎞ 이상 타구 비율은 8.5%였다. 올해는 시즌 초반이기는 하지만 155㎞ 이상 타구 비율이 42.2%, 165㎞ 이상 타구 비율이 15.6%에 이른다. 타구 속도가 빠르면 안타 확률이 높아지는 건 당연하다. 이런 타구 속도를 유지한다면, 이정후의 지나치게 낮은 인플레이타구타율과 타율은 점진적으로 오를 것이라 보는 게 타당하다. 사실 이 수치만 보면 지금 타율이 너무 비정상적이다.
그렇다고 이 타구 속도가 내야에 갇혀 버리는 땅볼이 많이 늘어난 것도 아니다. 이정후는 지난해 땅볼 비율이 37.2%, 라인드라이브 비율이 26%, 뜬공 비율이 30.4%, 얕은 뜬공을 의미하는 팝플라이 비율이 6.4%였다. 올해는 땅볼 비율이 31.1%로 줄었고, 라인드라이브(28.9%) 타구와 뜬공(31.1%) 비중이 늘었다. 팝플라이 비율도 다소 높아지기는 했지만 일단 땅볼이 크게 늘어나는 ‘절대적 위험 요소’는 보이지 않는다.
발사각이 지난해 평균보다 높아지기는 했지만 여전히 유효타 범위에 있다. 타구 속도만 뒷받침되면 안타가 잘 나오는 구간인 5~20도 사이의 타구 비율은 28.9%로 지난해 26%보다 더 좋다. 반대로 땅볼이 되거나 내야에 머물 가능성이 큰 발사각 -5도에서 5도 사이의 타구 비율은 지난해 16.8%에서 올해 13.3%로 줄었다.
그렇다면 타율이 왜 이렇게 떨어지는 것일까. 이정후는 “상대 투수들이 좀처럼 실투를 주지 않는다”고 했다. 슬럼프에 빠진 이정후가 느끼는 착시일까. 그것도 그렇지 않다. 투수들이 이정후 타석에서 갑자기 제구가 좋아질 리는 없다. 결국 피해간다고 봐야 한다. 치면 좋은 타구를 날리기 어려운 곳에 던지고, ‘안 치면 그냥 골라 나가라’는 승부가 많아지고 있다. 야시엘 푸이그라는 까다로운 타자가 뒤에 있었던 지난해 후반기와는 약간 다른 경향이 읽힌다.
데이터에서도 확연하게 드러난다. 스트라이크존을 구분했을 때 지난해 가운데로 들어온 비율은 30.5%, 가장자리로 들어온 비율은 37.1%, 바깥으로 빠진 비율은 32.3%였다. 그런데 올해는 스트라이크존 바깥으로 빠진 비율이 39.7%로 크게 늘었다. 실투가 없다는 이정후의 느낌은 이와 연관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우려할 만한 대목은 있다. 일단 맞으면 좋은 타구를 날려 보내는 이정후의 콘택트 비율이 떨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방망이에 맞지 않으면 타구 속도는 전혀 의미가 없다. 이정후는 지난해보다 볼넷 비율이 훨씬 늘어났지만(10.5%→15.7%), 헛스윙 비율(4.9%→8.8%)도 늘어났고, 삼진 비율(5.1%→10%)도 덩달아 늘어났다.
결론적으로 상대 투수들은 좋은 공을 주지 않고, 이정후는 때로는 잘 참으면서 볼넷을 고르다가도 때로는 헛스윙을 하며 작년보다 콘택트 비율이 낮아졌다고 볼 수 있다. 투수들의 달라진 상대 패턴에 이정후가 당황하고 있는 과정일 수도 있다. 한 타자 출신 해설위원은 “개인적 느낌으로는 실투를 그냥 보내는 빈도가 높아졌다고 느낀다. 비시즌 동안 타격폼을 바꿨는데 궤적은 물론 준비 동작 자체에서 아직은 어색함을 느낄 수 있다. 그러다보면 타이밍도 늦을 수 있다”고 했다.
홍원기 키움 감독은 21일 인천 SSG전을 앞두고 이정후의 부진에 대해 “거론을 자꾸 안 하는 게 좋을 것 같다. 본인도 여러 가지 생각이 많을 텐데, 결국에는 타석에서 단순해져야 한다. 계속 이야기를 거론해봤자 좋을 것은 없다고 생각하고 있다”고 했다. 타율 부진에 대한 말이 많아지면 선수도 스트레스를 받을 수 있고, 그 스트레스가 현재 나쁜 지표들을 더 악화시킬 수 있다는 우려다. 데이터로 봤을 때, ‘아직까지는’ 이정후를 크게 걱정할 이유나 근거는 없다는 결론이 나온다. 그러나 이정후의 앞으로 대처에 따라, 40경기 이후로는 데이터를 다시 분석해야 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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