멈춰도 괜찮은건가...한국은행의 선택,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 [매일 돈이 보이는 습관 M+]

노영우 전문기자(rhoyw@mk.co.kr) 2023. 4. 22.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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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장과 한은 줄다리기 …미 연준과 시장 신경전 ‘데자뷰’
˙ 국내외 변동성 커 금리인상 부담감 준 듯
˙ 미국 금리결정에 좌우될 수 밖에 없는 한국
˙ 한은이 미국의 ‘금리인하’에 베팅하는 시장에 편승한 셈
˙ 약화된 한국경제 펀더멘털 회복이 관건
글로벌 금융시장은 미 연준이 좌지우지한다. 달러 패권이 강력한 시대에 어느 나라든지 미국의 금리결정에 따라 수세적으로 또는 수동적으로 움직일 수 밖에 없는게 주어진 숙명이나 다름없다. 달러 패권 시대라는 점을 더욱 절감하게 된다. G7 선진국이라고 해서 예외일 수가 없고, 신흥국들은 더욱 큰 영향을 받을 수 밖에 없다.

2008년 글로벌금융위기는 미국의 서브프라임 위기에서 촉발된 것이었다. 이를 수습하기 위해 당시 미 연준 의장이던 벤 버냉키는 ‘헬리콥터 벤’이라고 불릴 정도로 ‘헬리콥터 머니’를 뿌려대 위기를 잠재웠다. 워낙 많이 풀린 유동성을 회수하는 과정에서 애꿎게도 신흥국들이 어려움을 겪었다. 양적긴축,테이퍼링을 하겠다고 예고한 후 자금이 빠져나갈 것을 우려한 신흥국 쪽에서 큰 혼란을 빚었던 ‘테이퍼 탠트럼(긴축 발작)’을 다들 기억하고 있다.

며칠 전 한국은행의 금리동결과 기자간담회를 보고 ‘데자뷰’가 다가왔다. 이창용 총재는 기준금리를 3.5%로 동결하기로, 금통위원 만장일치로 결정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시장에서 금리인하에 대한 기대가 과도하다고 점에 대해 ‘경고’했다. 그러면서 물가가 어느 정도 잡히지 않는다면 금리인하를 논의할 계획이 없다는 점을 거듭 강조했다. 이 총재가 시장의 ‘섣부른 기대감’을 잠재우려는 의지가 역력하게 드러났다.

지난달 미국 연준은 공개시장위원회(FOMC)를 열고 기준금리를 4.75%~5.00%로 0.25%P 인상했다. 지난 1월에 이어 두번째 0.25% 베이비스텝을 밟았다. 제롬 파월 의장은 “기준 금리를 더 올릴 필요가 있으면 그렇게 할 것”이라면서 “연내에 금리인하는 없을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시장은 연이은 .0.25%P인상에 대해 인상 기조에 다소 변화가 있는 것으로 해석했다. 당시 연준 점도표 중간값이 연말 5.1%로 제시되었다. 이는 연준이 한차례 정도 금리인상을 할 수 있고,하반기에는 금리인하 쪽으로 방향전환을 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을 높였다. 더구나 SVB 파산 등으로 인한 금융불안으로 인해 금리 인상 폭이나 속도가 둔화될 것이라는 분위기를 형성했다.

파월 의장이 연내에 금리인하는 없을 것이라고 아무리 강조해도 시장은 달리 해석했다. 이로 인해 주식시장이 강세를 이어가는 등 금리인하 기대를 ‘선반영’하는 분위기를 보였다. 대체로 실물경제가 버티고 있는 여건 속에서 금리상승 기조가 꺾인다면 시장에 호재가 아닐 수 없다. 금리인하에 베팅하고 있는 시장투자자들의 심리를 반영한 듯 미국 증시를 비롯한 글로벌 증시는 일시적인 상승세를 보였다. 시장과 미 연준이 금리 결정을 놓고 ‘동상이몽’식 해석을 하고 있는 셈이다.

시장이 미 연준의 금리 결정에 대해 다른 시각을 보여준 것은 2023년 초 더욱 극명하게 드러났다. 지난해 0.75%P 씩 연속 4회 자이언트 스텝을 밟아대던 연준이 2022년말 0.50%P 인상으로 약간 주춤한 기세를 보였다. 이 때문에 2023년 1월말 금리결정은 시장의 촉각을 곤두세우게 했다. 1월 FOMC에서 0.25%P 인상이 발표되자 시장은 곧바로 금리인상 기조가 마무리국면에 접어들었다고 보는 쪽으로 움직였다. 시카고선물거래소에 상장된 펀드레이트 금리 역시 연내 금리 인하쪽으로 방향전환(피봇팅)을 하는 쪽으로 전망했다. 이후 시장은 ‘새해 랠리’라고 할 정도로 전세계젹으로 단기 상승세를 연출했다. 하지만 2월 이후 물가지표 등이 발표되면서 시장이 다시 잠잠해지는 분위기로 돌아섰다. 미 연준과 시장이 신경전을 펼친 셈이다.

이번달 금통위가 끝난 후 기자간담회에서 이창용 총재는 “시장의 (금리인하)기대가 과도하다”고 말했다. 이 총재는 물가가 높은 수준에 있어 금리인하를 논의할 시기가 아니라고 여러 차례 강조했다.

특히 단기금리가 과도하게 낮게 형성되어 있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이총재는 가격변수에 대해서는 가능한한 거론하지 않지만 방향성이 크게 문제가 있을 경우 의견을 내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단기 시장금리는 이 총재 발언에 관계없이 낮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이번 주 들어 코스피는 지수 2500선을 돌파하는 등 금리동결을 반기는 분위기를 보였다. 한국에서도 시장과 한국은행이 금리 방향성을 두고 엇갈린 시각을 보이고 있는 셈이다.

늘 그렇듯이 투자자들은 단기적 관점에서 판단하고, 중앙은행의 결정을 희망 섞인 해석을 내놓기 마련이다. 당연한 기대감의 반영이다. 하지만 이러한 시장의 기대가 그대로 실현될 지는 미지수다.

우선 인플레이션이 꺾이기 쉽지 않다는 점을 들 수 있다. 이번에 한국 물가가 4%전후를 나타내고 있고, 한은이 전망하는 연말 물가수준은 3%선이다. 물가목표 2%에 비교한다면 근접하지만 물가가 잡혔다고 보기는 힘들다. 적어도 2%대로 들어오고, 물가지수 흐름이 하락세로 접어들었다는 ‘명확한 신호’가 잡혔을 때 한은이 금리를 동결하든지 인하하는 쪽으로 전환할 것이다. 글로벌 공급망 재편이 많이 안정화되었다고 하지만 아직은 안심할 단계는 아니다.

우크라이나 전쟁은 어느 한쪽이 승세를 잡지 못한 채 교착상태에 빠져 있다. 사우디아라비아가 주도하는 OPEC플러스는 석유감산을 발표해 국제 유가가 다시 상승세를 보였다. 사우디아라비아는 중국 주선으로 앙숙 이란과 화해하고 시리아와 손을 잡으려고 하고 있다. 미국의 맹방이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미국 입장에 어깃장을 놓고 있다. 일부에서는 어느 시점에서 미국이 사우디아라비에 강력한 카운터 펀치를 날리지 않을까 하는 전망을 내놓기도 한다.

트럼프 전 대통령의 통상전쟁으로 시작된 미국과 중국 간 대결은 전방위적으로 확산될 가능성이 더 높다. 미중 관계는 ‘신냉전’이라고도 하지만 과거 미소 냉전과 사뭇 다르다. 미중관계는 경제적으로 얽혀있어 어느 한 순간에 끊어내기 힘들다. 하지만 미국 입장에서는 리쇼어링과 프렌드쇼어링으로 자국내 생산기지를 구축하는 과정에서 비용상승 구조를 고착화하게 된다. 그만큼 물가 상승 요인이 된다.

다만 ‘중국 대 서방’ 이라는 진영구도가 명확하게 설정되기는 어렵다는 점이 변수로 작용할 수 있다. 미국이 중국에서 발을 빼거나 견제한다고 해도 프랑스와 독일 등 유럽은 수출시장으로서,투자 대상으로서 중국은 포기하기 힘든 입장이다. 시진핑 3기 취임 직후 중국을 방문한 숄츠 독일 총리,얼마전 시진핑과 정상회담을 한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의 행보를 보면 중국과 유럽 관계는 미국과 달리 움직일 가능성이 높다. 즉 미중 대결 구도가 극단적으로 치닫기 어렵고,어느 정도 ‘냉탕온탕’식으로 진행될 수 있다는 것이다. ‘공세적인 봉쇄’를 하려는 미국의 시도가 그대로 먹혀들지 않을 수도 있다는 점이다.

이런 국제 정세를 볼 때 미국이 인플레이션을 2%대로 안정시키는 것은 상당히 어려운 과제라고 볼 수 있다. 파월 의장이 언급한대로 ‘연내에 금리인하는 없다’는게 실현될 가능성이 높은 편이다. 금융불안이 변수로 등장했지만 지난달 0.25%P 인상함으로써 그들의 의지를 재확인해주었다. 금융불안 보다는 물가 불안이 훨씬 더 큰 과제라고 보는 것이다. 물가는 경제 주체 모두에게 고통을 안겨주고 경제의 안정을 해친다는 점을 주지의 사실이다.

한국은행이 금리를 결정할 때 미국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 이번에 한은이 2회 연속해서 금리동결을 결정한 것은 국내외 여건을 보면 충분히 이해할 만 하다. 전문가들의 예상 역시 절대 다수가 동결 쪽이었다.

앞에서 설명한 것처럼 한국과 미국을 보면, 금리를 놓고 ‘시장 대 중앙은행’간 신경전을 펼치고 있다는 점이 비슷한 양상이다. 중앙은행 총재 발언에도 불구하고 시장은 금리 인하 쪽으로 베팅하고 있다. 이러한 구도는 올초부터 몇 차례 되풀이되고 있다.

다만 아이러니하게도 이번 결정을 보면 한은이 미 연준보다는 금리인하 쪽으로 베팅하는 시장 쪽에 섰다고 볼 수도 있다. 왜냐하면 미 연준의 금리 인상 기조가 강하다고 판단한다면 한은이 쉽사리 금리동결을 하기 어려웠을 것이라는 점에서다. 한은 역시 미 연준이 금리를 올리기 힘든 여건이라고 보고 있거나,일단 지켜보겠다는 입장으로 보여진다. 이총재가 미국을 의식하지 않고 금리를 결정할 여지가 생겼다고 말했지만 실제로는 오히려 미국의 금리결정에 더욱 ‘커플링’되고 있는 것이다.

미 연준이 발표한대로 움직이게 된다면 한은은 앞으로 큰 부담을 안게 될 것으로 예상된다. 미 연준이 연내에 금리인하를 하기 어렵다고 한다면 한미 금리차가 현재 1.50%p로 유지되거나 확대될 수도 있다. 여기에 세수가 16조원이나 덜 걷히고 있고,환율은 1달러당 1300원선을 훌쩍 넘어섰다. 국제통화기금은 올해 한국의 경제성장률은 1.50%로 다시 낮췄다. 이번에 0.20%P를 낮춰서 4번 연거푸 낮췄다. 반도체 착시로 승승장구하던 것처럼 보이든 한국경제는 장기간 무역수지 적자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

한 나라의 주가지수는 장기간 흐름을 보면 한 나라의 경제성장률과 거의 비슷한 곡선을 그린다. 단기적으로 보면 금리동결이나 금리인하로 전환하는 시점이 중요하다. 하지만 길게 보면 한국경제의 펀더멘털이 다시 강해졌다는 신호가 보이거나 경기침체국면에서 벗어나 바닥을 쳤다는 지표가 나타나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 주가는 기업 활동이 활발해져서 매출과 수익이 개선될 것으로 예상될 때,때로는 앞서서 때로는 동시에 반영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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