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희룡 "전세사기 주택의 LH매입임대, 야당 공공매입과 전혀 달라"
"(전세사기 피해주택의) LH매입임대 방식은 야당의 공공매입 방식과는 전혀 다르다. 공적재원으로 보전해 주는 것이 아니다."(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
지난 20일까지 "공공매입은 불가하다"며 강경한 입장이었던 정부가 지난 21일 전세사기 피해자의 경매 주택을 한국토지주택공사(LH)의 매입임대 제도를 활용해 대신 매입하겠다고 밝혔다. 다만 이 방안은 더불어민주당 조오섭 의원과 정의당 심상정 의원이 각각 대표발의한 '공공매입을 위한 특별법안'과는 결을 달리한다고 선을 그었다.
정부가 선회해 내놓은 방안은 일단 피해자 주택을 경매에서 우선매수권 형태로 인수해 공공임대로 활용하겠다는 내용이다.
이 경우 임차인의 거주권 확보가 가능하겠지만 임차인의 피해 보증금을 온전히 보전해주는 것은 아니라는 점, 어느 선까지 전세사기로 봐야하는 지 등에 대한 사회적 논의가 필요하다는 점 등에서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일각에서는 전세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한 다른 피해자와의 형평성 문제도 제기될 수 있다고 우려한다.
◇야권의 '공공 직접매입' 요구에 선 그었던 정부, 'LH 매입임대'로 우회
정부는 공공매입안에 대해 부정적인 입장을 밝힌 바 있다. 원 장관은 지난 19일 야당의 공공매입 방안에 대해 "이는 사기 범죄 피해 금액을 국가가 국민 세금으로 떠안으라는 뜻이기 때문"이라며 "(보증금 전액 반환을 위해선) 사회적 합의가 있어야 하고 입법뿐 아니라 헌법재판소의 동의가 필요한 수준이 된다"고 선을 그은 바 있다.
다음날 박대출 국민의힘 정책위원장도 "공공이 손해를 감수하며 매입하더라도 선순위 채권자에게만 이익이 돌아가 근본적인 피해자 구제 방안이 될 수 없다"고 반대했다.
그러나 전세사기 피해가 서울 화곡동과 인천 미추홀구, 경기 화성·구리 등 수도권에 이어 대전, 부산 등 전국으로 확산할 조짐을 보이자 시급하게 적극적인 구제 대책으로 방향을 선회한 것으로 보인다.
다만 이번 조치가 '공공매입'이라 하더라도 야당이 요구하는 것과는 세부 방식에서 차이가 있다는 설명이다.
야당 의원들이 발의한 특별법은 '공공매입을 통해 정부가 피해자의 보증금을 대신 반환한다'는 것이지만, 정부가 이날 제시한 방침은 LH의 매입임대 방식을 활용하는 것으로 못받은 보증금을 대신 갚아주진 않는다. 일단 매입임대 방식으로 피해 주택을 매입해 임차인을 강제 퇴거시키지 않고 싼값에 재임대해 주거안정에 도움주겠다는 방안이다. 이는 과거 정부가 부도공공임대주택을 공공매입한 뒤 임차인에게 보증금을 돌려준 방식과도 다르다.
◇원하는 피해 임차인 주택, 우선매수권으로 매입 후 임대
정부가 내놓은 방안은 피해 임차인이 우선매수권을 포기할 경우 LH의 매입임대 제도를 활용해 피해 임차인이 원할 경우 LH가 해당 주택을 대신 사주겠다는 것이다.
정부는 LH 매입임대 물량 2만5000호와 지방공사 및 지방공사 물량 9000호를 활용해 전세사기 피해주택을 최대 3만5000호까지 사들인다는 방침이다. 호당 매입가격은 2억원선으로, 최대 7조원의 자금을 투입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LH의 올해 매입임대 사업 예산 5조5000억원이 이미 확보한 상태여서 정부는 추가 재정 투입 없이 이 방안의 추진이 가능할 것으로 보고 있다. 앞서 작년 말 LH가 강북 미분양 주택을 고가에 매입했다는 논란으로 매입임대주택 제도 정비때문에 올해 사업은 이제야 시작하는 단계로 알려졌다.
피해 임차인과 LH 등 공공기관에 피해 주택 우선매수권을 부여하기 위한 법안 개정은 필요하지만, 매입임대 사업은 이미 시행 중인 제도라 추가 법 개정이 필요없어 속도를 낼 수도 있다. 세부 임대기간과 임대료는 23일 당정협의 등 추가 논의를 거쳐 확정될 전망이다.
◇피해보증금 보전엔 '한계'…전세사기 주택대상 모호·형평성 논란 등 지적나와
일단 추가 재정 투입이나 법 개정 등의 단계를 거치지 않고 임차인의 거주권을 보호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이지만, 피해 임차인의 보증금을 보전해주지는 못해 임차인의 일부 보증금 손실은 불가피하다는 부분이 한계로 지적된다.
우선 LH가 주택을 우선매수해 줄 전세사기 피해 주택의 범위가 모호하다는 우려도 나온다. '빌라왕' 또는 '건축왕' 사건 등은 일명 '바지사장'(가짜 임대인) 등을 동원해 조직적 전세사기로 볼 수 있지만, 집값과 전셋값이 단기 급등 또는 급락해 발생한 갭투자 실패로 보증금을 돌려주지 못하는 '나쁜 임대인' 케이스도 전세사기로 볼 수 있느냐는 것이다.
우선매수권의 적정 가격도 문제다. 정부가 우선매수권을 행사하는 주택인 게 알려지면 입찰을 꺼려 유찰이 거듭돼 매각 지연으로 저가 낙찰할 가능성이 높아져 정부와 임차인에게는 유리하겠지만, 시중 금융기관이나 자산관리공사 등 부실채권 매입 공공기관과 같은 선순위 근저당권자는 채권 회수에 문제가 생길 수 있기 때문이다.
반대 경우도 문제다. 만약 피해 주택이 고가에 낙찰되거나 경매 장기화로 집값이 다시 상승하면 낙찰가격이 올라 재정 손실이 불가피하다는 예상도 나왔다.
역전세난 심화로 전세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하는 다른 세입자들이나 이미 경매가 끝나 집을 비워줘야 하는 등의 본격적인 피해를 당하고 있는 피해자들과의 형평성 문제도 불거질 수 있다.
이에 대해 원 장관은 "단순 전세금 미반환인지, 전세사기 피해물건인지 대상을 특정하는 기준과 절차를 결정해야 한다"며 "충분한 논의를 거쳐 입법 과정에서 정하겠다"고 말했다. 이미연기자 enero20@d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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