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착된 전쟁과 중국의 약진…우크라 침공이 남긴 것
반면 중국은 중동·러시아·중남미서 경제·정치외교적 영향력 확대
우크라이나 전쟁이 2023년 2월24일로 1년이 지나면서 전장 안팎에서 명확해지는 것이 있다. 첫째, 우크라이나 전쟁 자체가 현 전선을 굳히는 교착 국면으로 가고 있다. 둘째, 전쟁 여파로 기존 국제관계와 질서가 요동치며, 중국의 진출이 뚜렷해지고 있다.
2022년 2월부터 디스코드의 게임 채팅방에서 유출된 미국 국방부의 기밀 정보보고서는 우크라이나 전쟁이 교착 국면으로 접어드는 상황을 확인했다. 가장 주목할 만한 내용은 우크라이나의 심각한 전력 소모와 부족이다.
2023년 2월 말에서 3월 초 사이 우크라이나 전장 상황에 대한 미 합참 보고를 보면, “우크라이나는 전선을 지키는 중거리 방공망을 제공하는 능력을 5월23일이면 완전히 소진할 것”이라고 평가했다. 또 “우크라이나도 2~3배나 많은 러시아의 미사일과 드론의 파상 공격을 견뎌내고 있다고 평가했다”고 전했다.
미사일 재고, 5월3일 바닥날 전망
유출된 문서에 따르면, 단기적으로 우크라이나는 방공망의 89%를 차지하는 소련제 중거리 지대공 미사일 시스템인 부크와 S-300 미사일의 재고가 각각 4월13일과 5월3일 완전히 바닥날 전망이다. 그 결과, 방어되지 못하는 중요 시설 수는 6개에서 40개 이상으로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우크라이나는 병력, 무기, 장비 조달의 어려움으로 2023년 봄 러시아의 점령지를 탈환하려는 반격 공세에서 기존 목표에 “훨씬 못 미치게” 될 것이라고 정보보고서는 평가했다. 2월 초 ‘최고 기밀’로 분류된 정보보고서는 우크라이나의 “전력 산출과 유지에서 현저한 부족”을 경고하며 그런 상태에서 반격작전은 “대단치 않은 영토 회복”만을 얻어내리라고 전망했다. 다른 기밀문서는 우크라이나가 반격작전을 4월30일로 설정하는데, 서방의 무기·전력 지원에 의문을 표시했다.
러시아 역시 2022년 하반기 이후 병력과 무기를 투입하는 소모전을 벌였지만 전공은 극히 저조하다. 최대 격전지 우크라이나 바흐무트에 총력을 기울였으나, 2022년 7월 이후 한 달 평균 겨우 2.7㎞만 전진했을 뿐이다.
이런 소모전에서 양쪽 모두가 협상을 거부해 우크라이나 전쟁은 2023년을 지나 2024년까지 계속될 거라고 국방정보부(DIA)는 정보보고서에서 평가했다. 이 분석은 우크라이나가 상당한 영토를 탈환하고 “러시아 전력에 지속불가능한 손실”을 가할 가능성이 없다고 미국 정보기관들이 평가하고, 설사 그럴지라도 우크라이나의 그런 전공이 평화회담으로 이어지지는 않을 거라고 평가했다. 문서는 “모든 시나리오를 고려해도 분쟁을 종식하는 협상은 2023년 동안 가능하지 않을 것 같다”고 전망했다.
미국의 기밀 정보보고서는 우크라이나 전쟁이 결국 현 상황에서 동결·교착되리라 평가한다. 우크라이나가 러시아로부터 점령지를 탈환하기 힘들고 탈환하더라도 미미한 정도이고, 러시아 역시 현 전선에서 더 나아가기 힘든 국면이다. 이는 ‘우크라이나 전쟁이 결국 동결된 전쟁이 될 것’이라는 이 연재물의 그동안 지적·평가와 다르지 않다.
교착 국면에 처한 우크라이나 전쟁은 당사자라 할 미국과 러시아에 엇갈리는 전략적·전술적 의미를 내포한다.
첫째, 이 전쟁은 일단 현상적으로 러시아에 전략적 패배를 의미한다. 거대한 군사력을 가진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에서 발목이 잡혔다. 우크라이나의 나토(NATO) 가입이 전쟁의 이유였지만, 러시아의 침공으로 중립국이던 스웨덴과 핀란드가 나토에 가입해 나토가 확장하는 역효과를 냈다.
둘째, 그렇다고 미국이 전략적 승리를 얻은 것은 아니다. 미국은 서방 동맹국들을 총동원해 우크라이나를 총력 지원하는데도 러시아를 패퇴시키지 못하고 있다. 러시아는 미국 주도의 강력한 제재에도 경제가 굴러가면서, 서방과 단절돼도 생존력이 있음을 증명한 한편, 돈바스 등 우크라이나 점령지를 굳히고 있다. 전술적 의미에서는 러시아의 승리라 할 수 있다.
위안화 거래 비중 1년 만에 2→4.5%
셋째, 이 와중에 중국은 국제무대에 활발히 진출하며 영향력을 늘리는 전략적 성과를 올리고 있다.
우크라이나 전쟁 이전 중국은 인도·태평양 전략 및 공급망 재편이라는 미국의 중국 포위·봉쇄 전략에서 수세였다. 하지만 우크라이나 전쟁은 미국의 발목을 잡았고, 미국 주도의 대러시아 제재에 동참하지 않는 국가들 사이에 미국에 독립된 외교적·경제적 공간을 만들자, 중국이 그 공간에서 역할과 영향력을 확대하고 있다.
러시아가 석유 등 에너지를 중국·인도 등 대러시아 제재에 동참하지 않는 국가에 저렴하게 판매하고, 그 거래를 달러가 아닌 위안화 같은 거래 당사국 통화로 결제하는 추세도 확대되고 있다. 미국 주도 국제질서에 도전하는 중국에 가장 절실한 과제인 달러 역할 축소와 위안화의 국제화를 우크라이나 전쟁을 계기로 잡은 셈이다.
중국은 3월29일 남미 최대국 브라질과의 양국 교역에 달러를 배제하고 양국 통화를 쓰기로 합의했다. 중국을 방문한 루이스 이나시우 룰라 다시우바 브라질 대통령은 4월13일 상하이에서 ‘브릭스 은행’으로 알려진 신개발은행(NDB)의 신임 총재인 지우마 호세프 전 브라질 대통령의 취임식에서 “매일 밤 나는 모든 나라가 왜 달러에 기초해 교역해야만 하는지 묻는다”며 “왜 우리는 자국 통화에 기반해 교역할 수 없냐”고 물었다. 개도국들이 자국 통화로 교역해서 달러의 영향력에서 벗어나자는 촉구다.
달러 패권의 주축인 석유 거래에서 달러 결제를 주도해온 사우디아라비아도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석유 거래에서 달러 결제 비중을 낮추고 위안화 결제를 추진하고 있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2022년 12월 사우디를 방문해 석유 거래에서 위안화 결제 추진을 사우디와 다시 합의했다. 사우디의 이런 움직임은 중국-브라질의 위안-헤알화 교역 합의가 발표된 당일 중국해양석유총공사가 상하이 천연가스거래소에서 아랍에미리트연합(UAE)의 액화천연가스(LNG) 6만5천톤 매입을 위안화로 결제하며 구체화했다. 액화천연가스 거래에서 위안화 결제는 처음이다. 중국 수출입은행은 2023년 3월14일 사우디 국영은행과 위안화 대출 협력을 마쳤다고 발표했다. 위안화가 양국 교역에서 쓰인다는 의미다.
국제교역에서 위안화 비중은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두 배 이상 늘었다고 <파이낸셜타임스>가 4월12일 보도했다. 국제결제망인 스위프트의 자료를 분석한 결과, 위안화는 2022년 2월 2%에서 1년 뒤인 2023년 2월 4.5%로 늘었다고 보도했다. 이는 유로화의 6%에 맞먹는다. 달러는 86.8%에서 84.3%로 줄었으나, 물론 여전히 막강한 비중을 차지한다. 그럼에도 위안화 비중이 두 배 이상 늘어난 상황은 큰 의미를 갖는다.
최대 요인은 대량의 가스·석유가 매매되는 러시아와의 거래에서 위안화 결제가 확고히 정착됐기 때문이다. 이는 러시아의 막대한 자원·기술과 중국의 공산품 생산 능력을 합친 경제권과 시장이 독립적으로 탄생했다는 의미이다. 3월20~23일 러시아를 방문한 시진핑 중국 주석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시베리아의 가스를 중국에 확대 공급하는 ‘시베리아의 힘 2’ 가스관 프로젝트에 원칙적으로 합의하는 한편, 각종 경제협력 관계를 확대했다. 러시아가 서방 제재에도 버틸 수 있는 최대 힘은 중국이 러시아 에너지 등 원자재를 사주고, 자신들의 공산품을 수출해주기 때문이다.
우크라이나 전쟁의 최대 역설, 중국
두 정상은 공동성명에서 “러시아와 중국의 관계는 냉전 때 형성된 것과 유사한 군사·정치 동맹을 구성하지는 않으나, 이런 형태의 국가 협력보다 우월하다”고 천명했다. 이는 중-러 관계가 양국의 실질적 필요에 따른 것임을 의미하면서도, 중국이 그 관계의 주도권을 쥐고 있음을 부정하기 힘든 상황이 됐다.
중국은 경제적으로도, 정치외교적으로도 다른 지역에 영향력을 높이고 있다. 2023년 3월10일 베이징에서 무사드 빈 무함마드 알아이반 사우디아라비아 국가안보 보좌관과 알리 샴하니 이란 국가안보회의 의장이 왕이 중국 공산당 정치국원을 가운데 두고 사우디와 이란의 국교정상화를 합의한 것은 중국 외교에서 최대 성과의 하나로 평가된다.
사우디가 중국 중재로 이란과 국교정상화에 나선 것은 중국의 중재가 확실한 보장이 될 것이라고 계산했기 때문이다. 미국 등 서방의 제재를 받고 고립된 이란에는 중국 지원이 절실하다. 이런 이란에 중국을 중재하는 사우디와의 관계는 존중될 수밖에 없다고 미국 존스홉킨스 국제대학원의 발리 나스르 교수가 <포린어페어스>에 쓴 ‘중동의 새로운 질서?’ 기고에서 지적했다. 이는 중동에서 미국의 쇠퇴와 중국의 영향력 확대를 의미한다.
유라시아 대륙의 오지에서 벌어지는 우크라이나 전쟁이 그 직접적 당사자가 아닌 중국의 진출과 영향력 확대의 계기가 되고 있다. 이는 우크라이나 전쟁의 최대 역설이라 할 수 있으나, 근대 이후 서방 지정학의 경고이기도 하다.
서방 지정학의 아버지 핼퍼드 매킨더는 1904년 ‘역사의 지리적 중심축’ 논문에서 15세기 이후 바다를 장악하면서 세계 패권을 거머쥐었던 서방 해양세력은 유라시아 대륙세력의 흥기에 도전받고 있다고 경고했다. 그는 러시아나 중국 등이 유라시아 대륙을 장악하는 단일한 패권국가로 흥기한다면, 서방 해양세력의 패권은 상실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그는 서방 해양세력이 패권을 유지하려면 유라시아 대륙을 장악하는 패권국가의 탄생을 저지해야 하며, 이를 위해서는 유라시아의 심장부 지역을 러시아나 중국 등 대륙국가들이 완전히 장악하지 못하도록 해야 한다고 충고했다. 심장부 지대에는 현재 전쟁이 벌어지는 우크라이나가 핵심으로 포함된다.
매킨더가 심장부 지대의 중요성을 강조한 것은 이 지역이 서방 해양세력의 패권 근거지인 자원과 인구, 부가 몰려 있는 유라시아 연안 지역으로 접근하고 위협할 수 있는 근거지가 되기 때문이다. 유라시아 연안 지역은 페르시아, 인도, 인도차이나, 중국 연해 지역 등이다. 러시아나 중국이 심장부 지대를 확고히 장악한다면 이에 접한 유라시아 연해 지역도 위협받는다.
제2차 세계대전 뒤 미국의 소련을 포함한 대사회주의권 봉쇄 전략도 매킨더의 이론에 바탕을 둔다. 미국 지정학자 니컬러스 스파이크먼은 유라시아 연안지대에 해당하는 환형지대론을 제시하고는, 이 환형지대에서 대륙국가 세력을 포위하는 한편 그들이 내려오지 못하게 봉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소련과 중국이 관계가 악화해 분쟁에 휩싸인 것도 이 두 나라가 유라시아 대륙을 장악하는 패권국가로 성장하지 못한 결정적 요인이기도 했다.
전쟁이 미-중 대결을 재규정하고 있다
현대에 이르기까지 중국은 서북 방면에서 항상 최대 안보 위협을 받아왔다. 고대 이후 오랑캐로 불렀던 초원 유목세력의 위협을 근대에 들어올 때까지 받았고, 근대 이후에는 러시아의 위협을 받았다. 이제 중국은 서북 방면에서 최대 위협세력이던 러시아와 가장 좋은 관계를 강화하는 데서 더 나아가 우월적 관계에 접어들고 있다. 이는 중국에 서북 방면의 안정뿐만 아니라 유라시아 대륙에서 단일 패권국가로 흥기할 수 있는 환경을 의미한다. 이는 또 중국이 바다로 나아가 다른 지역에서 영향력을 확대하는 환경도 조성한다.
우크라이나 전쟁이 미-중 대결에서 중국에 유리하게 작용하리라 보는 것은 아직 성급하다. 하지만 전쟁 전에 미국의 공격적인 포위와 봉쇄에 처하던 중국이 전쟁 1년이 지나 중동, 러시아, 중남미 등지에서 영향력을 확장하는 상황은 분명하다. 우크라이나 전쟁은 미-중 대결을 다시 규정하고 있다.
정의길 <한겨레> 국제부 선임기자 Egil@hani.co.kr
*‘우크라이나 전쟁 1년’ 연재를 마칩니다. 그간 수고해주신 정의길 선임기자와 사랑해주신 독자 여러분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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