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트업 직원은 내 집 못 빌려”···전세의 종말은 어떤 모습일까 [이수민의 도쿄 부동산 산책]
지난 17일 인천 미추홀에서 전세사기 피해자인 30대 여성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습니다. 올 들어 전세사기 피해자가 유명을 달리한 것은 벌써 세 번째로, 정부가 초저금리 대출지원 등 다양한 방법으로 피해자를 지원하겠다고 발표했지만 정책 사각지대는 여전하다는 사실이 드러났습니다. 비슷한 시기에 지금까지 언론에 주로 보도된 인천 미추홀구나 서울 강서구가 아닌, 경기도 동탄에서도 유사한 피해가 다수 발생했다는 보도도 이어졌지요. 끝나지 않은 비극을 계기로 다소 주춤했던 전세제도에 대한 보완 요구도 활발해지고 있는 상태입니다. 아울러 한국에만 존재하는 주거 유형인 전세가 앞으로도 존속할 수 있을지도 공론장의 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일각에서는 목돈을 임대인에 맡겨 거주할 권리를 얻는 전세가 아예 없어져야 하고, 국가의 정책도 이 같은 방향으로 가야한다는 의견을 내놓고 있는데요. 반면 그간 서민의 주거 사다리로 기능해왔던 전세의 장점을 무시할 수 없고 당장 전세를 없애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목소리도 높습니다.
끊이지 않는 전세사기...앞으로는 어떻게 될까?
그렇다면 1800년대부터 명맥을 이어온 전세제도는 앞으로 어떻게 변하게 될까요? 시간이 흘러도 집값을 떠 받히는 역할을 계속하게 될까, 아니면 과거의 유물로 남을까요? 이번주 <도쿄 부동산 산책>에서는 전세제도가 없는 일본에서 현직 기자가 직접 경험한 주택 임대 시장의 모습을 통해 미래에 펼쳐질 가능성이 높은 일들을 조망해보도록 하겠습니다. 다만 이 글에서 소개하는 내용은 일본 수도인 도쿄, 그 중에서도 주거 수요가 높은 도심 지역에 한정한 경험이라는 점을 미리 말씀드립니다. 필자는 한국에서 전세, 반전세, 월세로 거주한 경험이 있습니다. 20대에는 고시원 원룸에서도 잠시 머문 적이 있습니다. 하지만 그 어떤 주거 유형을 선택하더라도, 임대인에게 제가 누군지 밝혀야 할 필요는 없었습니다. 그저 시장 가격만 조달해서 갖다 주면 끝이었죠. 여러분도 아시다시피, 임대차 계약 과정은 목돈이 오가는 것에 비해 매우 심플합니다. 하지만 도쿄에서 집을 빌린다는 것은 생각보다 복잡하고 까다로웠습니다. 제가 외국인이어서 그런 것일 수도 있지만 말입니다.
“저는 이런 사람입니다”···사전심사로 소속 회사부터 통장잔고까지 탈탈
외국인으로서 제일 생경 했던 것은 다름 아닌 ‘임차인 심사’였습니다. 통상 5일에서 10일 정도 소요되는 이 계약 전 심사는 임차인의 재무 상태를 꼼꼼하게 점검 하는 것이 핵심입니다. 보증회사가 이 과정을 책임지고 진행합니다. 저는 준공 30년이 된 구축을 빌렸기에 한 번에 심사를 통과했지만, 특파원이나 주재원 등 법인이 신원을 보증하는 이들도 두 세 번 탈락하는 것이 일반적이라고 합니다. 심지어 일본인도 임차인 심사의 문턱을 넘지 못하는 일이 많다고 하네요. (임차인 심사는 선착순으로 진행되고, 순번에 따라 심사 결과가 통보됩니다. 1순위가 통과되면 2, 3순위 신청자는 그 집에 들어갈 수 없는 거죠.)
저는 수많은 서류를 통해 제 자신을 증명해야 했습니다. ‘자기소개서라도 써야 하냐’는 한탄이 나올 정도였죠. 우선 한국의 외국인등록증과 같은 기능을 하는 재류카드, 전입사실을 증명하는 주민표 등 신분을 증명하는 공적 서류를 제출했습니다. 휴대폰 번호나 통장 번호도 적어야 했죠. 여기까진 한국과 비슷합니다. 한국과 다른 부분은 이제부터입니다. 1) 급여통장의 현 시점 잔고증명 2) 재직증명서 3) (유학비자로 거주하고 있기 때문에) 대학원 입학허가서 4)가족관계증명서 였습니다. 이 정도면 제 자신을 외적으로 설명할 수 있는 모든 걸 제출했다고 할 수준인데요.
“당신 스타트업 다녀? 그럼 내 집에 못 살아”
그렇다면 일본인의 경우라면 어떨까요? 외국인이라서 이렇게 빡빡한 잣대를 들이대는 것이 아니냐는 질문이 있을 수 있지요. 일본 유명 일간지에 근무하는 지인에게 물어봤습니다. “일본인도 마찬가지다. ‘마이홈’이 아니고 집을 빌리는 상황이라면, 임차인 심사는 제법 까다롭다. 특히 소속 회사와 연계된 부동산을 통해 법인 자격으로 계약하는 것이 아닌, 개인으로 계약하면 더 그렇다.” 실제로 제가 접촉한 현지 부동산에서는 이런 이야기도 해줬습니다. 임대인이 1순위로 심사를 넣은 사람의 회사를 트집 잡았고, 이유는 그 회사가 오래된 곳이 아닌 신생기업 즉 스타트업이었다는 데 있었습니다. 만약 한국에서, 임대인이 임차인의 직업을 이유로 계약을 거절한다고 하면, 저희 신문사로 임차인을 차별한 사례라며 제보가 들어올 듯 합니다.
특히 일본에서 임대인은 연령대가 높은 경우가 많아서, 임차인을 받아 들일 때 자신의 고정관념에 기반해 심사 기준을 세우는 경우도 있다고 하는데요. 저도 그 고정관념을 강하게 느꼈던 적이 있습니다. 제가 임차인 심사를 넣을 때 중개 부동산에서는 외국인이어서 ‘일본인 보증인’이 필요할 수 있다고 했지만, 다행히 ‘일본 내 긴급 연락처’를 제공하는 선에서 계약을 맺을 수 있었습니다. 이렇게 조건이 다소 완화된 이유에 대해, 중개 부동산은 “긴급 연락처로 제시한 일본인의 직업이 유명 신문사의 기자라는 점, 유학 와 있는 학교가 명문대라는 점 등이 영향을 미쳤을 수 있다”고 했습니다.
물론 이 설명은 중개 부동산의 추정일 뿐이긴 하지만, 저 문장 곳곳에 차별과 편견이 듬뿍 묻어 있죠. 달리 말하면, 사회적으로 내세울 조건이 마땅치 않은 사람은 돈이 충분히 있어도 자신이 원하는 집에 살기 어렵다는 의미가 됩니다. 이는 자본주의에서 가장 힘이 센 ‘돈’으로도 해결되지 못하는 또 다른 장치가 있다는 점에서 특정 계층에 차별적 상황으로 다가올 수 있겠습니다.
깐깐한 심사는 결국 월세 체납 방지용?
일본에서 임대인이 임차인의 세세한 개인정보를 뜯어볼 수 있는 이유는 상대적으로 낮은 보증금에 있다고 판단됩니다. 서울 아파트의 경우 전세보증금이 최소 5억원부터 시작한다고 할 정도로 보증금이 높습니다. 최근 신축 아파트를 중심으로 많이 계약되고 있는 반전세도 보증금이 통상 1억원으로, 적지 않은 금액입니다. 빌라로 시선을 옮겨도 2000만원/50만원, 5000만원/60만원 이런 식으로 보증금이 월세의 최소 30~40배는 되는 편이 통상적입니다. 임대인 입장에서는 세입자가 계약기간 내내 월세를 내지 않더라도 보증금으로 커버할 수 있는 거죠. 하지만 일본은 보통 시키킹(보증금), 레이킹(사례금)이라는 보증금 성격의 초기비용이 계약시 필요합니다만, 보통 월세 1개월치입니다. 결국 임대차 계약을 맺을 때 3개월치를 미리 선납하는 것이죠. 물론 여기도 신축은 시키킹·레이킹을 2개월씩 받는 곳도 있지만, 이례적인 사례입니다.
결국 집을 빌려주는 임대인은 임차인이 믿을만한 사람인지를 확인하기 위해 온갖 서류를 동원해 심사를 하는 것이죠. 계약관계로 묶이기 전, 서로에 대한 신뢰가 없는 상황에서 온갖 사회적 도구를 활용해 사전 체크를 하는 방식으로 보면 되겠습니다. (임차인이 월세 체납 등의 예기치 못한 사고를 방지하고, 계약기간 동안 안정적으로 살기 위해 임차보증보험을 의무적으로 가입하기는 하지만, 이 또한 임차인이 내야하는 비용으로 임대인의 부담은 아닙니다.)
韓 “내 전세 보증금 떼일까···日 “좋은 집 빌릴 수 있을까”
대신 깐깐한 심사를 거쳐 임대차 계약을 맺으면 통상 2년으로 설정된 계약기간 내, 임차인은 별 구애를 받지 않고 거주할 수 있습니다. 임차인의 권리도 소중하게 여기는 관습이 확고해서 계약기간이 끝나기 45일 전에 퇴거 의사를 밝히면 해약에 대한 패널티는 없습니다. 한국에서는 전세기간보다 먼저 나간다고 하면 관례적으로 임대인의 부동산 중개 수수료까지 부담하는 경우가 많은데, 여기는 그렇지 않다고 하네요. 또 한국은 전세 보증금이 거액이라 현 임차인과 그 다음으로 오는 임차인의 이삿날이 같거나 거의 비슷해야 탈 없이 계약 해제와 설정이 이뤄지는데요, 여기는 다음 임차인을 받기 위해 한 두달 청소를 하고 벽지를 새로 구비하는 것은 기본이라고 합니다. 임대인도 임차인을 받기 위한 철저한 준비를 하는 것이지요. 대신 벽에 못을 박거나 바닥에 흠집을 내는 등, 일상 중에 발생하는 크고 작은 기물파손도 엄격하게 따져 시키킹(보증금)에서 뺍니다. 원상복구를 위한 청소요금도 이 시키킹에서 나갑니다.
만약 한국에서 전세가 사라지는 날이 온다면, 임대인은 자산의 효과적인 관리를 위해 일본처럼 까다로운 임차인 심사를 꺼내 들게 될까요? 아니면 제주 등 일부 지방에서 1년치 월세를 내듯, 연세를 받는 길을 선택하게 될까요? 아니면 지금까지 해왔던 대로, 전세보증금을 지킬 수 있는 보완책을 추가하는 선에서 변화를 마무리하게 될까요? 답은 결국 지금 한국에서 살아가는 이들에게 달려있습니다. 전세사기 문제를 계기로 서민에게도 안정적인 주거 유형에 대한 진지한 논의가 계속되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이수민 기자 noenemy@sedaily.comCopyright © 서울경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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