닷새간 강남서만 세번째 10대 죽음…‘베르테르 효과’ 우려

윤연정 2023. 4. 22. 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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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 “애도하고 표현할 수 있게 해야”
게티이미지뱅크

닷새 만에 10대 학생 3명이 연이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고등학생의 극단적 선택 장면이 소셜미디어(SNS)에 생중계된 데 이어 10대들 사이에 인기가 높은 아이돌 멤버까지 숨지면서 모방 현상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21일 <한겨레> 취재를 종합하면, 지난 16일 한 고등학생이 강남구 역삼동의 한 건물 옥상에서 투신하는 과정을 소셜미디어(SNS)를 통해 생중계한 이후 17일과 20일 연달아 중학생 두 명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서울 강남에서만 닷새 사이 3명의 10대 학생들이 극단적 선택을 한 셈이다. 지난 19일에는 10대 사이에서 인기가 높은 아이돌 남성 그룹 아스트로 멤버 문빈(25)이 자택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전문가들은 ‘베르테르 효과’(유명인이 극단적 선택을 할 경우 이를 모방하는 현상)를 우려하고 있다. 현명호 중앙대 심리학과 교수는 <한겨레>와의 통화에서 “소셜미디어로 투신 과정이 라이브 중계되면서 이를 목격한 불특정 다수가 연이어 모방을 했을 가능성도 있다. 중·고등학생 때 정체성에 대한 고민을 많이 하는 만큼 또래의 선택을 보고 영향을 받아 비슷한 선택을 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며 “그 과정에서 극단적 선택을 유발하는 정보가 담긴 미디어와 온라인 플랫폼이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보인다”고 지적했다.

소셜미디어 영상을 생중계 당시 지켜본 이들은 20여명이었지만, 해당 영상은 이후 각종 소셜미디어와 인터넷 커뮤니티 등을 통해 무차별적으로 확산됐다. 이후 방송통신심의위원회가 조처에 나서 인터넷사업자나 망사업자 등이 삭제를 시작했지만 삭제까지 5일 가량 소요됐다.

모방 현상을 막기 위해 전문가들은 청소년들이 보다 자유롭게 마음을 털어놓고 상담할 수 있는 체계 마련이 시급하다고 조언한다. 백종우 경희대 교수(정신건강의학과)는 “실제로 학교 또래 학생들이 숨지면 주변 청소년들한테 영향을 미치는 ‘군집 자살’이 있을 수 있기 때문에 적절한 사후 개입이 굉장히 중요하다”며 “특히 주변에 잠을 못하거나 식욕이 떨어지는 친구, 학교생활에 집중을 못 하는 친구들을 보면 우울감이나 자살에 대한 생각 등을 적극적으로 물어보고, 아이들이 고인을 충분히 애도하고 힘든 상태를 표현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하지만 현재는 우울증을 호소하는 청소년들이 독립적으로 정신과 상담 등을 받지 못한다. 현행 의료법에 따르면, 의료진은 진료 거부를 할 수 없기 때문에 청소년 상담을 받을 수 있지만, 민법상으로는 미성년자와 의료진의 계약은 불완전 계약으로 보는 만큼 부모 등 보호자에 의해 계약이 취소될 수 있기 때문이다.

김동욱 대한정신건강의학과의사회장은 “부모들이 아이들의 우울증이나 정신적 문제를 인정하지 않는 경우가 많은데, 청소년들이 어려움을 겪을 때 학교나 부모가 아닌 제3의 기관에서 편하게 상담을 받을 수 있는 체계가 마련되지 않으면 불특정 다수에 노출되는 온라인 플랫폼에 아이들이 더 의존할 수 밖에 없는 최악의 상황이 반복될 수도 있다”고 말했다. 백 교수는 “청소년이 정신건강의학과 진료를 받으려면 부모 동의가 필요하지만, 그 전에 청소년 상담센터나 자살예방 전화 상담 등을 통해 방법을 우선적으로 찾는 것도 방법”이라고 했다.

10대 자살을 사회 문제로 보고 범정부 차원의 처방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있다. 지난해 말 통계청에서 발표한 ‘아동 청소년 삶의 질 2022’ 보고서를 보면, 아동 청소년의 자살률은 2021년 인구 10만명당 2.7명으로 2000년(1.2명) 이후 최고치를 기록했다. 12~14세 자살률은 2000년 1.1명에서 2021년 5.0명으로 20여년 만에 5배 가까이 증가했다. 15~17세는 2021년 9.5명으로 집계됐다. 현명호 교수는 “자살률은 부처 한 곳에서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 국가 전체적으로 전 부처가 함께 들여다봐야 한다”며 “일본에서는 총리실에 자살예방대책위원회를 설치한 것처럼 (우리도) 실질적인 권한이 있는 대통령실 직속으로 자살예방대책위원회를 세워 범부처 차원에서 구조적으로 접근해야 한다”고 말했다.

※우울감 등 말하기 어려운 고민으로 전문가의 도움이 필요한 경우 자살예방 핫라인 ☎️1577-0199, 희망의 전화 ☎️129, 생명의 전화 ☎️1588-9191, 청소년 전화 ☎️1388 등에 전화하면 24시간 전문가 상담을 받을 수 있습니다.

윤연정 기자 yj2gaz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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