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억배럴 산유국 수단, 최빈국 신세 면치 못하는 이유

한겨레 2023. 4. 22. 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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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S] 구정은의 현실지구
두 군벌 내전 중인 수단
1956년 이집트에서 독립 이후
독재·쿠데타·부정축재·인권탄압
미국·중국·러시아·사우디·UAE…
석유·군사전략적 이유로 ‘눈독’
지난 16일 홍해에 인접한 수단의 도시 포트수단에서 수단인들이 압델 파타흐 부르한 장군을 따르는 육군 병사들과 인사를 나누고 있다. AFP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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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리카 북동부 드넓은 땅을 차지하고 있는 수단에 다르푸르라는 지역이 있다. 사하라사막이 커지고 목초지가 줄어들자 아랍계 무슬림 유목민들이 남쪽으로 내려오면서 아프리카계 농경민들과 충돌했고, 중앙정부의 묵인과 방조 혹은 지원 속에 무장 집단을 만들어 원주민들을 학살하고 쫓아냈다. 2003년부터 10년 넘게 세계의 ‘인도적 재앙’을 만들어낸 대표적인 분쟁이었던 ‘다르푸르 사태’다.

수단은 면적이 190만㎢에 이르는 큰 나라다. 다르푸르만 해도 면적이 50만㎢, 한국의 5배다. 그런데 수도 하르툼의 중앙정부는 다르푸르를 늘 무시하고 소외시켰다. 그러던 차에 사하라 주변 건조 지대인 사헬지역의 가뭄이 심해져 기근이 생겼다. 아랍계 유목민들은 1980년대부터 ‘잔자위드’라는 무장 집단을 만들어 약탈을 저지르기 시작했다. 학살과 납치와 노예 매매가 횡행했다. 300만명이 난민이 됐고 30만명이 목숨을 잃었다.

물가상승률 380%, 문맹률 40%

하르툼의 독재자 오마르 알바시르는 잔자위드를 척결하기는커녕 편들고 밀어줬다. 다르푸르의 저항을 찍어누른 뒤 잔자위드를 아예 정규군으로 편성했다. ‘신속지원군’(RSF)이라는 이름을 붙여주고 악명 높은 군벌 모하메드 함단 다갈로를 2013년 지휘관으로 앉혔다. 다갈로는 정규군이 된 조직을 사병처럼 운용했다. 금광, 목축업, 인프라 건설 등 온갖 사업에 손을 대 돈을 챙겼다.

오랜 독재는 적을 낳는 법. 알바시르가 키운 군 장성 압델 파타흐 부르한이 2019년 쿠데타를 일으켰다. 당시 하르툼에선 알바시르의 30년 독재에 항의하는 시민들의 거센 항의 시위가 일어나고 있었다. 부르한은 시위대에 총구를 들이대고 권력을 잡았다. 독재자를 등에 업고 출세한 다갈로는 그 독재자를 몰아내는 쿠데타에 재빨리 가세했다. 자신을 키워준 알바시르와 손절하고 부르한 장군에게 붙어 ‘하르툼 학살’의 악역을 맡은 것이다.

다갈로와 마찬가지로, 부르한에게 정치적 발판이 돼준 곳 역시 다르푸르였다. 다르푸르 정규군 사령관을 지낸 부르한은 지금은 독립국이 된 남수단과 벌인 전쟁에서도 수단군을 지휘했고, 2018년 육군 참모총장이 됐다. 알바시르가 궁지에 몰린 사이에 슬그머니 중장으로 진급하더니, 쿠데타 뒤 과도군사위원회의 의장을 맡았다. 그러나 수단인들이 보기에 실세는 부의장인 다갈로였다고 한다. 하르툼의 시위대를 짓밟은 주역은 다갈로의 군대였기 때문이다. 자신을 수단의 통치자로 만들어준 다갈로의 군대가 이제는 부담스러워진 부르한은 군 편제를 바꿔 몰아내려 했고, 이에 반발한 다갈로는 또다시 반란을 일으켰다.

이것이 2023년 4월 수단에서 ‘두 군벌의 싸움’으로 알려진 충돌이 일어난 배경이다. 그 중심에는 다르푸르에서 잔뼈가 굵은 두 사람이 있었다. 하지만 이 혼란을 이해하려면 수단 내부의 정치 사정뿐 아니라 이 나라를 둘러싼 국제정치적인 맥락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알제리와 콩고민주공화국에 이어 아프리카에서 세번째로 넓은 국토를 가진 수단은 홍해를 사이에 두고 아라비아반도와 마주 보고 있다. 인구 4800만명 중 70%는 아랍계이고 나머지는 베자족, 누바족, 푸르족 등의 아프리카계다. 기원전 2500~1500년 케르마 왕국이 있었으나 이집트 신왕조에 복속됐다가 기원전 8세기 쿠시 왕국이 세워져 1000년을 갔다. 기원후 4세기에 쿠시가 무너진 뒤 ‘누비아인’으로 불리는 원주민들이 기독교를 받아들이고 여러 왕국을 세웠다. 하지만 14~15세기 이후 아랍계 유목민들이 들어오면서 이슬람화됐다.

19세기에는 이집트와 오스만제국이 수단을 점령하고 노예 공급처로 삼았다. 그 후 수십년은 이집트와 영국이 수단을 공동통치했다. 1952년 왕정을 무너뜨리고 영국군을 축출한 이집트 새 정권은 수단을 놓아주기로 결정했고, 마침내 1956년 수단은 독립국으로 재탄생했다.

이후의 역사는 쿠데타와 군부 독재로 점철됐다. 1969년부터 16년간 집권한 자파르 누메이리는 사회주의자이자 범아랍주의자로 이집트의 가말 압델 나세르를 추종했고, 리비아의 무아마르 카다피와 가까웠으며, 한동안 마오쩌둥주의를 추구했다. 그러나 말년에는 이슬람주의로 돌아섰다. 무슬림이 다수인 북부와 기독교도 및 아프리카계 주민이 많던 남부 사이의 갈등이 심해졌다. 내전이 일어났고 훗날 남수단이 갈라져 나간 원인이 됐다.

1989년 집권한 알바시르는 비무슬림 주민들을 탄압하고, 체제에 반대하는 이들을 구금하고 고문하고 학살했다. 그의 집권기에 30만~40만명이 살해된 것으로 추정된다. 경제 사정은 당연히 나쁘다. 1인당 실질국내총생산(GDP)이 4000달러(약 530만원)에도 못 미치는 세계 최빈국이며 2021년엔 물가상승률이 380%를 기록했다. 성인 인구 40%는 글을 못 읽는다.

독재자의 몫 ‘오일 머니’

이런 상황에도 불구하고 수단은 산유국으로 발돋움했다. 50억배럴로 추정되는 원유 매장량에 눈독 들인 중국은 수단에 거액을 투자했다. 정권은 자원을 팔아 얻은 이익을 독식했고, 걸프 산유국들에 붙어 서방에 맞서는 시늉을 했다. 알바시르는 국제형사재판소(ICC)에 전쟁범죄 혐의로 기소됐으나, 아랍연맹 회원국들의 비호를 받으며 버젓이 걸프를 드나들었다.

그를 몰아내고 권력을 차지한 자들도 다를 바 없었다. 쿠데타 뒤 부르한은 첫 외국 방문으로 이집트와 아랍에미리트(UAE)를 찾아갔고 다갈로도 동행했다. 다갈로가 실세가 된 데에는 걸프국들의 후원도 한몫했다. 그는 사우디아라비아와 아랍에미리트가 예멘을 침공했을 때 신속지원군을 보내 도왔고, 리비아 내전에서도 아랍에미리트가 밀어주는 진영을 도우려고 병력을 보냈다.

사우디와 아랍에미리트는 미국·영국과 함께 ‘쿼드’(4자회담)를 만들어 수단 사태를 중재하겠다고 했다. 이참에 영향력을 확대하려 하는 것은 분명하지만, 일단 두 나라는 수단의 혼란을 진정시키고 싶어 한다. 홍해 개발에 나선 사우디는 긴 바다를 공유하는 수단의 불안정을 원치 않는다. 아랍에미리트는 수단에 대규모 농업 투자를 해놨다.

이집트도 분쟁에 발을 걸쳤다. 이집트는 내전 중인 두 군벌 중 부르한 쪽을 지원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 일간지 <뉴욕 타임스>는 지난 17일 러시아의 용병회사 바그너(와그너)그룹이 다갈로와 깊은 관계를 맺고 있다고 보도했다. 다갈로와 신속지원군은 수단의 주요 금광들을 차지하고 있는데, 바그너에 보안을 맡기면서 긴밀해졌다는 것이다. 사실 러시아는 알바시르 시절부터 수단과 밀착해 있었고, 한때 수단에 해군기지를 짓기로 합의한 적도 있었다. 알바시르 축출로 허사가 된 줄 알았는데, 다갈로가 홍해의 석유 수출항인 포트수단에 군사기지를 짓게 해줄 수 있다며 러시아에 손짓을 했다. 이집트는 뒷마당에 러시아 군사기지가 들어서는 걸 원치 않는다.

미국도 홍해에 러시아 기지가 들어설까 걱정한다. 하지만 나설 공간이 마땅치 않다. 미국은 남수단과 다르푸르의 ‘기독교도 난민들’을 받아들이며 반이슬람 선전에 활용했고, 알바시르 시절 수단을 압박하고 제재하기 바빴다. 최근 몇년 새 수단 정국이 뒤집어지는 동안 일관된 입장을 제시하지도 못했고 이렇다 할 도움을 주지도 않았다. 앤서니 블링컨 미 국무장관이 양측에 대화를 촉구했으나 미국이 지렛대로 쓸 만한 것은 딱히 없어 보인다. 

구정은 국제 전문 저널리스트

신문기자로 오래 일했고, <사라진, 버려진, 남겨진> <10년 후 세계사> 등의 책을 냈다. 국제 전문 저널리스트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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