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남수의 視線] 중·러와 좌충우돌하는 대통령
“적을 돕고자 하는 새로운 사람들이 있다.(중략) 한국의 윤석열 대통령은 원칙적으로 키에프 정권에 무기를 공급할 준비가 되어 있다고 했다. 이 나라 국민들이 그들의 가장 가까운 이웃인 북한에서 최신 러시아 무기를 볼 때 무엇이라 말할지 궁금하다.” 러시아 푸틴 대통령의 측근으로 대통령까지 지냈던 메드베데프 러시아 연방 안전보장이사회 부의장의 발언이다. 그러면서 “퀴드 프로 쿼(Quid pro quo), 받은 대로 갚아주겠다”고 덧붙였다. 그의 이 말은 한국의 입장 변화에 대한 경고로 보이지만, 뉘앙스는 매우 격렬하고 공격적인 반응이 아닐 수 없다.
“대만 문제에 불장난하는 자는 반드시 불에 타죽을 것” 21일 친강 중국 외교부장이 한 포럼에서 한 말이다. 이보다 앞서 20일 왕원빈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대만 문제에 대해 타인의 말참견을 허용하지 않는다. 한국은 ‘하나의 중국’원칙을 엄수하길 희망한다”고 했다. 18일 윤석열 대통령이 대만 문제와 관련해 ‘힘에 의한 현상 변경에 절대 반대한다’고 한 외신 인터뷰 발언에 중국은 격렬하게 반발했다. 이에 우리 외교부도 “국제사회의 보편적 원칙을 우리 정상이 언급한 데 대한 심각한 외교 결례”라면서 싱하이밍 주한 중국대사를 초치하기도 했다. 중국의 이같은 반응은 그만큼 윤 대통령의 발언을 엄중하게 인식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최근 벌어진 러시아, 중국과의 충돌은 한반도 주변 정세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치고 있다. 주요 무역 상대국으로서 경제적 영향은 물론이고, 우리의 안보에도 매우 위험한 시그널을 보내고 있다. 가뜩이나 계속된 북한의 도발로 인해 불안한 평화를 이어가고 있는 우리 현실에서 러시아, 중국과의 관계 악화는 어떤 이유에서든 좋지 않은 결과를 낳을 수밖에 없다. 특히 본격화된 미국과 중국의 패권경쟁은 ‘한미일 대(對) 북중러’의 대치 지점이 한반도라는 점에서 심각하다. 자칫 작은 충돌이라도 일어난다면, 그곳은 한반도일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그럼 이런 상황이 예상됐음에도 윤석열 대통령은 왜 이런 발언을 했을까. 한미일 동맹 강화가 윤석열 정부의 외교안보 정책 기조라고 하더라도 굳이 러시아와 중국과 대립각을 세워 무엇을 얻으려고 했던 것일까. 그동안 우리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에 대해 원칙적으로 반대했지만, 직접 살상무기 제공 등 전쟁에 개입하지는 않았다. 대만 문제에 대해서도 중국과의 관계를 고려해 모호한 입장을 유지해 왔다. 이번 윤 대통령의 외신 인터뷰만 본다면, 윤석열 정부의 외교전략의 일대 변화를 의미한다. 이미 지난 한일 정상회담에서 한미일과의 가치동맹 외교를 추진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낸 바 있다.
특정한 가치나 이념 중심의 동맹을 가치동맹이라고 한다. 2012년 이종석 전 통일부 장관은 당시 이명박 정부의 한미 간 가치동맹에 대한 문제를 지적한 바 있다. 그는 “동맹에 어떤 미사여구를 붙여도 그것이 태생적으로 배제와 배타성을 지녔다는 점은 달라지지 않는다”고 전제하고 “한미 가치동맹은 아무리 부정해도 중국을 타깃으로 한다는 인상을 씻어낼 수 없다.(중략) 이 논리는 우리 사회에서 필경 자유민주주의를 공유한 한국, 일본과 달리 중국은 사회주의이므로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서 한일 군사협력이 필요하다는 위험천만한 궤변으로 이어질 것이다”라고 경고했다. 그런데 10년이 지난 현시점에서 보면, 이는 현실이 됐다. 당시 이 전 장관은 한미 동맹은 ‘가치동맹’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호혜적이며 균형이 잡힌 양국관계를 지향해 중국 등 주변 국가와의 다자적 협력과 공존할 수 있는 동맹으로 거듭나는 것이다“라고 강조했다.
최근 윤 대통령의 러시아와 중국에 대한 돌출발언으로 국민은 불안해하고 있다. 외교 문제에 있어 역대 대통령들과 달리 윤 대통령의 일도양단의 태도는 국민으로 하여금 주변국과 좌충우돌하는 모습으로 비치기 때문이다. 여기서 윤 대통령의 이같은 발언이 의도된 것이었느냐 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그로 인해 벌어질 상황에 대한 충분한 대비가 있었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무엇보다 국민에게 믿음을 줘야 했다. 만약 실언이었다면, 이는 더욱 심각하다. 그야말로 초보 대통령의 외교 참사가 또 한번 재현된 것이기 때문이다.
이번 논란이 대통령의 의도된 발언에서 비롯된 것이든, 예상못한 돌출적인 발언에서 비롯된 것이든 안보와 경제에 좋지 않은 영향을 미쳤음은 물론이다. 무엇보다 국민이 불안해하고 있다는 점에서 대통령으로서 책무를 다하지 못했다고 할 수 있다. 국민의 신뢰를 기반으로 하는 것, 그것이 대통령이 외교에 임하는 기본자세이고, 그렇게 해야 힘이 생긴다. 그러나 윤 대통령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 외국 언론을 통해 불쑥 일방의 입장을 밝힌 것이다. 이런 일방적 결정과 독주로는 힘을 발휘할 수 없을뿐더라 파국을 맞을 위험이 크다. 나아가 만약 국민의 생명과 재산이 걸린 문제를 이용해 내부의 문제를 해결하려고 했다면, 이는 역사에 죄를 짓는 것이다.
또한 미국과의 강고한 동맹이 영원할 것이라고 믿는 것은 순진한 생각일 뿐이다. 국제정세의 냉혹함을 모르는 무지에 불과하다. 기본적으로 동맹도 스스로의 힘에 기초해야 지속될 수 있다. 미국만 믿고 어떻게 험난한 국제관계를 유지해 나갈 수 있겠는가. 무역 의존도가 높은 우리 경제 현실에서는 더욱 그렇다. 미국의 세계전략에 귀속됨으로써 받은 경제적 타격도 만만치 않을 것이다. 이는 어렵더라도 다자간 협력관계를 구축해야 하는 이유다. 안보 문제도 다양한 국제관계가 더 나을 수도 있다. 외교에서는 분쟁에 개입하기 보다는 전략적 모호성을 유지하는 것도 우리가 처한 현실적 문제가 있기 때문이다. 만약 이를 무시한다면, 한반도 위기를 불러오는 결과를 낳을 지도 모른다.
우리나라는 1945년 해방 이후 단 한 번도 엄중하지 않았던 적이 없었다. 그만큼 불안한 정세속에 상황을 관리하면서 어렵게 평화를 유지해 왔고, 번영의 길을 걸어왔다. 5년 전, 판문점에서 만난 남북 정상이 분단의 상징 군사분계선을 오갔던 감격스러운 순간도 있었지만, 지금은 그날의 감격은 적대감으로, 온 겨레를 설레게 했던 평화의 꿈은 실망과 두려움으로 바뀌고 말았다. 물론 지금의 불안한 정세는 주변국과 좌충우돌하는 대통령에서 비롯된 것은 아닐지도 모른다. 하지만 어려운 상황을 제대로 관리하지 못하고 있다는 비판에는 자유롭지 못할 것이다. 불행하게도 2023년 한반도는 어느 때보다 짙은 전운이 감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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