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시간 단축은 선진국이 갈 방향…저출생·불평등 해결 열쇠”[주4일제 실험]

박송이 기자 2023. 4. 22. 0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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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희 이화여대 사회학과 교수 인터뷰
지난 4월 10일 이주희 이화여대 사회학과 교수가 서울 서대문구 이화여대 연구실에서 주간경향과 인터뷰하고 있다. / 김창길 기자
정부의 정책적 개입이 없다면 대기업 조직에서만 우선적으로 시행할 것이다. 기업은 좋은 인력을 유인하기 위해 주 4일제를 할 수밖에 없다. 대기업에서만 시행하더라도 문화 자체가 확산되면 그 추세를 되돌릴 수 없다.”

[주간경향] 지난 3월 정부는 주 노동시간을 현행 52시간에서 69시간까지 늘릴 수 있는 노동시간 개편안을 발표했다. 이주희 이화여대 사회학과 교수는 정부의 노동시간 개편안에 대해 정규·비정규, 장시간·단시간, 성별을 망라한 “모든 노동자의 시간주권을 침해하는 방안”이라고 비판했다. 지난 4월 11일 연평균 노동시간이 1916시간(2021년 기준)으로 우리(1915시간)와 비슷한 칠레는 주 근로시간을 45시간에서 40시간으로 단축하는 법안을 통과시켰다. 아이슬란드는 노동자 상당수가 주 4일제(35~36시간) 적용 대상이며, OECD 국가 중 노동시간이 가장 짧은 독일(주 35시간)도 주 4일제(주 32시간)에 대한 논의가 활발하다. 이 교수는 오늘날 “근로시간 단축은 더 논의할 것도 없이 가야 할 방향”이라고 말하며, 특히 저출생, 소득불평등, 4차 산업혁명 등 굵직한 시대적 과제들이 중첩된 한국사회에서 “노동시간 단축은 이를 해결할 아주 중요한 문제”라고 말했다. 그는 주 4일제 도입이 긍정적인 파급 효과를 가져올 것이라고 기대하면서도 이와 함께 새로운 노사관계, 사회보장제도 확대 등의 정책적 고려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지난 3월 정부는 주 노동시간을 현행 52시간에서 69시간까지 늘릴 수 있는 노동시간 개편안을 발표했다.

“정부는 ‘노동시간 선택권 확대’라는 미명하에 초장시간 노동을 ‘유연화’로 포장해 추진 중이다. 가뜩이나 후진적인 장시간 노동 관행을 완화해도 모자랄 판에 오히려 노동시간을 늘리겠다고 나선 것이다. 당연히 일자리 감소, 노동자 건강 악화, 시간당 실질 임금 하락 등 많은 문제가 예상된다. 또 이번 개편안에는 근로자대표제도 정비 방안이 나와 있다. 그중 하나로 근무 형태나 방식이 다른 직종·직군의 노동자들이 본인에게 맞는 근로시간을 선택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한다. 이는 노동시간 개편이 특정 직종·직군에만 적용되는 경우, 사용자가 해당 노동자의 동의만 받아도 되도록 하겠다는 것이다(현행법에 따르면 노동시간 변경을 위해서는 사용자가 과반수 노동조합 또는 ‘노동자 과반수를 대표하는 자’와 서면합의를 해야 한다). 정부 개편안은 이를 개별 노동자들과 하겠다는 건데, 사용자가 하겠다는데 이를 거부할 수 있는 교섭력을 가진 노동자가 얼마나 될까.”

-여론의 반발에 대통령은 ‘주 60시간 이상 노동은 무리’라고도 했다.

“지금 젊은 세대는 자신을 갈아 넣어서 산업 역군이 되는 일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하는 세대가 아니다. 민주화·세계화 시대를 살아가는 인구집단이기에 산업혁명기의 장시간 노동으로 되돌아가는 퇴보에 당연히 반대할 수밖에 없다. 이번 개편안의 또 다른 문제는 정부가 국회 및 노동계와 충분한 토론 없이 이를 발표했다는 점이다. 이 정부의 일관된 특징 중 하나다. 정부가 내놓은 개편안의 상당 부분이 입법 사항이다. 여론의 반발이 있자 그제야 이야기를 듣겠다고 한다. 그마저 특정 노동인구, 특정 세대에 한해서만 의견 수렴을 하고 있다.”

-정부는 개편안을 두고 노사에 ‘시간주권’을 돌려주는 것이라고 자평했다.

“시간주권은 노동자가 자유롭게 시간을 활용할 수 있는 능력이다. 정부의 개편안은 모든 노동자의 시간주권을 침해한다. 장시간 노동은 국내에서는 점점 소수가 돼가는 핵심노동자(정규직)의 과로, 주변부 노동자(비정규직·간접고용 노동자·플랫폼 노동자 등)의 단시간 노동 및 실업을 유발한다. 핵심노동자는 휴식과 재생산·재충전의 기회가 박탈되고, 주변부 노동자는 저임금으로 휴식시간의 질이 심각하게 훼손된다. 또 핵심노동자의 다수는 남성이고 주변부 노동자의 다수는 여성이다. 장시간 노동을 하게 되면 누군가 옆에서 도와줘야 하는데, 여성이 그 역할을 하는 경우가 압도적으로 많다 보니 계속해서 주변부 노동을 하게 된다. 결국 남녀 모두의 시간주권과 평등이 훼손된다. 게다가 이미 법정근로시간 밖에서 장시간 일하는 노동자들이 너무 많다. 지난해 8월 고용노동부는 3년간의 특별연장근로(근로기준법 시행규칙이 정하는 ‘특별한 사정’ 있는 경우 한시적으로 1주 최대 64시간까지 근무 가능) 인가 현황을 분석·발표했다. 특별연장근로는 노동부 장관의 허가가 있어야 가능하다. 2022년 1~7월 특별연장근로 인가 건수는 모두 5793건으로, 2021년 같은 기간에 견줘 2523건(77.2%) 늘었다. 놀라운 수치다. 행정부의 독단으로 장시간 노동은 이미 상당히 확대되고 있다.”

지난 4월 10일 이주희 이화여대 사회학과 교수가 서울 서대문구 이화여대 연구실에서 주간경향과 인터뷰하고 있다. / 김창길 기자

-최근 칠레 의회가 주 4일제 법안을 통과시켰다. 한국과 달리 세계는 주 4일제 실험 등 노동시간 단축을 향해 가고 있다.

“노동시간 단축은 모든 선진국이 나아가야 할 방향이다. 여기에 대해서는 사실 더 논의할 것도 없다. 첫째, 노동시간 단축은 일자리 확대와 연결된다. 노동운동이 주도해온 노동시간 단축은 노동자의 휴식과 여가 확보뿐만이 아니라 기술 발전으로 인한 실업을 막기 위해서도 필요했다. 둘째, 4차 산업혁명에 걸맞은 혁신을 위해 노동시간을 단축해야 한다. 짧은 노동시간은 기업으로 하여금 생산성 향상을 위한 더 나은 방식을 찾도록 한다. 이는 기술혁신으로 이어진다. 노동시간 단축이 단기적으로는 비용이 들겠지만, 장기적으로는 기술혁신과 창의성 증진으로 이어지므로 사용자에게도 나쁜 선택이 아니다. 경제학자인 폴 크루그먼 뉴욕시립대 교수는 1997년 외환위기를 겪은 한국 등 동아시아의 경제성장을 영감(inspiration)이 아니라 땀(perspiration)에 의한 것이라고 논평한 바 있다. 노동자를 쥐어짜내 성장하는 장시간 노동으로 가게 되면 앞으로 더욱 기술혁신에서 뒤처질 수밖에 없다. 셋째, 장시간 노동은 장기적으로 생산성을 낮추고, 소득불평등, 성불평등을 강화한다. 앞서 언급했듯 전일제 노동자들이 장시간 일하게 되면, 다른 한쪽에서는 단시간 노동, 불안정 일자리가 증가하게 된다. 장시간 노동자는 시간이 없어서, 시간제 노동자는 실질적인 돈이 없어서 총수요가 촉진되지 않는다. 노동자가 재충전하지 못하면서 인적자원의 손실도 발생한다. 넷째, 저출생은 필연적이다. 단시간 노동이나 불안정 노동에 종사하는 이들의 대부분이 여성이나 청년이다. 이들은 아이를 안 낳음으로써 단시간·불안정 노동에서 벗어나려고 한다. 마지막으로 노동시간이 길어지면 돌봄, 자원봉사, 시민참여 등 공동체를 위한 의미 있는 활동이 위축된다. 장시간 노동으로 너무 바쁜 노동자들은 공동체에 관심을 두지 못하고 힘이 세고 영향력이 큰 미디어에만 의존하게 된다. 장기적으로 볼 때, 노동시간 단축은 경제 전반에 또 국민 모두에게 혜택이 돌아간다. 지금 정부는 그러나 이런 혜택은 염두에 두지 않고 당장 사용자가 원하는 데로만 쫓아가고 있다.”

-지난 대선 당시 이재명 민주당 후보, 심상정 정의당 후보가 주 4일제를 공약으로 내놓았지만, 크게 쟁점은 되지 못했다.

“워낙 다른 이슈가 많았던 원인이 크겠지만, 주 4일제가 절대다수의 노동자에게 해당하는 일이 아니었다는 점도 주요 이유 중 하나였다. 1인 자영업자, 특수고용직, 플랫폼 노동자 그리고 근로기준법 적용이 안 되는 직종들에는 주 4일제 공약의 울림이 크지 않았을 것이다.”

-주 4일제를 도입하면 대기업 정규직에만 혜택이 돌아갈 거라는 비판이 있다.

“국내에 주 4일제를 도입하는 데 두 가지 걸림돌이 있다. 첫째는 저임금과 임금불평등이다. 임금불평등도가 높으면 저임금은 물론 고임금 직종 또한 장시간 노동을 하게 된다는 조사가 있다. 임금이 낮으면 일을 많이 할 수밖에 없어 당연히 장시간 노동을 선호하게 된다. 고임금은 노동시간에 대한 보상이 크고 휴식에 대한 기회비용이 높다는 것을 의미한다. 고임금일수록 일을 더할 인센티브가 생기는 것이다. 둘째는 비표준적 고용관계다. 노동자로서 고용계약을 맺지 못하는 특수고용직, 자영업자로 오분류된 플랫폼 노동자와 같은 위장된 1인 자영업자가 비표준적 고용관계에 놓여 있다. 이들은 법정근로시간이 아무리 줄어도 이를 적용받지 못한다. 특히 이들은 ‘노동하는 시간’과 ‘노동하지 않는 시간’에 대한 구분이 잘 안 된다. 플랫폼 노동자의 경우 단시간 일감이므로 일하지 않는 시간에도 끊임없이 신경을 쓰고 있어야 한다. 고용관계라면 노동시간에 포함될 수 있는 대기시간이다. 기업들은 점점 더 정상적인 고용관계를 맺기보다 업무를 극단적으로 외주화하려고 한다. 과거에는 정규직 노동자로 고용했던 직종을 독립계약자, 1인 자영업자에게 맡기는 전략을 쓰고 있다.”

-주 4일제 도입과 함께 어떠한 정책들을 고려해야 하나.

“새로운 노사관계, 사회보장 확대 등을 고려한 정책이 수반돼야 한다. 비표준적 고용관계에 놓여 있는 노동인구가 늘고 있는데, 여전히 노동법과 사회보장체제는 위계적이고 집합적인 고용관계를 상정하고 있다. 기존의 노동법과 사회보장법으로는 이 노동자를 보호할 수 없다. 노동자성을 판단하는 기준을 완화하고 이를 입증하는 책임은 사용자가 지도록 해야 한다. 직접 근로계약을 맺지 않지만, 실질적인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플랫폼 사업자 등의 사용자성을 인정하고 교섭의무도 명확히 해야 한다. 유럽연합 등 선진국에서는 플랫폼 노동자의 상당수인 배달·운송 종사자를 노동자로 인정하는 판례가 축적돼 있다. 기존의 노동법에서 노동자 개념·사용자 개념을 재정립해 노동법의 보호를 받는 범위를 확대해야 한다. 노동법의 외연을 넓혀도 자영업자, 프리랜서 등 노동법적 보호가 불가능한 사람들이 있다. 이들을 위해서는 사회보장의 보편성을 확대해야 한다. 고용보험·산재보험 등 지금의 사회보험제도는 고용을 매개로 이루어지고 있다. 노동법에 들어오지 못하는 이들을 위해 ‘일하는 모든 사람을 위한 기본법’ 등을 통과시켜 사회보장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 나는 기본소득도 하나의 대안이라고 본다. 이론과는 달리 현실에서 사회보험과 기본소득에 대한 수요는 배타적이지 않다. 기본소득이 미래의 모든 형태의 불안정 노동자를 보호할 수 있는 사회보장제도로 기능할 수 있고, 장시간 노동을 제어할 수 있는 역할을 할 수 있다. 조세, 공공주택 정책 등 더 정교한 제도 설계와 소통으로 주 4일제가 가져올 수 있는 차별적 효과를 완화할 수 있어야 한다.”

-주 4일제 도입을 위해서는 국가의 개입이 필수적이지만, 현 정부의 정책 기조와는 거리가 멀어보인다.

“정부의 정책적 개입이 없다면 지불능력이 큰 대기업 조직에서만 하게 할 것이다. 지금의 20~30대는 주 4일제를 원하기 때문에 좋은 인력을 끌어들이려면 기업은 결국 주 4일제를 할 수밖에 없다. 그 외의 대다수 노동자는 지금 정부의 방침대로라면 장시간 노동으로 더 힘들어질 우려가 크다. 시장에만 맡기면 불평등이 심화되기 때문에 국가가 개입해 불평등을 최소화하는 게 맞다. 하지만 이에 대한 개념이 없는 정부 같아 사실 현재로서는 기대하기 어려운 게 사실이다. 우선적으로 대기업 조직에서만 주 4일제를 시행하더라도 효과가 없다고만은 볼 수 없다. 제한된 대상으로라도 시행돼 문화 자체가 확산되면 그 추세를 되돌리긴 어렵다. 문화의 특성이 그렇다. 일부에서 시작만 해도 그 자체로 긍정적인 효과가 있으리라고 본다.”

박송이 기자 psy@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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