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철 엘리베이터는 사회가 '그들'에게 주는 '혜택'일까?
[한예섭 기자(ghin2800@pressian.com)]
"엘리베이터는 94퍼센트(%) 가까이 설치 됐다. 도대체 뭘 위한 투쟁이냐."
지난해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의 이동권 시위를 '저격'하고 나선 이준석 전 국민의힘 대표는 이렇게 말했다. 이후 해당 발언은 각종 변주를 거치며 여러 사람의 입에서 반복되고 있다. 반복의 과정에서 '장애인들은 이미 충분히 혜택 받고 있다'는 인식이 형성되고 있기도 하다.
가령 오세훈 서울시장은 지난 2월 전장연과의 면담 자리에서 이동권 보장에 대한 전장연 측 요구에 "수백 수천 종류의 사회적 약자들이 (예산 배정을) 기다리고 있다"며 장애인들이 지금의 시스템을 "이해"해 줄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이후 전장연 측은 애초 요구안의 0.8% 수준(230억 원)만 반영된 장애인권리예산 중에서도 이동권 예산을, 다시 그 중에서도 특별교통수단 예산만이라도 논의해보자고 여러 차례 제안했지만 시와 정부는 묵묵부답이다.
전장연 관련 보도에 달리는 수많은 댓글들은 좀 더 노골적인 공격을 감행하곤 한다. "있던 지원금도 다 뺐어라", "그만 좀 징징대라", "우리(비장애인) 세금을 왜 너희(장애인)한테 써야 하느냐", 장애인들이 '충분한 혜택'에 만족하지 못하고 '징징댄다'며 비난이 쏟아진다.
2023년 기준 설치율 94%에 이르는 서울지하철 역사 내 엘리베이터는 장애인들에게 정말로 '충분한 혜택'일까? 실은 충분성을 따지기 전에 혜택이라는 단어부터가 잘못됐다. 그 엘리베이터의 설치 이유 자체가 장애인이 당한 사고와 죽음과 그에 따른 투쟁이었기 때문이다.
1999년 전국 최초로 양방향 엘리베이터가 설치된 곳은 서울지하철 4호선 혜화역이다. 1998년 중증 뇌변병 장애인 이규식 씨(현 서울장애인차별철폐연대 상임대표)가 지하철 리프트를 이용하다 당한 휠체어 추락사고가 계기가 됐다.
서울교통공사는 당시에도 '리프트엔 문제가 없으며 사고는 개인의 책임'이라 주장했지만, 대책위원회를 꾸리고 1년 넘게 손해배상 소송을 진행한 장애인 단체 노들야학의 싸움 끝에 법원은 이규식 씨의 손을 들었다.
배상액은 "파손된 스쿠터 값이나 병원비 등을 감안하면 턱없이 부족"한 500만 원. 그러나 "그 결과 혜화역에는 전국에서 최초로 양방향 엘리베이터가 설치되었다." 엘리베이터는 비장애인이 장애인에게 준 혜택이 아니다. 마땅히 가져야 했지만 가지지 못해 싸워 얻은 권리다.
이 대표는 최근 펴낸 책 <이규식의 세상 속으로>에서 이렇게 말한다.
"장애인과 비장애인 모두가 편하게 탈 수 있는 지하철 엘리베이터와 저상버스는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게 아니다. 우리 사회가 쓸모없다고 치부한 사람들이 모여 온갖 욕을 먹으면서도 힘겹게 싸워 쟁취한 것이다."
이 대표는 '장판'(장애인 운동판)에서 '투모사'(투쟁 밖에 모르는 사람)로 불린다. 쏟아지는 장애인 이동권 관련 보도를 몇 개만 클릭해 봐도 그의 사진을 쉽게 확인할 수 있다. "탱크 몰고 다니는 장애인", "깡패 같은 장애인"이라며 쏟아지는 욕설이 최근 그에게는 일상이 됐다.
그는 대체 왜 이렇게까지 싸우고 있을까? 책은 그의 유년부터 현재까지의 일상을 훑어가며 그에 대한 길고도 간명한 답을 준다. 독자들은 장애인의 보편 삶을 허락하지 않는 사회 속에서 그가 겪은 수많은 경험과 감정들을 돌고 돌아 이윽고 하나의 문장 앞에 이규식과 함께 선다. "이동권 하나 만큼은 꼭 이뤄내고 싶다."
'만족을 모르는 장애인'이라 비난 받는 그의 투쟁 뒤에는 장애인의 죽음을 묵살하는 비장애인 중심 사회가 있다. 이 대표의 1년 투쟁으로부터 2년 뒤 2001년, 오이도역 리프트 추락참사가 발생해 70대 노부부 장애인이 숨졌다.
세월호 참사가 일어난 2014년 4월, 이 대표의 기억 속엔 5미터가 채 안 되는 거리를 이동하지 못해 화재로 사망한 한 장애인의 죽음이 각인돼 있다. 국민연금공단의 불합리한 판정으로 활동보조 서비스를 받지 못한 장애인 송국현 씨였다.
"그 뒤 활동보조 서비스는 장애등급 3등급까지 확대되었고, 장애득급제가 개편된 2019년에 이르러서야 모든 등록 장애인에게 신청 자격이 주어졌다. 꼭 누가 죽어야만 법이 바뀌고 제도가 바뀐다. 하지만 조사 방식은 장애득급제가 있던 때와 그리 다르지 않다."
이동권이 보장되지 않는 지하철, 탈시설 권리가 보장되지 않는 장애인 거주 시설, 활동보조 서비스가 지원되지 않는 자립공간... 장애인들의 죽음은 어디에나 있었다. 그리고 지금도 있다. 오이도역 추락참사 이후 22년 간 이어지고 있는 이동권 시위의 와중에도 2002년 발산역, 2006년 신연수역, 2008년 화서역, 2017년 신길역 등에서 장애인 추락참사가 일어나 피해자가 숨졌다.
전장연의 탈시설 요구가 사회적 화두가 됐던 바로 지난해에도 "지적장애인 A 씨가 시설에서 직원인 사회복지사에 의해 죽임을 당하는 일이 일어났다." 수많은 장애인들의 죽음을 목도해온 이 대표는 재원의 한계는 그토록 강조하는 이 사회가 대체 왜 "장애인들의 죽음에는 침묵하는가" 묻는다.
"평생 시설에 갇혀 이름도 빛도 없이 살다 죽는 게 삶인가. 누구의 죽음은 금이라 인터넷에 몇날 며칠 메인 기사로 떠있고, 장애인의 죽음은 똥이라 시설에서 몇백 명이 죽어도 기사 한 줄 안 나는 건가. 왜 장애인의 죽음에는 침묵하는가."
장애인이 혜택받고 있다 말하는 많은 이들은 지금도 "이동권을 주장하면서 왜 탈시설을 끼워 넣느냐"고 묻곤 한다. '전장연이 원하는 건 사실 이동권이 아니라 탈시설이며, 이는 이권을 위한 행위'라는 식이다.
틀렸다. 이들이 원하는 건 이동권과 탈시설은 물론 교육·노동 등 모든 권리다. 그리고 그 모든 권리는 이어져 있기 때문에 분리할 수도 없다. 결국 이들이 원하는 건 장애인의 '삶' 그 자체다.
책은 자유롭게 이동할 수 없어서 결국 시설에 갇히고, 시설에 갇혀서 이동할 수 없게 되고, 그리하여 교육받지 못하고, 다시 교육받지 못해서 노동할 수 없었던 ‘이규식의 삶’을 통해 각 의제의 연결성을 자연스럽게 조망한다.
한편으론 휠체어를 얻어 이동할 때, 시설에서 탈출할 때, 아버지조차 믿지 않았던 고등학교 졸업을 해냈을 때, 공동체 안에서 내 몫의 일을 찾아낼 때, 혹은 놀고 여행할 때 저자가 느끼는 환희를 통해 장애인에게도 마땅한 삶이 있다는 것을 조망한다. 불편한 것은 장애가 아니라 장애를 허락하지 않는 사회적 조건임을 드러낸다.
"비장애인이 여행하는 이유를 설명할 필요가 없듯, 나도 장애인이기 이전에 한 사람으로서 인생을 즐기고 싶다. 여행하는 데 아주 특별한 이유가 있어야 하나? 누구든 충전이 필요할 수 있고, 훌쩍 떠나고 싶을 때도 있고, 새로운 곳을 찾아가 보고 싶기도 한 거지. 좀 더 욕심을 내면 사람들이 내 여행 이야기를 보면서 떠올리면 좋겠다. 장애인도 여행을 즐길 줄 아는 자유로운 인간임을."
지난 19일, 제43회 장애인의 날을 하루 앞두고 오세훈 서울시장은 약자와의 동행을 강조하며 장애를 "불행"에 빗댔다. "결핍도 때로는 성장의 밑거름이자 축복"이라며 "불행을 딛고 일어"날 수 있게 서울시가 장애인과 함께하겠다고 역설했다.
역설적으로 장애인 이규식에게 불행은 끊임없이 그를 세상 밖으로 내쫓으려 했던 갖가지 사회적 조건들이었다. 마침내 그를 세상 속으로 들여보낸 건 그와 그의 장애인·비장애인 동료들이 20년 이상 지속해온 투쟁이었다.
책의 74페이지엔 "장애인이라면 이런 대우를 받는 게 당연한 줄 알았"던 그를 마침내 세상 속으로 이끈 전환의 순간이 등장한다. 최근 장애인 운동을 관심 있게 지켜본 이들이라면 으레 가슴이 설렐 만한 한 장면이다. 저자의 서술을 인용하며 글을 마친다.
"동네 한 바퀴 돌다가 마땅히 갈 데가 없어서 다시 정립회관으로 갔다. 자판기 커피도 한잔하고 여기저기 구경하면서 시간을 때우고 있는데, 오후 4시쯤 봉고차를 타고 장애인들이 많이 왔다. 다들 건물 안으로 들어가 길래 뭐 하나 싶어 슬쩍 따라가 봤다.
3층에 있는 노들야학이었다. 사람들은 야학교실로 들어갔는데, 왠지 교실에는 들어가면 안 될 것 같아서 문이 열려있던 옆방으로 가보았다. 거기가 야학 교무실이었는데, 교장인 박경석과 교사 대표를 딱 마주쳤다. 장차 내 장애 운동의 멘토가 될 박경석을 이날 처음 만났다."
[한예섭 기자(ghin2800@press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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