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엔] 학자금 대출 무이자? “우린 원금 깎아줘~”

황경주 2023. 4. 22. 0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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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주 한국 국회에서 이른바 '학자금 무이자법'이 논란이었습니다. 대학생이 받은 학자금 대출에 대해 취직 전까지는 이자를 면제해 준다는 내용을 골자로 합니다. 청년층의 학자금 부담을 줄여 줘야 한다는 민주당과 재정 부담·도덕적 해이 등을 이유로 반대하는 국민의힘이 팽팽히 맞서는 법안입니다.
이 법안이 17일 국회 교육위원회 안건조정위원회를 통과했습니다. 국민의힘이 반발하는 가운데 민주당이 단독으로 처리했습니다. 이대로 민주당이 본회의까지 법안을 직회부할 가능성도 제기됩니다.
사실 '청년과 학자금'은 한국 정치권에서만 통하는(?) 화두는 아닙니다. 미국 바이든 정부는 지난해 "학자금 대출 원금을 깎아주겠다"는 통 큰 결정을 내렸죠. 거센 찬반 논란이 일었고, 결국 법정 공방으로 번졌습니다. 우리와 닮은 미국의 '학자금 대출 탕감' 논쟁을 들여다 봅니다.
미국 아이오와 대학교 졸업식에서 한 학생이 ‘학자금 부채 탕감’이라고 적힌 학사모를 쓰고 있다. (출처:AP)


■ 바이든의 승부수 '학자금 대출 탕감'

지난해 8월 24일, 미국 중간 선거를 두 달여 앞둔 시점에 바이든 대통령이 백악관 연설대에 섰습니다. 그리고는 "1인당 학자금 대출을 최대 2만 달러(약 2천7백만 원)씩 깎아주겠다"고 직접 밝혔습니다. 소득 기준이 있긴 하지만(부부 합산 연 소득 25만 달러 미만), 청년층 4천3백만 명이 혜택을 볼 수 있을 거라며, "약속을 지키기 위한 것"이라고 강조했습니다. 이 정책은 바이든 대통령의 선거 공약이었습니다.

바이든 대통령은 '약속'에 진심인 것처럼 보였습니다. 복잡한 의회 절차를 거치지 않고, 행정 명령을 통해 일사천리로 정책을 시행했습니다. 앞으로 30년 동안 무려 4천억 달러(약 575조 원)가 투입되는 정책이 의회 승인 없이 시작된 겁니다.

조 바이든 대통령이 2022년 11월 3일 노스캐롤라이나주의 한 지역 대학에서 학자금 대출 탕감 계획에 대해 말하고 있다. (출처:AP)


■ "바이든 월권"…불붙은 법정 다툼

공화당(야당)이 장악한 지역들은 가만히 있지 않았습니다. 네브래스카, 미주리, 아칸소 등 6개 주 정부가 "주 예산에 대한 연방 정부의 월권"이라며 소송을 냈죠. 법적 다툼의 서막이 올랐지만, 바이든 정부는 멈추지 않았습니다. 학자금 탕감 신청서를 계속 받았고 2천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접수를 마쳤습니다. 이 중 일부는 탕감 결정까지 받았습니다.

하지만 연방 지방법원과 항소 법원들에서 줄줄이 주 정부의 손을 들어주는 판결이 나왔습니다. 마냥 정책을 밀어붙이기가 힘들어진 바이든 정부는 결국 추가 접수를 일단 멈췄습니다. 대법의 최종 판결이 오는 6월 나올 것으로 보이는데, 그때까지는 일단 기다리겠다고 했습니다. 만약 6월에도 결론이 안 난다면 그로부터 60일 뒤에 제도를 재개하기로 했습니다.

한 시위자가 ‘학자금 대출 탕감은 꼭 필요하다’라고 쓰여진 팻말을 들고 있다.


■ 다 갚는데 15년 6개월…"중산층 발목 잡는다"

미국에서 대학 학자금이 큰 부담인 건 사실입니다. 미국인들이 대학 학자금을 모두 갚는 데 평균 15년 6개월이나 걸린다고 하니까요. 심지어 40년이 걸려도 다 갚지 못하는 사람이 거의 5만 명에 달하는데, 이들 가운데 약 80%는 채무 불이행 상태라고 뉴욕타임스(NYT)는 보도했습니다.

바이든 대통령은 학자금 대출 탕감이 '중산층을 떠받치는 일'이라고 말합니다. 지금은 학자금 대출 부담이 너무 커서 힘들게 대학을 졸업해도 중산층 수준의 삶에 접근하지 못한다고요. 또 코로나19라는 비상 상황을 고려하면, 학자금 대출을 조금 깎아줄 수도 있는 거 아니냐고 합니다.

반대편 논리도 탄탄합니다. 열심히 노력해서 학자금을 갚은 사람들과 형평성이 맞지 않다는 거죠. 또 지금은 코로나19가 아니라 인플레이션(물가 상승)이 문제라고 주장합니다. 돈을 푸는 정책은 인플레이션만 심화시킬 거라는 지적입니다.

미국 연방 대법원 앞에서 대학생들이 ‘학자금 대출 탕감’을 주장하며 시위를 벌이고 있다.


■ 운명은 '보수로 기운' 대법원 손에

양쪽 다 맞는 말로 싸우는 상황에서 결정은 연방 대법원의 손으로 넘어갔습니다. 관전 포인트는 연방 대법원의 정치 지형입니다. 6 대 3. 현재 미국 대법관 9명은 보수 성향 6명, 진보 성향 3명으로 분류됩니다.

미국 언론들은 일찌감치 보수 성향 대법관들이 '절차적 정당성'을 문제 삼을 거로 예측했습니다. 대규모 세금이 투입되는 정책을 의회 표결 없이 행정 명령으로 진행하는 게 정당하냐는 데 대법원이 초점을 맞출 것이라고요.

지난 2월 연방 대법원 앞에서 대학생들의 시위가 벌어진 가운데, 이 사건에 대한 첫 대법 심리가 열렸습니다. 결과는 예상대로였습니다. 뉴욕타임스는 "보수성향 대법관들이 학자금 대출 탕감 제도의 적법성에 회의적인 반응을 보였다"고 보도했습니다. 정치·경제적으로 영향력이 큰 정책은 입법을 통해 시행돼야 한다는 겁니다.

바이든 대통령(오른쪽)이 2022년 2월 25일 미국 워싱턴 백악관에서 커탄지 브라운 잭슨 판사를 연방대법원 대법관 후보로 발표하기 위해 카말라 해리스 부통령, 커탄지 브라운 잭슨 판사(왼쪽)와 함께 도착하고 있다. (출처:AP)


■ 바이든, 이겨도 져도 그만?

마치 바이든 대통령이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고군분투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이겨도 져도 그만인 쪽은 오히려 바이든'이라는 관측이 많습니다. 정확히 말하면 '법정에서는' 져도 그만이라는 겁니다.

미국은 내년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있고, 바이든 대통령은 빠르면 다음 주 미뤄왔던 '대선 재도전 공식 선언'을 할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법적 다툼'이라는 전투에서 지더라도, '대선'이라는 전쟁에서 이기는 게 바이든 대통령에겐 더욱 중요하겠죠.

많은 청년층의 지지를 받는 '학자금 대출 탕감' 정책이 '보수' 성향의 대법원에서 좌절된다면, 바이든의 대선 레이스에는 오히려 호재가 될 수 있다는 겁니다. 지난해 11월 중간선거에서도 비슷한 일이 있었거든요. 연방 대법원의 '낙태권 폐지'라는 보수적인 판결을 한 데 분노한 미국인들은 민주당에 표를 던졌습니다.

뉴욕타임스는 "바이든 정부는 처음부터 법적 근거가 튼튼하지 않았다. 논란이 될 것을 알면서 중간 선거 직전 이 정책을 밀어붙였다"고 짚었습니다. 대법원에서 결국 지더라도 "보수적인 법원에 맞서 최선을 다해 싸웠다고 지지자들에게 말할 수 있다"는 겁니다. 과연 바이든의 '학자금 승부수'는 이번에도 통할 수 있을까요? 한국 정치권의 '학자금 무이자법'은 어느 편에 승부수가 될까요?

황경주 기자 (race@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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