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적당히 살았더니…다음 생에 난 큰개미핥기로?
뭔가 어른스럽고 어려운 일을 척척 하는 사람들에게 ‘너 혹시 인생 2회차냐’는 농담을 한다. 만약 과거로 돌아가 다시 한번 더 살 수 있다면 당신도 드라마 <재벌집 막내아들> 송중기처럼 돈을 왕창 벌고 복수하는데 인생을 바칠 것인가? 그런데 2회차가 아니라 3회차, 4회차였다면 송중기도 다르지 않았을까? 그때는 정말 나에게 정말 소중한 것을 찾게 되지 않을지. 일본 <엔티브이>(NTV) 올해 일요드라마로 방송한 <브러쉬업 라이프>는 일본의 여러 온라인 동영상 서비스(OTT)에서 장기간 1위를 하며 젊은 드라마 팬들한테 큰 지지를 받았다. 국내에서는 오티티 왓챠에서 볼 수 있다. 이번 드라마, 무조건 추천한다.
아사미는 작은 도시의 시청에서 일하는 30대 공무원이다. 창구에서 스트레스를 받을 때도 있지만, 적당히 일하는 여유로운 일상에 만족한다. 그러다 갑자기 교통사고로 죽는다. 정신이 든 곳은 저승. 안내데스크 남자는 아사미의 파일을 보더니, 다음 생은 “과테말라 남동부의 큰개미핥기”로 환생할 거라고 한다. 아마 전생에서 덕이 부족했기 때문인 것 같다고 한다. 아사미가 절망하자 그는 인생을 처음부터 다시 사는 방법도 있다고 말해준다. 아사미는 2회차 인생을 선택하고 다시 태어나 똑같은 인생을 산다.
이제 아사미의 목표는 덕을 쌓아 다음 생에 다시 사람으로 태어나는 것이다. 2회차 인생은 조금 수월하다. 태어나자마자 말도 할 수 있지만 부모가 놀랄 것 같아 참기로 한다. 어른의 눈으로 보니 의외로 신경 쓸 게 많다. 유치원생의 몸이지만 유치원 선생의 불륜을 막아야 한다. 누명을 쓰게 될 중학교 선생도 구해야 한다. 모든 공부가 복습이라 1회차 인생보다 좋은 성적으로 졸업해 약사가 되는 등 행복하게 살지만, 방심한 사이 또 죽는다. 저승 안내데스크 남자는 이번에는 “태평양 고등어”로 태어날 거란다. 덕이 또 부족했나 보다. 개미핥기보다는 나아진 것 같지만 한번 더 인생을 살기로 한다. 과연 아사미의 엔(N)차 인생은 언제쯤 어떤 결말로 끝나게 될까.
사실 드라마에서 같은 인생을 몇번이나 반복하는 것은 모험이다. 같은 인물과 같은 사건이 등장한다. 조금이라도 지루하면 시청자들은 흥미를 잃을 것이다. 하지만 이 드라마는 디테일로 그런 위험을 극복한다. 아사미와 친구들이 농담처럼 주고받는 말과 장난스러운 행동은 빠짐없이 다음 인생을 위한 복선이다. 엔차 인생이 그물처럼 엮여 있는 셈이다. 결말 역시 마음에 든다. <재벌집 막내아들> 결말에 충격받았던 많은 분들이 이 결말에 위안받길 바란다. 1990년대부터 현재까지 세월의 변화를 보는 즐거움도 있다. 당시는 일본 대중문화의 전성기였기에 우리에게도 익숙한 노래, 드라마, 영화들이 많이 등장한다.
감탄이 절로 나오는 이 드라마 대본은 일본 인기 개그맨이자 엠시(MC)인 바카리즈무가 집필했다. 주인공 아사미 역의 안도 사쿠라도 주목해야 할 인물. 안도는 같은 사람의 매번 다른 인생을 연기한다. 앞으로 벌어질 사건들을 알고 있기에 같은 장면을 연기하면서도 미묘한 감정 변화를 표현한다. ‘칸영화제’ 심사위원장이었던 배우 케이트 블란쳇은 그가 출연한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영화 <어느 가족>을 보고 “앞으로 우리가 찍는 영화에 우는 장면이 있다면 그것은 안도 사쿠라를 흉내 냈다고 생각하면 된다”라고 말했다. 그만큼 믿고 볼 수 있는 배우다.
드라마를 보고 나니 완벽한 삶을 사는 주변 사람들이 혹시 진짜로 엔차 인생을 사는 사람들이 아닐까, 하는 의심이 든다. 그런 사람들이 우리같이 ‘이번 생은 처음인 사람들’을 앞서 나가는 것은 당연하니까, 이제 스트레스 받지 말기로 하자. 하지만 오늘 죽는다면 나 역시 ‘큰개미핥기’나 ‘고등어’를 벗어나기 힘들 것 같다. 이런 재밌는 드라마를 추천한 거로 덕이 조금 올라가진 않았을까? ‘갈라파고스 육지거북이’가 될 때까지 더 노력해보겠다.
박상혁 씨제이이엔엠 피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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