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훈 “청약 당첨 받으려 입양…아이들 대상에 가장 분노해”
온라인 동영상 서비스(OTT) <더 글로리>, 티브이 드라마 <모범택시>, 영화 <범죄도시>. 콘텐츠 시장이 어려운 가운데에서도 분야별로 사랑받은 작품을 보면 공통점이 있다. 주인공이 빌런(악당)들을 속 시원하게 응징하는 ‘복수극’이라는 것. 특히 지난 15일 종영한 <모범택시> 시즌2가 티브이 드라마 부진 속에서도 화제를 모으면서 이번주 내내 복수극이 현실에 던지는 의미를 곱씹는 분위기가 이어졌다.
<모범택시>에서 주인공 김도기를 연기한 이제훈은 <한겨레> 인터뷰에서 “시청자들이 그동안 계속해서 벌어졌던 악행과 부조리함의 진실을 밝혀내고 그것에 대한 응징과 해결이 이루어지길 원해서 이런 드라마에 관심을 가져주는 것 같다. 현실에서는 드라마에서 표현하는 것처럼 시원하게 응징하기가 힘들기 때문에 드라마를 통해 대리만족하고 통쾌함을 더 느끼는 것 같다”고 말했다.
가해자를 벌주는 내용은 많았지만, 이들은 법의 테두리를 벗어나더라도 확실하게 끝을 보는 게 다르다. <더 글로리>는 학교폭력(학폭) 피해자 문동은(송혜교)이 시간은 오래 걸렸지만 가해자 모두를 철저하게 무너뜨렸고, <모범택시> 시즌2는 시즌1의 무거움을 덜고 주인공을 더 영웅화해 더 나쁜 악을 상대하는 통쾌한 재미를 더하면서 화제성을 높였다.
이른바 ‘사적 복수’인데도 현실에서 뉴스에서 자주 보던 사건들을 다루면서 거부감을 없앴다. <더 글로리>는 학폭 문제, <모범택시>는 아동 학대와 사이비 종교 단체, 부동산 불법 브로커, 군대 성폭력 피해 사건 등을 꼬집는다. 이제훈은 “현실에서는 법의 테두리 안에서 제대로 심판받지 못한다는 생각에 (사적 복수에) 거부감을 안 느끼시는 것 같다. 이런 드라마들이 인기를 얻는 만큼 앞으로도 알려져야 할 많은 사건들에 관해 관심을 갖고 경각심을 느껴야 할 것 같다. 나아가서는 재발 방지에 대해서도 다룬다면 더욱 의미 있는 작품이 많이 생기게 될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시즌2에서 모든 사건에 다 화가 났지만, (주택청약 당첨 위해 입·파양하는) 5~6화 사건에 가장 분노했다. 조카가 있어서 더 감정이입이 되더라. 아무 것도 모르는 아이들을 대상으로 그런 짓을 했다는 게 아직도 믿기지 않는다”고 말했다.
실제로 이런 드라마들이 시청자들을 현실 속 사건으로 눈을 돌리게 했다. <더 글로리> 이후 학폭 사건에 더 많은 이들이 분노했다. 배우들도 드라마에서 다양한 사건을 접하면서 사회 문제에 관심을 갖게 되는 긍정적인 효과도 나타났다.
이제훈은 “ 배우라는 직업을 갖고부터 항상 주변, 사회 문제에 대해 생각해왔다. 드라마에서 다양한 인물과 사건을 접하면서 사람 자체에 관심을 갖게 됐다. 인물에 대한 호기심은 자연스럽게 인물을 둘러싼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세상 속에서 그 인물은 어떤 영향을 받고, 또 영향을 끼치게 되는지 고민을 하게 했다. <모범택시>는 실제 여러 문제들을 다루다 보니 사회 문제나 심각성에 대해 깊게 생각할 수밖에 없었고 저 자신도 더 경각심을 가지게 된 계기가 된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모범택시>가 시즌제로 성공할 수 있었던 이유도 “아직 다뤄지지 않은 사건도 많다 보니 시청자들이 답답한 속을 풀어줬으면 하는 마음으로 원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사회의 문제와 직접 맞닿아 있는 작품은 배우들의 연기도 중요하다. 송혜교는 <더 글로리>에서 복수를 하면서도 피해자의 아픔을 담아내야 하는 어려운 연기를 해냈다. 이제훈은 동작, 표정 등을 조금 더 크게 하는 등 연기를 바꿨다. 2006년 단편영화로 데뷔해 2012년 <건축학개론>으로 사랑받은 이후 주로 차분하고 정적인 인물을 연기해왔는데, 2021년 <모범택시> 시즌1부터 지난 2월15일 공개한 디즈니플러스 <카지노>까지 강하고 센 배역이 자주 눈에 띈다.
그는 “배우라는 일을 꿈꿨을 때부터 특정 역할보다는 살면서 볼 수 있는 모든 사람, 역할에 대한 관심이 컸다. 캐릭터 자체의 매력에 집중하다 보니 동적인 역할을 보여드린 시기가 겹쳤던 것 같다. 앞으로 굉장히 다양한 모습과 캐릭터로 저라는 사람을 표현하고 싶고, 제가 표현하는 인물이 작품에 잘 녹아들 수 있다면 어떤 도전이라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다. 최근에는 동적인 역할들을 많이 맡았지만 앞으로 나올 작품에서는 정적인 역할도 보여드릴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송혜교가 문동은이 되고, 이제훈이 김도기 같은 인물이 될 수 있었던 것은 드라마 시장의 변화가 영향을 미쳤다. 지상파에서 시즌제 드라마가 자리를 잡고, 오티티, 케이블 할 것 없이 자체 제작물이 늘면서 형식, 장르가 다양해졌다. 그는 “시청자로서 볼거리가 많아지고 배우로서 참여할 기회가 많이 생겨 좋지만, 관심이 일부 작품에만 쏠리는 현상”에는 아쉬움을 표했다. “많은 작품이 어렵게 그리고 귀하게 탄생되는 만큼 더 다양한 작품이 여러분들께 사랑받았으면 좋겠다. 시청자들에게 오래 기억되고 회자될 수 있는 작품이 되려면 창작자들도 더욱 좋은 작품을 만들기 위한 노력과 고민을 계속 해야 할 것이다. 동시에 배우로서도 좋은 퀄리티로 작품을 만들어야 한다는 사명감을 갖고 임하겠다.”
남지은 기자 myviolle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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