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주의, 자본주의, 그리고 테트리스···애플TV플러스 ‘테트리스’[오마주]
‘오마주’는 주말에 볼 만한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콘텐츠를 추천하는 코너입니다. 매주 토요일 오전 찾아옵니다.
게임 테트리스 개발에 얽힌 루머를 오래전에 들은 적이 있습니다. ‘소련 당국이 미국 대학생의 공부를 방해하기 위해 테트리스를 개발했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다소 어처구니없는 이야기지만, 이 루머는 테트리스가 얼마나 재미있는 게임인지를 방증합니다.
애플TV플러스에서 지난달 공개한 영화 <테트리스>는 테트리스 개발에 얽힌 뒷이야기, 이 게임을 서구에 소개하려는 게임 세일즈맨들의 다툼을 그립니다. 미국의 게임 세일즈맨 행크 로저스(테런 에저턴)는 게임 박람회에서 테트리스를 본 뒤 홀딱 빠집니다. 로저스는 테트리스를 서구에 판매하기 위해 라이선스를 구하려 합니다. 첫 번째 문제는 테트리스의 흥행 가능성을 알아본 사람이 로저스만은 아니었다는 점이죠. 중소 게임 유통업자, 대형 언론사를 등에 업은 게임사 등이 모두 테트리스를 얻기 위해 달려듭니다.
두 번째 문제는 이 게임의 제작국가가 1980년대 후반의 소련이었다는 점입니다. 테트리스의 판매 권리는 재미 삼아 테트리스를 만들었던 개발자 알렉세이 파지노프가 아니라 정부에 귀속돼 있었습니다. 자본주의적 계약에 익숙지 않은 국영기관 경영자 니콜라이 벨리코프와의 협상은 좀처럼 진척되지 않습니다. 게다가 고르바초프가 최고지도자였던 당시 소련은 붕괴 직전에 놓여있었습니다. 사회주의 시스템의 몰락을 예견한 약삭빠른 관료들은 테트리스를 판매한 돈을 개인적으로 착복할 궁리를 합니다.
당시 한국에서 소련은 ‘철의 장막’이라 불렸습니다. 공산주의 사상에 철저하게 세뇌된 음흉하고 전제적인 인간들의 나라로 여겨졌습니다. 사람 사는 곳이 그렇게 단순할 리가 없습니다. <테트리스> 초반부 소련 이미지 역시 단순해 보이지만, 갈수록 다채로운 사람들의 모습이 나타납니다. 그래픽 카드도 없는 컴퓨터로 테트리스를 개발한 파지노프는 ‘천재’라는 수식이 아깝지 않은 개발자입니다. 단순하면서도 중독성 있는 테트리스를 개발해 당대와 이후의 게이머들을 사로잡았습니다. 영화에서 그는 조국에 대한 애정을 간직하면서도, 좀 다 자유로운 삶에 대한 열망이 있는 인간으로 묘사됩니다. 벨리코프는 서구 게임사 사람들과의 협상에서 고압적 태도를 보이는 사회주의 관료처럼 보이지만, 사실 사회주의 조국에 조금이라도 더 많은 이윤을 돌아가게 하려고 노력하는 애국자에 가깝습니다. 테트리스를 얻기 위해 소련에 날아온 자본주의자들의 모습도 각기 다릅니다. 누군가는 공정한 방식으로 경쟁하려 하지만, 누군가는 뇌물이나 인맥을 동원해 이기려 합니다. 그 사이 테트리스, 그리고 그것을 개발한 이에 대한 애정과 존경을 가진 주인공 로저스는 개발자 파지노프와 이념을 넘은 우정을 쌓아갑니다.
실화에 바탕을 둔 영화입니다. 테트리스 라이선스를 얻기 위한 치열한 경쟁에 자동차 추격전까지 벌어지는 후반부는 마치 냉전을 배경으로 한 스파이 스릴러처럼 구성됐습니다. ‘LEVEL1’ “PLAYER1‘ 등의 타이틀로 고전 8비트 게임의 인터페이스를 흉내 내기도 했습니다. 개인용 컴퓨터(PC), 콘솔 게임, 휴대용 게임, 오락실용 아케이드 게임이 각기 다르게 번성을 시작하던 시기의 게임 산업 풍경도 엿볼 수 있습니다.
노스탤지어 지수 ★★★★ 80년대 고전 게임의 향수
철의 장막 지수 ★★★ 붕괴 직전 소련의 풍경
백승찬 기자 myungworry@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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