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기 개똥 치우셔야죠” [반려인의 오후]
개가 떠나기 몇 주 전의 일이다. 평소처럼 개를 안고 동네를 한 바퀴 돌고 있었다. 개는 제 발로 걷진 못했지만 그렇게 안겨서라도 바람 쐬는 걸 좋아했다. 집에 누워 있을 땐 내내 앓는 소리를 내는 것 말고는 의사 표현이 흐릿해진 상태였지만 밖에 나오면 킁킁거리는 숨결이 품안에서 느껴졌다. 공원에 가서 앙상한 백일홍 나무를 바라보며 여름에 거기 얼마나 아름다운 꽃이 필지 이야기하고, 동백나무 잎 사이로 붉은 꽃에 부리를 박고 꿀을 먹는 동박새들을 구경했다. 빵집에 들어가진 못했지만 괜히 그 앞을 서성이며 빵 냄새를 맡았다. 버스 정류장에 앉아 있다가 개가 왜 이렇게 힘이 없는지 궁금해하는 어린이와 대화를 나눴다.
아파트 단지를 크게 돌아 집으로 향하던 때였다. 이차선 도로 건너편에서 중년 여성이 복실복실 작은 개를 산책시키고 있었다. 종종거리는 개의 발걸음이 느릿느릿 걷고 있는 보호자의 뒤를 쫓기 바빴다. 아파트 단지 안에서 자란 잔디가 울타리 아래로 인도까지 아무렇게나 뻗어 있었다. 개가 그 위로 올라가 뱅글뱅글 돌더니 이내 볼일을 보았다. 순간 불길한 예감이 스쳤다. 오랜 개 산책가의 눈에만 보일 수상한 동작을 보호자에게서 발견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일 보는 강아지를 주시해야 할 보호자가 잠깐이지만 시선을 멀리 돌리는 것처럼 보였다. 아니나 다를까, 보호자는 아무 일 없었다는 듯 다시 천천히 걷기 시작했고 개가 쫄랑쫄랑 그 뒤를 따랐다. “저기, 개똥 치우셔야죠.” 생각하기 전에 말이 먼저 나왔다. “앗, 네! 그래야 되는데….” 보호자는 화들짝 되돌아서면서 작은 손가방을 뒤적였다. 똥을 주울 만한 봉투나 휴지가 없는 것 같았다. 마침 뒤에서 걸어오던 행인이 그에게 뭐라 말을 걸더니 가방을 열어 휴지를 꺼냈다. 그걸 건네받은 보호자가 개똥을 주웠다. “똥 봉투 없으시면 제가 드릴까요?” 내가 길을 건너 다가가서 물었다. “괜찮아요, 집 바로 요기예요. 이걸로 갖다 버릴게요!”
보호자가 한 손엔 똥 휴지, 다른 한 손엔 개를 들고 아파트 단지 입구 쪽으로 서둘러 돌아서는 걸 보고 나도 다시 길을 건너 집 쪽으로 향했다. 초등학생 여럿이 스쳐 지나갔다. “선생님 안녕하세요?” “어어, 응, 안녕?” 등 뒤에서 인사를 주고받는 소리가 들렸다. 방금 들었던 목소리였다. 돌아서 보니 등에 악기 가방을 멘 초등학생이 보였다. 개를 안은 보호자는 아파트 단지 안으로 들어서서 멀어지고 있었다. “저분이 선생님이셔?” “네, 저희 선생님이에요.” “어어어, 어디 선생님이신데?” “작년에 2학년 담임 선생님이셨어요.”
모범을 보여야 할 초등학교 선생님이 어떻게 도시 한복판에서 개똥을 유기할 수 있는가. 그런 말을 하려는 건 아니고 오히려 좀 그 반대쪽으로 복잡미묘한 기분이 들었다. 개똥을 주워야 한다는 건 분명 그도 알고 있었을 것이다. 똥 봉투가 다 떨어졌고, 새로 가지고 나오는 걸 깜빡했을 것이다. 개는 손가락 한두 마디만 한 작은 똥을 쌌을 것이고, 더부룩하게 자란 풀 속에서 그건 금세 자연으로 돌아갈 것이었다. 마음에 걸리지만 이번에만 그냥 가자, 생각했을 것이다. 운 나쁘게도 하필 그 순간 개똥 문제에 민감한 행인에게 목격되고, 연달아 자신이 가르쳤던 학생을 만나는 바람에 자신의 잘못이 그토록 적나라한 방식으로 드러나게 될 줄은 몰랐을 것이다. 애초에 개똥을 유기하지 않았으면 생기지 않았을 일이니 당해도 싸다고 하기엔 그가 받은 벌이 너무 과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황급히 집으로 향하는 뒷모습이 부끄러움으로 가득한 것처럼 느껴졌다. 상습 개똥 유기범이라고 생각하면 마음이 편할 것 같았지만 어쩐지 그의 태도나 말투가 자꾸만 나를 괴롭혔다. 그래서 말인데 혹시 이 글을 보고 계신다면, 그땐 너무 무안하게 만들어 죄송했습니다, 선생님.
정우열 (만화가·일러스트레이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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