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년 만에 열린 재심, 10분 만에 끝낸 검찰의 불성실 [세상에 이런 법이]

최정규 2023. 4. 22. 07: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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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수성이 예민한 사춘기 자녀를 둔 부모들은 늘 노심초사한다.

정치인 한 명의 재판에 수사 검사들이 우르르 몰려가 70분 동안 공소장 전체를 읽는 '불필요한 열심'을 보이면서도, 51년 만에 열린 32명 납북귀환 어부들의 재심 재판은 준비 부족으로 헛걸음시킨 불성실한 검찰의 모습은 질풍노도 사춘기 아들을 보는 것만큼이나 당황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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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이런 법이 어딨어.” 우리가 자주 하고 듣는 말. 네, 그런 법은 많습니다. 변호사들이 민형사 사건 등 법 세계를 통해 우리 사회 자화상을 담아냅니다.

감수성이 예민한 사춘기 자녀를 둔 부모들은 늘 노심초사한다. 무심코 던진 말에 상처받았다며 아빠의 말 한마디에 평소와 달리 반응하는 사춘기 아들과 요즘 날마다 부딪치다 보니, 나 또한 ‘오춘기’를 맞이하는 것 같은 힘든 일상이다. 그러나 이 질풍노도의 시기를 통해 풍부한 감수성이 함양되기를 바라는 게 부모 마음일 것이다.

외부 세계의 자극을 받아들이고 느끼는 성질, 바로 감수성은 감각을 뛰어넘은 능력의 문제다. 개인의 문제를 뛰어넘어 조직의 문제이기도 하다. 그 어떤 정치권력으로부터 독립하여 시민의 인권 보호를 위해 공익 대표자 역할을 수행하도록 고안된 검찰 조직의 성공 여부는 조직 구성원인 검사가 어떤 감수성을 지녔느냐에 달려 있을 것이다.

재심 첫 재판이 열린 3월31일, 납북귀환 어부 피해자들과 유가족들은 검찰의 무성의한 재판 준비를 규탄했다. ⓒ연합뉴스

3월31일, 춘천지방법원에서 납북귀환 어부 32명의 재심 첫 재판이 51년 만에 열렸다. 북한 쾌속정에 납치되어 끌려가 억류된 후 귀환한 어부들에게 간첩이라는 주홍 글씨를 새긴 건 바로 검찰이다. 해경과 해군의 구조 실패로 뒤숭숭한 여론을 잠재우기 위해 대검 공안부는 반공법과 국가보안법을 적용하여 법정 최고형인 사형까지 구형하라고 일선 검찰에 지시했고 검사들은 일사불란하게 그 지시에 복종했다.

북한에 억류된 뒤 수년 동안 귀환을 학수고대했던 가족들의 품에 안기지도 못한 채, 속초시청 앞 여관에 꾸려진 차디찬 조사실에 불법으로 구금되었다. 다행히 이곳에서 취조받은 사실이 뒤늦게 밝혀져 지난해 11월7일 법원은 재심개시 결정을 내렸다. 이들 중 12명은 이미 세상을 떠났지만, 올해 93세인 김영택씨는 살아생전 이 주홍 글씨가 지워지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딸의 부축을 받으며 강원도 고성에서 춘천까지 먼 길을 달려왔다.

재판 연기 요청한 공판 검사

김영택씨 등 당사자 20명, 그리고 유가족들은 51년 전 주홍 글씨를 새겼던 검사와 달리 무죄를 구형하고 주홍 글씨를 지워줄 ‘공익의 대표자’ 검사를 만날 것을 기대했다. 그러나 이날 재판에 참석한 공판 검사는 검찰의 입장이 아직 정리되지 않았다며 재판 연기를 요청했다. 51년 만에 열린 재심 첫 공판은 그렇게 10분 만에 끝나버렸다. 당사자와 유족들은 춘천지검 앞에서 울분을 토했다.

지난 3월3일,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의 공직선거법 위반 첫 재판이 열렸다. 공소사실의 요지만 간략히 설명하는 통상적인 재판 절차와 달리 이날 검찰은 출석한 검사들이 돌아가면서 1시간10분에 걸쳐 공소사실 전체 내용을 낭독했고, 재판부는 “공소장을 다 읽으셨네요”라며 웃음을 보이기도 했다고 한다.

정치인 한 명의 재판에 수사 검사들이 우르르 몰려가 70분 동안 공소장 전체를 읽는 ‘불필요한 열심’을 보이면서도, 51년 만에 열린 32명 납북귀환 어부들의 재심 재판은 준비 부족으로 헛걸음시킨 불성실한 검찰의 모습은 질풍노도 사춘기 아들을 보는 것만큼이나 당황스럽다. 사춘기 자녀의 감수성 함양을 바라는 부모의 마음으로 시민들은 줄곧 검찰의 인권 감수성이 함양되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다.

이원석 검찰총장은 지난해 9월 취임사에서 ‘호시우행(虎視牛行)’을 언급하며 “우리의 진솔한 노력과 정성을 차곡차곡 쌓아 올리면, 언젠가는 값진 결과로 돌아와 국민이 헤아려줄 것이라고 믿는다”라고 말했다. 그 진솔한 노력과 정성을 납북귀환 어부 등 힘없고 소외된 사람들을 돌보는 일에 더 쏟아붓기를 간절히 촉구한다.

최정규 (변호사·⟨얼굴 없는 검사들⟩ 저자)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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