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 먹거리 산업은 뭐?....합성생물학[뉴트리노의 생활 과학]
‘합성 생물학(Synthetic Biology)’이 21세기 산업의 혁신 주자로 떠오르고 있다. 전통 생물학에 정보통신기술(ICT)을 결합해 DNA와 단백질 같은 생명체의 분자를 전자처럼 비트(bit) 단위로 읽고 쓰는 최신 생물학을 말한다.
20년 전 인간의 DNA 염기서열을 모두 파악한 휴먼 게놈 프로젝트가 생명 정보를 ‘읽는’ 기술이었다면, 합성 생물학은 생명 정보인 DNA를 컴퓨터 코딩처럼 내 맘대로 고쳐 편집하거나 새로 창작하는 ‘쓰기’ 기술이다. 생명을 합성한다는 부정적 어감 때문에 요즘은 ‘생명 공학(Engineering Biology)’으로 바꿔 부르기도 한다. 기계·전자·화학적 공학 연구방법과 기술을 전통 생물학에 접목한 신생 학문이다. 공학은 산업화를 염두에 둔 응용과학이다. 살아있는 유기체를 대상으로 엄격하게 통제된 실험실과 현장 환경에서 주로 관찰과 통계적 처리에 주력하던 전통 생물학에 정보통신기술(ICT)이 결합하면서 설계·부품·조립 같은 도구적 엔지니어링 기법을 자유자재로 활용할 수 있게 됐다.
이로 인해 기존에는 불가능하다고 여겼던 인공생명체 제작을 포함해 비료를 주지 않아도 스스로 해충을 물리치며 잘 자라는 곡물, 대장균·효모 미생물 공장에서 비싼 의료용 호르몬이나 항생제를 생산하는 유전자 편집, 대기 중 이산화탄소 포집을 생화학적 방법으로 화석연료 소비 없이 달성하는 친환경기술 등 인류 난제를 극복하는 해결사로 각광받고 있다.
생물학에 공학이 접목된 생명 공학 기술(Biotechnology, BT)도 크게 업종별로 레드·화이트·그린으로 분류된다. 레드 바이오는 의료·제약, 화이트 바이오는 환경·에너지, 그린 바이오는 농업·식품 분야를 각각 의미한다. 세포 및 항체 치료제 등 바이오 의약품을 개발하는 디지털 헬스케어나 디지털 웰니스는 주로 레드 바이오 분야의 신규 사업군이다. 기후변화 대처와 지구환경 보존, 청정 에너지 발굴은 화이트 바이오, 합성육·대체육 같은 친환경 식품과 식물공장 개발은 그린 바이오의 영역에 속한다. 이로 인해 무궁무진한 신규 산업의 출현이 기대되고 있다. 글로벌 합성 생물학 시장은 2020년 103억 달러에서 2030년 1255억 달러로 연평균 28.4% 성장이 예상된다. 현재 화학 산업의 50%가 2050년 바이오 화학으로 대체될 것이라는 예측까지 나왔다. 바이오 산업을 넘어 다른 연관 산업에도 큰 영향을 미치는 ‘게임 체인저’가 될 것이란 전망이다.
가장 쉬운 예는 코로나 팬데믹을 단기간에 종식 시킨 신종 코로나 백신이다. 과거 10년 이상 걸리던 백신 개발과 대량생산 기간이 1년으로 단축됐다. 모더나의 mRNA 백신은 전통적인 백신과는 전혀 다른 기술로 만들어졌다. 생(生)백신, 사(死)백신으로 불리던 과거 백신은 바이러스를 약화하거나 죽여서 몸에 접종했다. 하지만 모더나 백신은 단백질 합성 설계도 DNA의 복사본인 mRNA를 인공 합성했다. 코로나 바이러스의 스파이크 단백질을 합성하는 mRNA 백신은 접종 후 몸 안에서 항원을 만들고 인체 면역체계가 방어 항체를 생성해 물리칠 수 있게 한 것이다. 실험실 차원의 소량 개발뿐 아니라 바이오 파운드리를 통해 신속하게 전 세계로 백신을 공급한 점도 혁신이다. 파운드리는 반도체 위탁 제조공장에서 나온 개념으로, 바이오 파운드리는 설계 전문벤처가 만든 분자 화합물을 인공지능(AI)과 로봇공학 기술을 이용해 빠르게 대량 생산할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한국생물공학회가 지난 12~14일 제주 국제컨벤션센터에서 국내외 석학과 BT 업계 종사자 등 산·학·연·관 관계자 2500여 명이 참가한 ‘2023년 춘계학술대회 및 국제심포지엄’을 개최했다. 생물공학회는 1984년 설립된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소관 국내 바이오 분야의 대표 학술단체이다. 이상엽 한국생물공학회장은 개회사에서 “감염병, 기후위기, 노령화 등 인류 난제를 푸는 게 생명공학의 지향점”이라며 “심포지엄을 통해 많은 이들이 생물공학의 현재와 미래를 고민하는 시간이 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이번 대회에는 코로나 mRNA 백신 개발의 주역 로버트 랭어 MIT 교수, 국제학술지 ‘네이처 마이크로바이올로지’ 수전 존스 편집장 등 거물들의 기조강연 등 눈길을 끄는 학술행사뿐 아니라 BT 분야에 진출한 삼성바이오에피스, GS칼텍스, LG화학, CJ제일제당 등 대·중소기업들의 전시 부스들도 다수 문을 열어 연구·개발(R&D)과 산업화를 연계하는 상호 정보·기술 탐색, 교환의 장이 마련됐다. 특히 최근 교수로 임용된 8명의 국내 소장 과학자들이 생체전자공학(bioelectronics), 표적 치료, 암 백신 등 다양한 주제를 놓고 자신의 현재 연구를 소개하는 신진연구자 포럼도 열려 주목을 받았다.
한편, 행사 폐막일 마지막 기조 강연자로 나선 김진수 싱가포르국립대 초빙교수는 현재 세포 핵 편집을 넘어 미토콘드리아 등 세포소기관의 유전자 편집은 유전자변형작물(GMO) 규제를 받지 않아 경쟁력 있는 기술이라고 소개했다. 또 식물의 엽록체도 유전자 가위로 편집해 광합성을 조정할 수 있다면 탄소 저감 대안 기술이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김 교수는 제도 개혁과 관련, “과학자가 연쇄 창업할 수 있도록 뒷받침하는 정책과 벤처캐피털 금융 환경이 조성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기초과학연구원(IBS) 유전체교정연구단장으로 근무하다가 자신이 창업한 벤처 ‘툴젠’에 대한 유전자 교정 가위 특허기술 이전 소송으로 사임한 뒤 미토콘드리아 질환 치료 스타트업 ‘엣진’, 엽록체 교정 벤처 ‘그린진’, 혈액 배양 업체 ‘레드진’ 등 잇따라 창업에 도전한 바 있다.
우리나라는 지난해 윤석열 정부가 출범하면서 12대 국가 전략기술 중 하나로 ‘첨단 바이오’를 선정하고 중점 기술로 합성 생물학의 육성을 발표했지만 선진국과 달리 아직 눈에 띄는 유망 기업들이 출현하지 않고 있다. 행사에 참석한 국내외 연구자와 산업 종사자들은 “합성 생물학의 발전에는 막대한 투자 자금과 오랜 연구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에 정부가 스타트업의 창업 초기부터 자금 회수 중간 단계, 최종 시장 진입 단계까지 체계적인 정책과 시설 지원에 힘을 쏟아야 한다”고 목소리를 모았다.
노성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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