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만원에 '고철 포르쉐' 산 대학생…"대형사고 쳤다" [백수전의 '테슬람이 간다']
(2) 전기차의 마법사
스트라우벨, 10대부터 골프카트 조립한 영재
스탠퍼드대 시절 포르쉐 개조, 전기차대회 우승
테슬라 입사 후 모델S 등 제작… 머스크 '탄복'
'다임러 스마트' 6주간 밤새워 전기차로 개조
비웃던 벤츠 임원들 타보더니 "5000만弗 투자"
“어서 속도를 높여봐요! 어, 어?!”
2006년 7월 미국 캘리포니아 샌타모니카 공항 격납고. 350명이 모인 자리에 조촐한 행사가 열렸습니다. 이들은 화제의 젊은 사업가 일론 머스크의 테슬라모터스가 세계 최초의 전기 스포츠카 ‘로드스터’를 공개한다며 초대를 받았습니다. 그 중엔 영화 ‘터미네이터’의 주인공인 아널드 슈워제네거 캘리포니아 주지사도 있었습니다.
검은색의 매끈한 2인승 자동차가 등장하자 사람들의 눈이 휘둥그레졌습니다. 로드스터의 디자인은 포르쉐나 BMW 같은 고급 내연기관 스포츠카와 다를 바 없이 수려했습니다. 슈워제네거를 옆좌석에 태운 로드스터는 천천히 격납고 밖으로 나왔습니다. 관객 중 누군가가 어서 달려보라고 소리쳤습니다.
활주로로 나온 운전자는 액셀러레이터를 힘껏 밟았습니다. 전기차 모터에서 우주선에서 나올 것 같은 굉음이 터졌습니다. 순식간에 얕은 먼지구름과 타이어 소리만 남긴 채 차는 사람들 시야에서 완전히 사라졌습니다. 날아갈 듯 무서운 속도에 사람들은 순간 얼어붙었고, 곧바로 환호성이 터져 나왔습니다.
함박웃음을 짓는 주지사 옆에서 운전자는 그제야 안도의 표정을 지었습니다. 그는 이 전기차의 파워트레인과 배터리 개발을 주도한 엔지니어였습니다. ‘테슬라의 영혼이자 2인자’로 불렸던 JB 스트라우벨 공동 창업자 겸 전 최고기술책임자(CTO)입니다. 2019년 회사를 떠난 그는 오는 5월 테슬라 연례 주주총회에서 사외이사로 복귀할 예정입니다.
전기차 제작의 천재
스트라우벨은 1975년생으로 ‘명문’ 스탠퍼드 공대 석사 출신입니다. 그는 고교 시절부터 전기 골프 카트를 분해하고 배터리 실험을 했습니다. 스탠퍼드대에선 태양광 전기자동차 연구팀에서 ‘맏형’으로 활동합니다. 이 학생들은 스트라우벨의 집에 모여 밤늦게까지 전기차와 배터리 이야기에 꽃을 피웠습니다. 요즘 말로 연구밖에 모르는 ‘공대 너드남’이었던 셈입니다.
그는 특히 리튬이온 배터리에 관심이 많았습니다. 노트북 등에 들어가는 소형 배터리를 수천 개 연결해 전기차에 장착하면 주행거리를 획기적으로 늘릴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스트라우벨은 기존 자동차를 전기차로 재탄생시키는 데 탁월한 재주가 있었습니다. 그는 고철 수준의 1984년형 포르쉐 944를 1600달러에 사들여 전기차로 개조했습니다. 400m를 17.28초에 주파할 정도로 빨랐지만, 한 번 충전에 48㎞밖에 달리지 못했습니다. “그 차는 적은 돈으로 빠르게 속도를 낼 수 있었지만, 배터리가 엉망이었어요. 그때 전기차의 한계를 깨달았습니다” 당시 지역 전기차 경주대회에 출전한 스트라우벨의 포르쉐 개조 전기차는 테슬라의 첫 최고경영자(CEO)였던 마틴 에버하드까지 눈여겨봤습니다.
2004년 스트라우벨은 전도유망한 사업가 일론 머스크의 권유로 ‘전기차 스타트업’ 테슬라에 합류합니다. 그가 맡은 업무는 테슬라의 첫 모델인 로드스터의 파워트레인 개발이었습니다. 당시 테슬라는 영국 로터스의 스포츠카 ‘엘리스’를 개조해 시제품 차량을 만들고 투자받을 계획이었습니다. 스트라우벨은 스탠퍼드 친구들을 모아 팀을 꾸렸고, 넉 달 만에 완전히 새로운 차량을 만들어 냈습니다. 이 전기차에 감탄한 머스크는 추가로 900만달러(약 120억원)를 대고 테슬라 투자 유치에 본격적으로 나섭니다.
“왜 차를 못 만들게 하는 거야!”
“테슬라모터스(테슬라 초기 사명)의 초기 제품은 고성능 전기 스포츠카지만 장기 계획은 저렴한 가격의 가족용 자동차를 포함해 광범위한 모델을 만드는 것이다”
- 2006년 8월, 『테슬라모터스 비밀 마스터플랜』 중
디트로이트팀은 ‘자동차 문외한’들을 무시했고, 스트라우벨팀은 보수적인 디트로이트팀에 불만이 팽배했습니다. 두 팀은 모델S의 시제품 크기부터 격론을 벌였습니다. 참다못한 스트라우벨은 몰래 팀원들을 불러 시제품을 만들기 시작합니다. “나는 얼른 가서 자동차를 만들고 싶은데, 다들 왜 이러는지 알 수가 없었습니다”
그는 메르세데스벤츠의 쿠페형 세단 CLS가 모델S의 적절한 기준이라고 판단했습니다. CLS의 엔진 등 파워트레인을 들어내고 전기차로 개조했습니다. 로드스터와 달리 최고급 차에 걸맞은 서스펜션과 승차감을 살리기 위해 세팅에 심혈을 기울였습니다. 과연 ‘전기차의 마법사’다웠습니다. 모델S 시제품은 대형 세단인데도 스포츠카에 맞먹는 가속력에 승차감마저 편안했습니다.
이 차를 타본 머스크는 좋아서 어쩔 줄을 몰랐습니다. “이거야말로 모델S의 바람직한 자태야” 감탄하는 머스크에게 스트라우벨은 자신 있게 말했습니다. “사람들이 이 차를 타보면 세상이 완전히 달라질 겁니다”(팀 히긴스 『테슬라 전기차 전쟁의 설계자』)
머스크 “JB, 자네 솜씨 좀 보여줘”
스트라우벨의 존재는 머스크에게 천군만마와도 같았습니다. 2007년 9월 머스크는 투자 유치를 위해 독일로 향합니다. 다임러(작년 메르세데스벤츠 그룹으로 사명 변경)가 만든 2인승 미니카 ‘스마트’에 테슬라의 배터리팩과 부품을 공급하는 협상 건이었습니다. 당시 다임러는 이 차를 전기차로 출시할 생각이었습니다. 그러나 현지에서 만난 임원들은 머스크의 프레젠테이션(PT)에 시큰둥해했습니다. 고작 전기차 스타트업의 기술을 신뢰할 수 없다는 게 이유였습니다.
다급해진 머스크는 스트라우벨을 불렀습니다. 스마트를 전기차로 개조해 다임러 임원들에게 ‘깜짝 PT’를 하겠다는 생각이었습니다. “6주 후에 다임러 임원들이 오니 JB 자네가 솜씨를 좀 보여주게”
3년을 함께 일하며 성마른 보스의 성격을 완벽히 파악한 스트라우벨은 즉시 팀을 소집했습니다. 그러나 처음부터 벽에 부딪혔습니다. 당시 미국에서 다임러 스마트를 구할 수조차 없었던 겁니다. 수소문 끝에 이 차가 멕시코 북서부 지역의 대리점에 딱 한 대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습니다. “그 차가 다른 데 팔리면 우린 끝장이야” 스트라우벨은 2만달러가 든 현금 가방을 들고 멕시코 국경지대로 달려가야 했습니다.
간신히 스마트를 구했지만 조그만 차량에 테슬라의 배터리, 모터, 전자부품 등을 장착하는 게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시간이 너무나도 모자랐습니다. 아예 공장 바닥에 작업실을 차렸고 팀원들이 쪽잠을 자며 하루 24시간 내내 일했어요. 그야말로 전쟁을 치르는 기분이었습니다” (찰스 모리스 『테슬라모터스』)
콧대 높던 벤츠 임원들 타보더니 …
2008년 1월 캘리포니아 테슬라 본사에 다임러 임원들이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이들은 머스크의 지루한 PT를 또 들어야 한다는 생각에 얼굴이 잔뜩 굳어있었습니다. 머스크는 보여줄 게 있다며 이들을 차고로 안내했습니다. 그곳엔 다임러의 스마트와 똑같이 생긴 또 다른 스마트가 서 있었습니다. 스트라우벨이 6주간 밤새워 만든 개조 차량이었습니다.
다임러 부사장이 그 차에 올라 핸들을 잡고 달려 나갔습니다. 15분 후에 돌아온 그는 함박웃음을 짓고 있었습니다. 전기모터의 엄청난 순간 토크에 감탄한 겁니다. “그 스마트는 빨라도 너무 빨랐습니다. 주차장에서 곡예 주행이 가능할 정도였어요” 그제야 다들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이후 테슬라는 다임러에 7000만달러(약 930억원) 규모의 배터리를 공급한다는 계약을 체결합니다.
이어 2009년 다임러는 테슬라에 5000만달러(약 664억원)를 투자하고 지분 10%를 확보합니다. 이 투자 건으로 자금난에 생사를 오가던 테슬라는 겨우 목숨을 부지했습니다. ‘전기차의 마법사’가 또 한 번 빛을 발한 순간이었습니다.
→ 3편에 계속
▶‘테슬람이 간다’는
2020년대 ‘모빌리티 혁명’을 이끌어갈 테슬라의 뒷이야기를 풀어갑니다. 최고의 ‘비저너리 CEO’로 평가받는 일론 머스크도 큰 탐구 대상입니다. 국내외 테슬라 유튜버 및 트위터 사용자들의 소식과 이슈에 대해 소개합니다. 아래 기자 페이지를 구독하면 매주 기사를 받아볼 수 있습니다.
백수전 기자 jerry@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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