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신 피해보상 여야 합치 법안, 도출 직전 '멈칫'..."정부 '돈' 걱정에"

이승륜 기자 2023. 4. 22. 06: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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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신 리포트 시즌2 <15>
여야·각계 합치 노력…합의안 도출 실패
요구 축소에도… “보상 규모 커진다” 난색
“사회·규범적 판단” 요구…질병청 용역 연구 뒷받침
‘포괄적 보상’ 꺼리는 속내…비난 여론 확산

정치권이 여야 합치로 코로나19 백신 피해자의 포괄적 보상을 위해 마련한 법안이 최종 조율 단계에 이르렀으나 정부의 강경한 입장에 막혀 돌파구를 찾지 못하고 있다. 백신 접종과 질병 간 인과성 인정 수준을 완화하는 규정을 두고 질병관리청과 관계 부처가 “포괄적 보상은 어렵다”며 난색을 보였기 때문이다. 이에 피해자와 가족은 “질병청이 적극적 피해 구제 약속을 어기고 무책임한 행정을 하고 있다”며 실망을 감추지 못한다.

▮여야·각계 합치 노력…합의안 도출 실패

22일 정치권과 백신 피해자단체 등에 따르면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여당 간사인 강기윤 의원실에서 오는 26일 보건복지위 법안심사소위원회에 백신 피해자 보상 지원을 위한 법안을 상정하려 했으나 쉽지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앞서 백신 피해자와 가족들은 보건복지위 소속 의원들에게 여야 의원들이 합심해 백신 피해의 포괄적 인정을 지원하는 법안을 마련해달라고 요청했다. 그 결과 의원별로 10건이 넘는 법안이 나왔으나 하나의 통일된 법안이 없다 보니, 관련 논의를 하는 데 어려움이 있었다. 이에 보건복지위는 질병청에 피해자 요구와 정부 입장을 조율한 조정안을 내놓으라고 요구했지만, 이 역시 부진해지자 상임위 차원에서 조정안을 만들기로 했다. 정춘숙 보건복지위원장이 여야 간사에게 서로 만나 관련 논의를 해달라고 요청했고, 해당 의원실 실무진이 질병청 등 정부 부처와 피해자 단체와 만나 조율 안을 만들고 고치기를 여러 차례 했다. 한 의원실 관계자는 “기준이 되는 조정안이 있으면, 거기에서 빼고 넣고 가야 하는데 그게 아니고 전체 법안 10여 개를 놓고 이야기하다 보니, 의원들이 각자 자기 이야기만 하는 면이 있었다”고 상황을 설명했다.

계획대로면 강 의원실은 야당 간사인 강훈식(더불어민주당) 의원실과 협의해 지난 20일 질병청과 피해자 단체 등의 입장이 조율된 최종안을 도출할 계획이었다. 하지만 이날도 질병청과 피해자 양측이 인과성 인정 방식과 보상 범위를 규정한 조항을 두고 의견이 갈리면서 최종안이 도출되지 못했다고 한다.

지난 8일 서울 청계광장 코백회 분향소에서 열린 제48회 백신 희생자 추모 및 특별법 제정 촉구 집회에 참가한 유족이 오열하고 있다. 코백회 제공


▮요구 축소… “보상 규모 커진다” 난색

조율 법안 내용 중 문제가 된 조항은 보상 조건으로 ‘대통령으로 정하는 바에 따라 제1호의 코로나19 백신 접종과 제2호의 질병 간에 ‘역학적 상관관계’가 있음이 확인되면‘이라고 명시한 부분이다.

피해자와 전문가들은 “통상 질병과 접종 간 ‘역학적 상관 관계’를 정의하는데 1년이 넘는 시간이 걸린다”며 “이렇게 되면 백신안정성위원회에서 인정한 사례만 인정하겠다는 이야기가 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백신안정성위원회는 백신 접종 이후 발생한 이상반응의 백신과 인과성 평가 근거를 검토하기 위해 2021년 출범했다. EMA나 FDA 등 해외 기관이 인과성을 인정한 질환이 국내 접종자에게 나타나는 빈도를 연구하는 안전성위원회의 연구 방식에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 나왔다. 전문가들은 “백신접종 이후 발생 빈도가 높거나 증가하지 않는다고 해서 특정 질병이 백신과 인과성이 없다는 것을 입증하는 것은 아니다”며 안전성위원회의 연구 결과나 방식에 문제 제기를 했다. 이에 피해자들은 자칫 역학적 상관 관계가 확인되지 않은 사례에 대한 규정이 현 안정성위원회가 인과관계를 인정하지 않는 사례를 피해 보상 대상으로 인정하지 않는 근거가 될 수 있다고 봤다.

이처럼 논란의 여지가 있는 조항이 조율 안에 담긴 것은 인과성 입증 책임 주체와 피해 보상 규모를 두고 질병청이 기존의 보수적 입장을 고수했기 때문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애초 강 의원실에서는 질병청이 백신 접종 이후 사망자가 부작용이 아니라 다른 병 때문에 숨졌다는 것을 입증하지 못하면 보상하는 것을 핵심으로 한 ‘입증 책임 전환’ 조항을 법안에 넣으려 했다. 하지만 정부 측은 입증에 물리적으로 한계가 있다며 난색을 표했다. 또 백신 접종 이후 사망자의 백신과 관계를 입증하지 못한 사례의 모든 보상을 정부가 떠안으면 혼란이 생길 것이라는 우려도 나왔다.

이에 백신 피해자 단체와 전문가들은 대법원 판례를 참고해 ‘사망이나 질병 등이 원인 불명이거나 예방접종이 아닌 다른 원인에 의해 발생한 것이 아닌 경우’ 보상하는 대체 조항을 제시했다. 종전의 ‘입증 책임 전환’ 조항보다 보상 대상과 규모가 더 작아진 것이다. 하지만 질병청은 이 역시 “보상 범위와 규모가 커진다”며 “수용 불가” 입장을 밝혔다고 한다. 그러자 강 의원실에서 ‘역학적 상관관계만 있으면 인과관계가 있는 것으로 보자’는 조항을 법안에 넣은 것이다. 다만, 인과성이 불명확하더라도 인과관계가 없다고 단정하지 말고 대통령령이 정하는 경우 보상해주자는 쪽으로 정부 부처를 설득할 예정이었다고 한다. 하지만 피해자들이 해당 조항의 위험성에 대해 우려를 표했고, 의원실은 이를 수용해 다시 피해자와 질병청·여야 실무진 등이 모여 의견을 모은 뒤 다음달까지 최종안을 마련하기로 했다.

지난 8일 서울 청계광장 코백회 분향소에서 열린 제48회 백신 희생자 추모 및 특별법 제정 촉구 집회에 백신 피해자와 가족이 참여하고 있다. 코백회 제공


▮“사회·규범적 판단” 요구…질병청 용역 연구 뒷받침

전문가와 피해자 단체는 결국 답은 현 백신 피해 상황을 사회적 재난으로 보고 그에 맞는 인과성 판정이 이뤄지도록 법 제도가 바뀌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정부가 사실상 백신 접종을 강제한 상황에서 접종 이후 질병을 얻은 이들을 사회적 재난의 피해자로 보자는 이야기다. 전문가들은 더 나아가 질병과 접종 간 인과성 심사가 의학적 판단을 위주로 진행되는 현 피해보상전문위원회의 한계를 지적하며 이를 보완하기 위해서는 대법원 판례 취지를 법안에 담아야 한다고 제안한다.

지난해 질병청 용역 과제로 이뤄진 ‘코로나19 예방접종 이상 반응 및 피해 보상 제도 법률 개정 마련 연구’ 결과서에도 “피해보상전문위원회가 대법원 판례가 요구하는 규범적 차원의 인과관계 입증의 완화가 충분히 고려되기 쉽지 않다”는 지적이 담겼다. 당시 연구진은 “의료 전문가로만 채워진 예방접종 피해조사반과 달리, 피해보상전문위원회의 경우 변호사 자격을 가진 법률전문가가 2명 정도 포함된다”면서 “이는 규범적 인과관계 법리가 심리에 반영되도록 하기 위한 취지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연구진은 이어 “그러나 15명 이내의 위원 중 2명으로서 10%를 조금 넘는 수준에 불과한 법률 전문가의 피해보상전문위원회에서의 역할은 매우 제한적으로 보인다”며 “이는 인터뷰 과정에서 법률가인 위원 입장에서는 규범적 인과관계를 의료 전문가인 위원들이 충분히 제대로 이해해서 반영하지 못한다는 불만으로 표출되기도 한다”고 평가서에 적었다.

지난 8일 서울 청계광장 코백회 분향소에서 열린 제48회 백신 희생자 추모 및 특별법 제정 촉구 집회에 백신 피해자와 가족이 참여하고 있다. 코백회 제공


▮‘포괄적 보상’ 꺼리는 속내…비난 여론 확산

현 복지위 소속 의원들도 현 피해 보상 판정 과정에 ‘사회적 판단’을 가미해 ‘포괄적 보상’이 이뤄지게 해야 한다고 보고 법안 상정을 추진했다. 하지만 정치권은 질병청 등 정부 기관이 ‘포괄적 보상’ 자체를 꺼리다 보니 공통의 합의안을 도출하기가 쉽지 않다고 지적한다. 강기윤 의원은 “정부 입장에서는 예산이 소요되는 일이다 보니 그 인정 범위를 좁히려는 것”이라며 “특히 기재부 등 정부 부처는 규정 악용을 우려하는 것 같다. 인과관계가 규명되지 않더라도 부작용을 최소화하면서 포괄적으로 지원할 수 있도록 조율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강훈식 의원실의 한 보좌관은 “피해자와 여야 모두 입증 책임 전환까지는 아니어도 좀 더 폭넓게 보상하는 방안을 찾자는 데 공감했다”면서 “하지만, 질병청은 포괄적 ‘보상’이라는 단어 자체를 쓰지 않길 바라는 눈치다. 보상이라는 말에 (백신 접종) 행위에 문제가 있었다는 것을 전제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자꾸 지원이라고 하는 것”이라고 상황을 전했다.

상황이 알려지자, 피해자의 비판 목소리는 크다. 백신 접종 이후 마비를 겪은 20대 남성의 아버지는 “지난달 질병청장이 간담회에서도 적극적으로 피해 구제를 해주겠다고 약속하면서 모든 판단은 안전성 평가위원회에 미루는 무책임한 행정을 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김두경 ㈔코로나19백신피해자가족협의회장은 “인과성 판정 결과 4-1을 받은 이들을 보상해야 한다는 데는 이견이 없는 것 같다. 4-2 판정을 받은 이들을 얼마나 구제해야 하는가가 관건이 될 것”이라면서 “대법원 판례가 그 판단 기준이 돼야 하지만, 질병청은 예나 지금이나 판례를 인정하지 않으려 한다. 판례가 법안에 들어가도록 끝까지 싸울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에 질병청 측은 “법조계 시민단체 인사가 피해조사전문위원으로 참여하는 것과 관련해 특별법 반영을 검토 중”이라며 “지난해 연구용역 결과를 참고해 제도개선 방안을 마련하고 있다”고 입장을 밝혔다.

지난 15일 경기 부천시 중동 로데오거리에서 코백회의 대국민 버스킹 공연이 2회째 열리고 있다. 코백회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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