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매만 1500세대…건축왕 전세사기 미추홀구 집중된 까닭은

강남주 기자 2023. 4. 22. 0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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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왕, 자금 돌려막기로 미추홀에만 2700세대 보유
재개발 해제 구역 많고 땅값 저렴…빌라 등 신축 많아
20일 전세 사기 피해자들이 속출한 인천시내 한 아파트에 전세사기 피해로 극단적인 선택을 한 희생자를 추모하는 화환이 놓여 있다.2023.4.20/뉴스1 ⓒ News1 유승관 기자

(인천=뉴스1) 강남주 기자 = 인천에서 3000여세대가 전세사기를 당했다. 피해는 특히 미추홀구에 집중됐다. 피해자들은 전재산이나 다름없는 보증금을 한푼도 건지지 못할 위기에 처했고 힘들어 하던 3명이 숨졌다.

이미 은행의 근저당권이 설정돼 있었음에도 이처럼 많은 전세사기가 어떻게 가능했을까. 수사당국은 공인중개사가 가담했기 때문이라고 본다.

22일 뉴스1 취재를 종합하면 인천에서 이른바 ‘건축왕, 빌라왕’에 의해 전세사기를 당한 세대는 총 3008세대다. 미추홀구 주민들이 2535세대로 전체의 85%가량을 차지한다.

이어 계양구 177세대, 남동구 153세대, 부평구 112세대, 서구 32세대, 중구 4세대, 동구 3세대, 강화군 1세대다.

피해자들은 대부분 7000만원에서 9000만원의 전세보증금을 걸었는데, 이를 되돌려 받을 길이 막막하다.

피해자의 상당수는 건축왕 A씨(61)와 공범에게 당했다.

경찰에 따르면 A씨 조직으로부터 피해를 당했다고 신고한 사람은 지난 3월 31일 기준 총 944명, 피해액은 700억원에 달한다.

◇건축왕, 공인중개사 고용 피해자 안심시켜

A씨는 빌라나 ‘나홀로 아파트’를 신축하는 건축업자였다. 분양이 잘 되지 않자 2009년부터 미분양 세대를 임대하기 시작한 것으로 알려졌다.

A씨는 공인중개사, 중개보조원 등 다른 사람의 명의를 빌려 토지를 매입한 뒤, 자신이 운영하는 건설업체를 통해 소규모 아파트나 빌라를 직접 건축했다.

공동주택이 준공되면 이를 담보로 은행에서 대출을 받았고 또 한편으론 전세계약을 체결해 보증금도 챙겼다. 그는 이 돈들로 땅을 사들이고 또 공동주택을 신축했다. 공동주택 신축에 필요한 자금을 이같은 돌려막기로 조달, 미추홀구 일대에만 주택 2700여세대를 소유하게 됐다.

A씨는 자신의 임대사업을 위해 공인중개사와 중개보조원들을 고용했다. 이들의 명의로 5~7개의 공인중개사사무소를 개설하고 급여와 성과급을 지급했다.

A씨가 공인중개사 등을 채용했던 건 전세계약을 체결하기 위한 선택이었다. 통상적인 거래라면 공인중개사에게 수수료만 주면 되지만 A씨 주택은 은행대출로 근저당이 설정된 터라 거래가 쉽지 않았다.

공인중개사들은 △A씨에게 고용된 사실 △주택의 실 소유주가 A씨라는 사실 등을 피해자들에게 숨겼고 전세계약 땐 ‘바지 임대인’을 내 세웠다. 또 근저당 때문에 계약을 꺼린 피해자들에겐 ‘전세 보증금 반환에는 문제가 없다’고 안심시킨 것으로 조사됐다.

전세사기피해자전국대책위원회 및 시민사회대책위원회 구성원들이 지난 20일 오전 서울 용산구 전쟁기념관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전세사기 대책 관련 윤석열 대통령과의 면담을 촉구하고 있다. 2023.4.20/뉴스1 ⓒ News1 이승배 기자

대출금과 전세보증금으로 자금 돌려막기를 하던 A씨는 늘어나는 이자를 감당하지 못했고 지난해 1월부터 다수 주택이 경매에 들어가게 됐다. 공인중개사 등은 이런 사정을 피해자들에게 알리지 않고 전세보증금을 편취하기도 했다.

◇검찰, 건축왕 구속·공범 5명 불구속 기소

피해자 B씨는 뉴스1과의 인터뷰에서 “근저당이 설정돼 있는 물건이긴 했지만 공인중개사가 집주인이 굉장한 부자이고 건물도 많이 보유하고 있어 망할 일이 없다고 안내했다”며 “보험도 많이 가입돼 있다고 안심시켰다”고 했다.

검찰은 A씨를 사기, 부동산실명법·공인중개사법 위반 혐의로 구속 기소했으며 재무를 담당직원과 공인중개사·보조원 등 5명은 사기 등의 혐의로 불구속 기소했다.

이와 별도로 경찰은 A씨 딸도 범행에 가담하는 등 공범이 더 있을 것으로 보고 수사를 확대하고 있다.

A씨에 의한 피해는 유독 미추홀구에 집중됐다. 경매에 넘어간 것만 1500세대가 넘을 정도다. 가장 큰 이유로 원도심이라서 땅값이 상대적으로 저렴하고 소규모 공동주택을 신축하기도 좋은 환경이라는 점이 꼽힌다.

미추홀구는 한때 재개발·재건축구역이 50여곳으로 인천에서 가장 많았으나 10여년 전부터 부동산 경기불황 등으로 해제되기 시작해 현재는 절반 정도만 남았다.

재개발구역에선 건축허가가 제한돼 공동주택은 물론 단독주택도 신축이 불가하지만 해제되면 사정이 달라진다. 재개발 불발에 실망한 매물들이 쏟아지고 그 땅 위에 빌라, 나홀로 아파트들이 우후죽순 들어서게 된다.

실제로 미추홀구 내 서울지하철 1호선 라인이면서 재개발이 해제된 지역의 대로변에는 나홀로 아파트가, 이면도로에는 빌라들이 점령했다. 인근 주민들은 그 수를 셀 수 없을 정도로 많다고 입을 모은다.

미추홀구에서 오랫동안 부동산사무소를 운영하고 있는 한 공인중개사는 “미추홀구에는 재개발에서 해제된 구역이 많다보니 자연히 나홀로 아파트, 빌라 등도 많이 신축됐다”며 “지하철 1호선과 가깝고 주변에 산업단지가 위치해 A씨 같은 건축업자들도 미추홀구로 많이 몰렸다”고 말했다.

결국 나홀로 아파트 등의 건축 붐이 일었고 상대적으로 전세보증금도 저렴, 전세피해가 집중된 셈이다.

한편 지난 2월28일과 이달 14·17일 A씨와 공범들에 의해 전세사기를 당한 피해자 3명이 숨져 주위를 안타깝게 하고 있다.

inamju@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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