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韓, 출산율 정책의 나쁜 사례"…유엔 인구보고서의 지적 왜?[dot보기]

김종훈 기자 2023. 4. 22. 0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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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엔인구기금 '2023 세계인구보고서' 들여다보기

[편집자주] '점(dot)'처럼 작더라도 의미 있는 나라 밖 소식에 '돋보기'를 대봅니다

/사진=유엔인구기금 보고서

"한국인들이 아이를 안 낳는 것은 출산을 원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출산을 선택할 권리가 없어서다."

지난 19일(현지시간) 발표한 '2023 세계인구보고서'에서 유엔인구기금(UN Population Fund)은 한 국내연구를 인용해 이 같이 지적했다. 이날 다수 언론은 이 보고서에서 인도가 중국을 제치고 인구 수 1위에 올랐다는 부분을 꼽아 집중 보도했으나, 최악의 저출산 국가인 한국이 눈여겨봐야 할 내용은 따로 있었다.

보고서 곳곳에서 한국은 출산율 정책의 부정적 사례로 언급됐다. 보고서 내용을 종합하면 한국은 '출산권'보다 '출산율'에 집중해 근시안적인 정책들을 쏟아냈다. 15년 간 200조원이 넘는 돈을 풀었음에도 저출산 문제를 풀지 못한 이유로 지목된다.

보고서에 따르면 세계는 인구학적으로 극과 극에 서있다. 아프리카를 중심으로 한 개발도상국들은 고출산을, 북미와 유럽, 동아시아를 중심으로 한 선진국은 저출산을 바로잡으려고 머리를 싸매고 있다.

9일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국회에서 코로나19로 중단된 지 4년 만에 열린 2023 국회개방행사에서 관람객들이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다. /사진=뉴스1
경제적 지원이 출산 앞당길 수는 있지만…
저출산 문제를 겪고 있는 국가들이 꺼내는 해결책은 주로 돈이다. 나경원 전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부위원장이 거론했던 헝가리의 대출탕감 정책이 대표적이다. 신혼부부에게 최대 1000만 포린트(약 3800만원)를 대출해주고 출산을 할 때마다 대출액 일부를 탕감해주는 방식이다. 아이를 셋 낳으면 전액 탕감해준다는 것.

국내에서도 출산율 반등에 성공한 사례로 헝가리를 조명한 바 있으나, 유엔인구기금의 시각은 회의적이었다. 유엔인구기금은 "최근 인구 전체를 대상으로 출산율 견인 정책을 도입했던 국가들을 보면 출산 시기를 당기는 것 외에 다른 효과는 없었다"며 "장기적으로 효율적이지 않다"고 지적했다.

원래 자녀 계획이 있던 부부가 새로 도입되는 보조금을 받기 위해 예정보다 일찍 출산하는 경우는 있을지 몰라도, 보조금 때문에 '딩크족' 부부가 출산을 계획한다거나 하나만 낳으려던 부부가 둘을 낳기로 하는 일은 거의 없다는 것. 출산, 육아가 일정량 이상의 노동력과 비용을 지속적으로 요구한다는 점을 생각하면 단기적인 현금 지원은 실효성이 없다는 취지다.

첫 만남 이용권, 부모수당 등 여러 현금성 지원에도 불구하고 "중고등학교까지 들어가는 돈이 얼만데", "잠깐 그 돈 받느니 안 낳고 만다"는 한국 2030세대의 반응과 맞아떨어지는 지적이다.

낳기 싫다기보다 못 낳는 게 한국 실정이다. 지난해 6월 발표된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연구에 따르면 2년 내 출산 계획이 있다고 응답한 15~49세 기혼여성 959명 중 30%(288명)만이 계획대로 아이를 낳았다. 2년 내 출산을 하지 않은 나머지 671명 중에서 37.9%(254명)는 아예 출산을 포기한 것으로 조사됐다. 이들이 출산 계획을 연기하거나 포기한 것은 주로 늦은 연령과 경제적 상황 때문이었다.

이기일 보건복지부 제1차관이 지난달 4일 오전 서울 중구 한국보건복지인재원 서울교육센터에서 열린 저출산 대응 2030 청년과의 긴급 간담회에 참석해 발언하고 있다. /사진=뉴스1
저출산, 가임세대가 피해 입고 있다는 신호
유엔인구기금은 국가가 목표 출산율을 숫자로 결정해놓고 출산을 독려하는 방식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출산은 결국 개인의 선택이기 때문에 '아이를 낳고 싶은 사회'를 만드는 게 우선이라는 취지다. 유엔인구기금은 "1994년 국제인구개발회의 개최 이후 정부 주도 목표출산율 달성 정책에서 벗어나는 것이 국제적 흐름이었음에도 몇몇 국가는 20년 간 이러한 정책을 유지했다"며 일본과 한국을 언급했다.

그러면서 유엔인구기금은 저출산 국가를 조사해보면 아이가 없는데 낳고 싶다거나, 아이를 더 낳고 싶어하는 여성이 상당수라고 설명했다. 인구기금은 "유럽이나 미국의 경우 만약 여성들이 바람대로 아이를 낳았다면 1인당 자녀를 둘 이상 뒀을 것으로 조사됐다"고 밝혔다. 이어 "이탈리아, 그리스 등 출산율 1.5이하인 유럽국가들에서도 같은 결과가 나타났다"며 "일본, 한국, 싱가폴 등 저출산 아시아 국가에서도 많은 여성들이 2자녀를 이상적인 가족 형태로 그리고 있었다"고 했다.

실제로 지난 2018년 한국경제연구원이 서치앤리서치에 의뢰해 20~40대 여성 근로자 516명을 설문조사한 결과, 이상적인 자녀 수는 평균 2명으로 파악됐다. 그러나 실제로 낳은 자녀 수는 평균 1.2이었다. 희망대로 아이를 낳지 못한 이유는 소득 및 고용 불안이 30.6%로 가장 많았고, 그 다음은 사교육비 부담 22.3%, 일·생활 양립이 어려운 업무 환경 20.9% 등이었다.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도 문제를 모르는 것은 아니다. 2021년부터 시행 중인 4차 기본계획을 설계하면서 위원회 측은 '출산율' 대신 '삶의 질'로 초점을 옮겨 정책을 전면 개편했다. '저출산은 국가 재앙'이라는 독촉 대신 아이를 낳고 싶은 사회환경 조성을 우선하겠다는 것이다.

김영미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부위원장이 10일 오전 서울 종로구 세종대로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사회관계 장관회의에서 참석자와 인사를 하고 있다. /사진=뉴스1

유엔인구기금은 출산율보다 출산권의 자유를 끌어올려야 한다고 강조했다. 출산이 권리라는 인식은 한국에서도 낯설지 않다. 다만 이는 주로 낙태죄와 관련해 '낳고 싶지 않은 아이를 낳지 않을 권리'로 이해됐다. 반면 보고서는 출산권을 '낳고 싶은 만큼 낳을 권리', '출산 계획을 설계하고 실현할 권리'로 정의했다.

기금은 출산권 역시 인권임을 강조하면서 "출산율 달성을 국가 과제로 여기는 정책 아래에서 개인의 출산권은 충분히 보장받을 수 없고 심각한 침해를 받기도 한다"고 지적했다. 이어 "저출산이어서 나쁘다는 인식보다, 심각한 저출산은 개인의 출산권이 침해되고 있음을 나타내는 지표라는 인식에서 출발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인구 25% 줄었던 몰도바는…
기금은 몰도바를 표본으로 제시했다. 몰도바는 1990년대 초 450만명이었던 인구 수가 이민 등을 이유로 올해 기준 340만명까지 줄어들었을 정도로 심각한 인구 감소를 겪었다. 한국과 마찬가지로 현금성 지원을 통해 출산율 끌어올리기에 나섰으나 실패했다. 이에 몰도바는 저출산 해결을 과제로 삼고 정책 전환을 시도했다.

인구조사부터 뜯어고쳤다. 단순히 출생아 수를 집계하는 이전 방식에서 벗어나 국민들의 구체적인 가족 계획, 출산을 방해하는 장애물 등을 상세히 조사했다. 그 결과 경제적 위기 의식과 성평등 등이 출산 계획의 요인임을 발견하고 정책 수립에 반영했다.

효과는 느리지만 확실히 나타나고 있다. 2003년 1.238까지 추락헀던 몰도바 출산율은 올해 1.311까지 올라왔다. 특히 2019년부터 지속적으로 상승세를 그리고 있다. 구직 등 문제로 이민을 떠나는 이들로 인해 전체적인 인구 수가 감소함에도 출산율 반등을 이뤄낸 것. 유엔인구기금은 2050년에는 몰도바 출산율이 1.5까지 오를 것으로 전망한다.

유엔인구기금은 "지속가능한 미래를 위해 세계 각국이 협력해 몰도바처럼 혁신을 시도해야 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육아기를 지나고 있는 부모들은 경제적 불확실성과 세대 간 불평등을 겪으며 비관주의에 깊이 빠져들었다"며 "다수 국가에서 청년층은 경제 상황이 부모 세대 때보다 나빠질 것으로 생각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이어 "미래에 대한 불안 때문에 출산 계획을 실현하지 않고 있는 것"이라며 "연금 개혁, 노동시장과 사회복지 제도 개선, 생산성 확대, 성평등 사회 모든 분야에서 장기적, 총체적 관점을 갖고 변화를 시도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김종훈 기자 ninachum24@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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