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젠 헬기 차례다”… K방산 ‘수출 대박’, 수리온 헬기로 이어질까 [박수찬의 軍]
“2023년까지 300대 수출이 가능할 전망이다.”
2010년대 초 국산 수리온 헬기 개발이 완료됐을 때, 정부와 수리온 제작사인 한국항공우주산업(KAI)은 “2023년까지 세계 헬기 수요가 1000대로 예상되며, 수리온이 시장점유율 30%를 차지할 것”이라며 이같이 밝힌 바 있다.
10여년이 흐른 지금, 수리온은 국내에서 230여대가 쓰이는 주력 헬기로 발돋움했다. 육군 4차 양산과 마린온 상륙기동헬기 도입 등을 더하면 국내 운용규모는 300대에 달할 전망이다.
반면 수출 분야에서 수리온의 성과는 미미하다. 전차, 장갑차, 훈련기, 군함, 잠수함 등이 잇따라 해외 시장에서 수주 성과를 올렸지만, 수리온은 단 한 대의 수출도 이뤄내지 못했다. 해외 경쟁자들과 차별화되는 특단의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는 지적이다.
우크라이나 전쟁을 계기로 한국은 폴란드에 K2 전차, K9 자주포, FA-50 경공격기, 천무 다연장로켓을 대량 수출하는 성과를 거뒀다.
이같은 분위기에 힘입어 정부는 방산수출 성과 확대 차원에서 헬기 수출에 적극 나설 태세다.
방위사업청은 지난 14일 헬기 수출 협의체 ‘Team H’를 구성, 위촉장을 수여하고 착수회의를 개최했다. 민관군 8개 기관 소속 15명으로 구성된 Team H는 이날 회의에서 수출시장 분석, 수출을 위한 정책적 지원방안 등을 협의했다.
방사청의 헬기 수출팀 구성은 지난 10여년 간의 수리온 수출 추진이 사실상 실패했던 것과 무관치 않다.
KAI는 지난 2011년 수리온 개발 협력 파트너였던 유로콥터(EC·현 에어버스 헬리콥터)와 함께 수출전담회사인 KAI-EC(주)를 만들었다.
KAI 51%, EC 49%의 지분 구조를 지닌 KAI-EC(주)가 설립됐을 때, 방산업계에선 수리온을 개발한 KAI의 기술과 유로콥터가 보유한 글로벌 영업망 및 노하우가 결합하면 수리온 수출에 긍정적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전망이 적지 않았다.
하지만 수리온 수출은 성사되지 않았고, KAI-EC(주)는 현재 KAI 사업보고서에서도 찾아보기 힘든 회사가 됐다.
대체기종을 찾던 필리핀은 2018년 6월 로드리고 두테르테 당시 대통령 방한 이후 수리온에 관심을 보였다. 이때 국방부는 청사를 방문한 두테르테 대통령을 위해 연병장에 수리온을 전시하는 등 수출 성사를 위해 적극 나섰다.
하지만 필리핀은 같은해 12월 UH-60의 최신 기종인 S-70i를 선정했다. 당시 필리핀 측은 “예산 제약으로 수리온은 10대만 살 수 있었는데, S-70i 제작사가 16대를 구매할 수 있도록 제안을 수정해왔다”고 이유를 밝혔다.
거듭되는 수출 악재에 대해 KAI와 정부도 대책 마련에 나섰다.
2019년 열린 ‘서울 ADEX 2019’ 전시회에서 KAI는 해외 진출을 위한 수출기본형(KUH-1E) 시제기를 공개했다.
KAI가 2015년부터 4년간 500억여원을 투입해 개발한 KUH-1E는 첨단 항공전자 시스템을 탑재했다. 조종석에 있던 제어기기들은 다기능 시현기와 터치스크린 기능으로 통합됐다. 위성항법체계(GPS), 레이더 고도계 등 항법장치와 통신장비를 이중으로 적용, 조종 안전성과 운용 신뢰도를 높였다.
기동헬기와 공격헬기를 별도로 도입하기 어려운 개발도상국을 겨냥, 동체 외부에 기총이나 로켓탄 등을 장착할 수 있게 했다. 무장 외에도 보조연료탱크 장착이 가능하다.
헬기에서 무인기를 운용하는 기술 개발도 이뤄지고 있다.
KAI는 2021년 방위사업청과 헬기-무인기 연동체계 사업 계약을 체결, 수리온에 무인기 조종·통제 장비와 영상정보 수신 안테나를 장착해 헬기-무인기 연동체계를 실행한 바 있다. 지난해 11월에는 국방기술진흥연구소와 소형무장헬기 유·무인복합체계 관련 기술 개발 계약을 맺었다.
◆경쟁자보다 차별화된 패키지가 우선
해외에선 수리온의 잠재적 시장을 파고들 수 있는 경쟁자들이 존재한다. 신뢰성이나 가격 등의 측면에서 상당한 경쟁력을 갖췄다는 평가다.
에어버스 헬리콥터가 만든 H175M 중형헬기는 민간 헬기 H-175를 군용으로 개조한 것이다. 설계 단계서부터 군사 용도로 쓰일 가능성을 고려했고, 민간에서 10여년 동안 사용된 실적을 토대로 신뢰성과 내구성 검증도 이뤄졌다.
비행시간은 최대 6시간, 항속거리는 1100㎞로 수리온보다 우수하다. 최대이륙중량도 7.8t으로 수리온보다 가볍다.
필리핀에서 수리온을 밀어냈던 S-70도 경쟁 상대다. 현재는 록히드마틴에 인수된 시코르스키가 1972년 개발한 S-70은 미군에서 UH-60 ‘블랙호크’란 이름으로 도입됐다.
S-70은 여러 차례 개량 작업을 거치면서 성능이 향상됐다. 생산 주체도 2010년 이후 록히드마틴의 폴란드 자회사인 PZL 밀렉으로 바뀌었다.
록히드마틴 기술과 PZL 밀렉의 생산력, 낮은 인건비가 결합해 탄생한 것이 S-70i다. 2010년대부터 필리핀과 폴란드, 칠레, 브루나이, 콜롬비아 등에서 도입했다.
S-70i는 UH-60과 유사하게 13명의 병력을 태울 수 있다. 디지털 조종석에는 10인치 컬러 다기능 디스플레이(MFD) 4개, 이중으로 된 디지털 자동 비행제어시스템과 비행 지시 및 비행 관리 시스템(FMS)을 갖췄다. 항법체계는 디지털 지도가 포함됐다. 록히드마틴은 S-70i를 성능개량한 S-70M도 제안하고 있다.
H175M과 S-70은 글로벌 항공우주·방위산업체가 생산하는 기종이다. 오랜 기간 운용되면서 기술적 신뢰성이 검증됐고, 글로벌 공급망도 갖춰져 있다. 유럽 헬기나 미국 헬기를 예전부터 사용했던 국가라면 친숙하게 느껴질 수 있다.
무인기 운용능력을 추가하면 기술적으로 앞서나갈 수 있지만, 관련 기술 개발 완료 후 검증을 진행하는 동안 해외 경쟁자들이 낮은 비용과 검증된 신뢰성을 앞세워 시장 장악력과 진입장벽을 한층 높일 수도 있다.
이에 대해 일각에서는 한국군의 강점을 활용한 패키지를 신속하게 구성, 제안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한다.
한국군은 현재 700여대의 헬기를 보유하고 있다. 이들 헬기는 공중강습작전과 화물 공중 수송, 국가 재난 수습 지원 등 다양한 임무에 투입된다.
이는 특수전부대의 적진 침투, 대규모 공정부대의 신속한 기동 지원, 구호 및 구난 등 헬기를 이용한 전술 경험이 그만큼 많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를 위해서는 정부와 군, 제작업체가 역량을 모아서 시너지를 극대화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미국과 유럽 헬기업체들이 구축한 잠금 효과(소비자가 상품 또는 서비스를 이용하면, 다른 유사 상품 또는 서비스로의 이전이 어렵게 되는 현상)를 깨기가 어렵다.
수리온은 개발 당시 한국의 항공우주산업 발전과 수출 경쟁력 강화에 큰 역할을 할 것이라는 기대가 많았다. 하지만 다른 국산 무기들이 해외 수주에 성공하는 동안 수리온은 별다른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수리온의 첫 수출이 이뤄진다면, 소형무장헬기(LAH) 수출도 물꼬를 틀 수 있다. 이는 헬기 산업 활성화 등에 상당한 도움이 될 전망이다. 정부와 군의 정책적 지원에 관심이 쏠리는 이유다.
박수찬 기자 psc@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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