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차전지 대해부] 서호주·칠레·아르헨… 中 의존도 낮추려 공급망 다변화
공급망 다변화 위해 전세계 누벼
대한민국의 반도체 신화를 이을 산업으로 2차전지가 꼽히고 있다. 지난해 글로벌 시장(중국 제외)에서 국내 2차전지 빅3 업체의 점유율은 53%로 절반을 넘었다. K배터리의 위상은 배터리셀을 넘어 소재와 장비 등 2차전지 생태계 전반으로 확장하고 있다. 2030년 전기차 생산이 5400만대로 폭증할 것으로 전망되는 가운데, 2차전지를 놓고 ‘배터리 패권경쟁’을 펼치는 대한민국 배터리 산업의 현황을 살펴본다. [편집자주]
미국 인플레이션감축법(IRA) 충격이 한국 2차전지 업계의 공급망 지도를 다시 그리고 있다. 배터리 업계는 중국이 생산한 광물 및 중간 제품의 의존도를 낮추기 위해 남미의 칠레·아르헨티나, 오스트레일리아의 서호주 지역, 전북 새만금 등에 대한 투자를 늘리고 있다.
22일 배터리 업계와 대한상공회의소 등에 따르면, 한국은 2차전지 제조에 꼭 필요한 핵심광물인 산화코발트·수산화코발트, 황산망간·황산코발트, 산화리튬·수산화리튬, 천연흑연, 이산화망간, 산화니켈·수산화니켈 등의 중국 수입 의존도가 70~90%에 달한다.
이 같은 상황이 계속되면 미국에서 대당 7500달러 규모의 세액공제 혜택을 받기 어렵다. IRA는 미국이나 미국과 자유무역협정(FTA)을 체결한 곳에서 채굴하거나 가공한 배터리 핵심광물을 일정한 비율 이상 사용해야 세제 혜택을 주도록 정했다. 이 비율은 올해 40%에서 시작해 2027년 80%까지 매년 10%포인트(p)씩 높아질 예정이다.
배터리 업계는 중국 밖에서 핵심광물을 확보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지난 17일 삼성물산, 포스코홀딩스(POSCO홀딩스), LS MnM, 한국광해광업공단 등 한국 광물업계 큰 손으로 구성된 ‘민‧관 합동 핵심광물 사업조사단’이 남미를 방문했다. 이들의 목적지는 칠레와 아르헨티나이다. 배터리 핵심 원료광물인 리튬을 세계에서 가장 많이 보유한 나라들이다.
두 나라엔 한국 기업이 직접 투자하거나 장기 계약을 한 리튬 광산이나 염호가 있다. 조사단은 광업부 장관 등 칠레와 아르헨티나의 주요 정부 관계자 및 광업 기업 인사들과 면담하며 이들 나라의 핵심광물 프로젝트에 참여 협조를 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서호주 주(州) 지역도 리튬 공급지로 주목받고 있다. SK이노베이션은 톈치리튬과 서호주 퀴나나 지역에서 생산하는 수산화리튬을 2019~2024년 매년 5만톤(t) 규모로 공급받고 있다. LG에너지솔루션은 2024년부터 가동 예정인 서호주 캐슬린 밸리 리튬 프로젝트에서 생산하는 리튬 정광인 스포듀민(spodumene)을 5년간 70만t 공급받기로 했다. 포스코는 리튬 광산 기업인 필바라사와 포스코필바라리튬솔루션을 설립해 현지 광물을 전남 광양 수산화리튬공장으로 보내 수산화리튬을 생산한다는 계획을 세웠다.
한국수출입은행은 지난 11일 공개한 ‘무역데이터를 활용한 국내 주요 산업별 핵심원자재 공급망 취약성 분석’ 보고서에서 중국을 대체할 광물 공급처로 칠레, 미국, 영국, 네덜란드 등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제시했다. 리튬은 국내 수입선 중 10%를 차지하는 칠레로부터의 수입 비중 확대가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세계 리튬 시장에 8.8%를 공급하고 있지만 한국 수입은 1.2%에 그치는 미국도 대안 공급망으로 제시했다. 중국과 벨기에 의존도가 높은 코발트는 전세계 시장에서 7.8% 점유율을 갖고 있는 영국이 대체 후보국으로 제시됐다. 망간은 전세계 시장 점유율 9.3%에 달하는 네덜란드가 대안으로 제시됐다.
중국에서 원재료를 들여와 한국에서 가공하는 설비에 대한 투자 움직임도 활발하다. 당장 중국 밖 대체 공급망 확보가 어렵기 때문이다. 미국과 FTA를 체결한 한국 내 공정을 늘리면, IRA 수혜조건을 충족시키기 쉬워진다. 특히 수입품 중 중국 의존도가 높았던 전구체의 국내 공장 건설이 활발하다.
LG에너지솔루션의 모회사 LG화학은 지난 17일 중국 화유코발트와 합작해 새만금 산업단지에 전구체 공장을 건설하기로 했다. 2026년까지 1차로 한 해 5만t의 양산 체제를 구축하고, 이어 추가 증설로 연산 10만t 규모까지 키우겠다는 계획이다.
LG화학은 고려아연의 계열사 켐코와 합작한 한국전구체주식회사를 통해 2024년 가동을 목표로 울산 온산산단에서 전구체 전용라인을 구축 중이다. SK온도 지난달 24일 에코프로, 중국 거린메이(GEM) 등과 1조2100억원 규모의 새만금 산단 내 연산 5만t 규모의 전구체 생산시설 건립을 위한 투자 협약을 체결했다.
다만 2024년 12월 31일 이후 적용되는 ‘해외 우려 기관’ 지정 제도는 변수로 남아 있다. 해외 우려 기관으로 지정된 곳이 생산한 배터리 핵심광물을 쓴 전기차는 세액공제 혜택을 받지 못하게 된다. 미국 정부는 해외 우려기관 가이드라인 발표를 미뤄뒀는데, 중국의 배터리 소재 회사들이 지정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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