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규제에 발목 잡힌 금융 빅블러

이창환 금융부장 2023. 4. 22. 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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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행들의 돈 잔치는 안 된다.” 윤석열 대통령의 한마디에 은행들은 납작 엎드렸다. 총대는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이 멨다. 이 원장은 한 달여간 시중은행 현장 방문에 나섰다. 그가 은행을 찾을 때마다 해당 은행은 선물 보따리를 풀었다. ‘상생 금융’이라는 이름으로 은행들은 약 8000억원 규모의 지원책을 내놨다. 서민·자영업자들은 고금리로 신음하는데, 은행들은 ‘이자 장사’로 막대한 수익을 올리고 있다는 비판의 목소리를 의식한 조치였다. ‘관치 금융’이라는 비판이 따랐지만, 당장 대출 금리가 내려가니 서민들은 환영했다.

‘돈 잔치’ 논란을 빚은 은행권을 겨냥해 윤 대통령은 “은행들이 예금과 대출금리를 책정할 때 과점적 지위를 활용해 손쉽게 이자수익을 냈다는 지적이 있다”며 과점체제를 깰 특단의 대책을 주문했다. 금융 당국은 부랴부랴 ‘은행권 제도개선 태스크포스(TF)’를 만들었다. 김소영 금융위원회 부위원장 주재로 매주 회의가 열리고 있는데, 6월 말 개선안 윤곽이 나올 것으로 보인다. 은행이 예대마진(예금과 대출금리 차이)을 통해 손쉽게 돈을 버는 건 사실이다. 윤 대통령이 은행의 독과점 구조를 지적하면서 개혁과 경쟁에 나서야 한다고 강조한 것도 맞는 말이다. 그렇다면 은행은 왜 이자 장사에만 골몰하는 것일까.

은행이 사업다각화 노력을 아예 안 하는 건 아니다. 국민은행의 알뜰폰 ‘리브엠’과 신한은행의 배달 대행 플랫폼 ‘땡겨요’는 그나마 눈에 띄는 비은행 사업이다. 하지만 여기까지다. 두 사업이 은행의 혁신을 이끌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5년 전 금융권 ‘메기’로 등장한 인터넷은행도 한계를 드러내고 있다. ‘간편함’과 ‘편의성’을 내세운 혁신 금융을 기대했지만, 기존 은행과 마찬가지로 고금리에 기대 이자 장사를 하는 게 고작이다. 토스뱅크, 카카오뱅크, 케이뱅크 등 인터넷은행 3사가 확보한 자산은 국내 은행 전체의 3% 정도에 불과하다.

금융과 비금융의 경계가 허물어지는 ‘빅블러(Big Blur)’ 시대에 혁신은 여기저기서 일어나고 있다. 애플은 지난 17일(현지시각) 미국에서 연이율 4%대 고금리 저축 상품을 출시했다. 미국 은행 평균 금리의 10배가 넘는다. 애플은 간편결제, 신용카드, 선구매 후결제(BNPL) 서비스에 이어 저축통장까지 내놨다. 애플의 브랜드 파워를 고려하면 기존 은행의 자리를 위협하기 충분하다. 스타벅스는 소비자로부터 선불 충전금을 받아 간편결제를 할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하고 있는데, 전 세계 충전금액이 2조원이 넘는다. 한국에서만 끌어모은 고객 돈이 2000억원에 육박하다 보니 국내 금융사 수장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라이벌로 스타벅스를 꼽기도 한다.

산업 생태계가 빠르게 변하고 있지만 여전히 국내 은행이 이자 장사의 한계를 뛰어넘지 못하고 있는 이유는 뭘까. 바로 금융규제 때문이다. 새로운 사업을 시도하려고 해도 번번이 규제의 벽에 가로막힌다. 은행권의 알뜰폰 진출도 현행 규제상 불가능한 사업인데, 혁신금융서비스로 지정돼 사업 진출이 간신히 허용됐다. 금융 당국의 개별적 허용 없이는 새로운 혁신 노력을 진행하기 어려운 게 현실이다. 산업의 경계가 사라지고 있는 시대에 낡은 규제가 새로운 사업을 시도조차 할 수 없게 만드는 것이다.

그동안 은행은 강력한 금산분리 규제로 신사업 진출이 사실상 막혀 있었다. 금융자본과 산업자본의 분리를 의미하는 금산분리 원칙에 따라 은행은 비금융자본을 15% 이상 가질 수 없어 타 산업 진출이 어려웠다. 한국과 유사한 금융규제 체제를 갖고 있는 일본은 2020년 관련법을 개정해 금융사가 각종 신사업에 본격적으로 나설 수 있게 했다.

금융위원회도 지난해 11월 금산분리 제도 개선방안을 발표했다. 금융위는 올해 대통령 업무보고에서 중요 추진업무 중 하나로 금산분리 제도 개선 방안을 넣으며 적극적인 의지를 보이고 있다. 금융자본과 산업자본의 결합으로 인한 경제력 집중을 방지하기 위해 만든 금산분리 규제는 빅블러 시대에 오히려 족쇄가 되고 있다. 은행이 이자 장사에만 나서지 않고 혁신하기를 바란다면 금융규제 개혁부터 속도를 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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