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명 못죽여, 사람 피에선 향기가"…살인 즐겼던 정남규 [뉴스속오늘]
"에이씨 끝났네…1000명은 죽였어야 했는데 아깝다"
17년 전인 2006년 4월 22일, 연쇄살인범 정남규는 경찰에 체포된 뒤 호송차 안에서 혼자 이같이 중얼거렸다.
당시 새벽 시간대를 틈타 서울 영등포구 신길동의 한 다세대주택에서 금품을 훔치다 체포된 정남규. 그는 13명을 살해하고 20명에게 중상을 입힌 연쇄살인범.
정남규는 2004년 1월부터 약 27개월 동안 서울과 경기 지역에서 범행을 저질렀다. 특히 그는 원한 관계나 금품 갈취 등이 목적이 아니라 살인 자체를 즐겼기 때문에 검거 후 수사 과정에서도 전혀 반성하지 않는 모습을 보였다.
경찰 수사 과정에서 정남규는 살인을 벌이며 쾌락을 얻었다고 밝혔다. 그는 경찰이 여러 사건에 대해 질문할 때 감정 동요를 보이지 않으며, 마치 자신은 당당하다는 듯 답변했다.
이 과정에서 정남규는 "지금도 피 냄새를 맡고 싶다. 사람 피에서는 향기가 난다", "(경찰에 잡혀) 더 이상 살인을 못 할까 조바심이 난다" 등 살인 행위에 집착하는 발언을 하기도 했다.
정남규 수사에 참여했던 '국내 1호 프로파일러' 권일용 교수는 어떻게든 적은 형을 받기 위해 노력하는 다른 범죄자와 달리, 정남규는 처벌 수위에 관심이 없고 오로지 자신의 살인 욕구에만 충실했다고 전한 바 있다.
권일용 교수는 과거 언론 인터뷰에서 "정남규는 사람을 살해하는 데 목적을 두지 않고, 살해 과정에서 자신의 즐거움을 찾았다"며 "정남규와 면담할 때 '인간이 어떻게 이런 서늘함을 느끼게 할 수 있을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자신이 범행한 장면을 설명할 때 그 순간으로 돌아가 충족감을 느끼더라"고 말했다.
심지어 정남규는 초등학교 5학년 때 동네 아저씨로부터 성폭행을 당하기도 했다. 정남규는 경찰 수사 과정에서 해당 사건이 자신의 인격 형성에 큰 영향을 미쳤다고 시인했다.
불우했던 어린 시절의 경험으로 정남규는 타인과 관계를 형성하는 데 어려움을 겪었다. 그는 고등학생 때 학교폭력과 집단괴롭힘을 당했다. 군대에서도 심한 구타와 가혹 행위 등에 시달리며 반사회적 성향을 갖게 됐다.
결국 그는 사회에 대한 증오와 복수심으로 가득한 괴물로 변했다. 범죄자의 길로 들어선 정남규는 1989년 특수강도 혐의, 1996년 강도 및 강간미수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정남규는 첫 재판에서는 징역형 집행유예를 받았지만, 두 번째 재판에서 징역 2년 6개월을 선고받고 수감 생활을 했다. 출소 이후에도 그의 범행은 이어졌다. 정남규는 1999년 절도 및 강간(징역 2년), 2002년 자동차 절도(징역 10개월) 등 혐의로 교도소를 들락날락했다.
정남규는 2004년 1월 14일 오후 9시쯤 경기 부천시 원미구 소사동의 한 놀이터에서 놀고 있던 A군(13세)과 B군(12세)을 칼로 위협해 인근 산으로 데려갔다. 그는 소년들을 성추행한 뒤 스카프 등 도구로 목을 졸라 살해했다.
두 소년의 시신은 범행 16일 만인 2004년 1월 30일이 돼서야 발견됐다. 정남규는 첫 살인을 한 뒤 거침없이 범행을 이어갔다. 같은해 1월 30일 서울 구로구에서 40대 여성을 흉기로 찔러 중상을 입혔고, 2월 6일에는 서울 동대문구에서 20대 여성을 살해했다.
이후 정남규는 거의 매달 서울과 경기 지역을 돌며 흉기로 피해자들을 난자했다. 특히 그는 상대적으로 신체 힘이 약한 여성과 중년 남성만을 범행 목표로 잡았다.
정남규는 2006년 4월 22일 검거 당시 금품을 훔치기 위해 침입한 다세대주택에 20대 남성이 자고 있자, 그를 먼저 처리하기 위해 둔기로 내려쳤다. 하지만 피해자는 부상만 입은 채 잠에서 깼고, 그는 정남규와 격투를 벌여 경찰이 도착하기 전까지 그를 제압했다.
사형수가 된 정남규는 서울구치소 독방에서 생활했다. 그는 수감 중에도 살인 충동을 억제하지 못해 괴로워하는 모습을 보인 것으로 알려졌다.
자신의 쾌락을 위해 살인을 일삼은 정남규는 결국 구치소에서도 살인을 저질렀다. 2009년 11월 21일 정남규는 독방에서 목을 매 스스로를 죽였다. 희대의 악마 정남규의 마지막 살인이었다.
교도관들은 극단적 선택을 한 정남규를 발견해 곧바로 인근 병원으로 이송했지만, 정남규는 다음날 새벽 사망했다. 정남규의 빈소에는 오직 그의 매형만이 찾아왔고, 유가족의 외면 속 정남규의 시신은 화장됐다.
채태병 기자 ctb@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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