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의 전설’은 추억 속으로..끝없이 추락하는 범가너[슬로우볼]
[뉴스엔 안형준 기자]
'가을의 전설'도 이제 추억 속으로 향하고 있다.
애리조나 다이아몬드 백스는 4월 21일(한국시간) 모두를 깜짝 놀라게 하는 선수 이동을 발표했다. 바로 매디슨 범가너를 DFA(Designated for assignment, 지명할당)한 것이다. 애리조나는 시즌 첫 달을 채 마차기도 전에 범가너를 전력에서 전격 제외했다.
사실 성적을 보면 납득이 되는 선택이다. 범가너는 올시즌 4번 선발등판해 16.2이닝을 투구했고 3패, 평균자책점 10.26을 기록했다. 아무리 시즌 초반이지만 10점대 평균자책점은 구단 입장에서 참기 어렵다. 비단 올시즌 뿐만이 아니다. 2020년 단축시즌에 애리조나 유니폼을 입은 범가너는 애리조나에서 4시즌 동안 69경기에 선발등판했고 363.1이닝을 투구하며 15승 32패, 평균자책점 5.23을 기록했다.
지난 3년 동안 한 번도 규정이닝을 충족시키지 못했고 승리보다 패배가 훨씬 많았다. 평균자책점도 굉장히 높았다. 리그 평균을 100으로 계산하는 조정 평균자책점(ERA+) 지표에서 범가너의 애리조나 4시즌 기록은 80에 불과했다. 범가너는 의심의 여지가 없는 리그 평균을 한참 밑도는 '평균 이하'의 투수였다.
범가너를 포기한 애리조나의 선택이 놀라운 것은 범가너가 '이름값'이 있는 선수라서가 아니다. 그가 계약 기간이 2년이나 남아있는 선수기 ��문이다.
애리조나는 20202시즌에 앞서 범가너와 5년 8,500만 달러 FA 계약을 맺었다. 올해는 계약 4년차 시즌. 범가너의 계약 기간은 2024시즌까지다. 애리조나가 범가너에게 줘야하는 돈은 약 3,400만 달러가 남아있다.
평균 이하인 범가너의 성적을 감안하면 범가너의 잔여 계약을 떠안으며 그를 클레임 할 구단은 없다고 봐야한다. 범가너는 웨이버 절차를 통과한 뒤 FA 신분이 돼 팀을 떠날 것이며 이후 다른 구단과 계약을 맺더라도 애리조나는 잔여 계약기간 동안 약속된 연봉을 지급해야 한다. 새 소속팀은 리그 최저연봉 만큼의 금액만을 부담한다.
애리조나는 수천만 달러의 돈을 '매몰비용'으로 취급하고 범가너를 팀에서 내보내는 것이 이득이라고 판단했다. 돈이 아까워서 범가너에게 귀중한 26인 로스터 한 자리를 계속 내주는 것보다는 그에게 줘야 할 돈을 주고 내보낸 뒤 로스터 한 자리를 '가치있는 선수'로 채우는 것이 팀에는 더 좋은 일이라는 결정을 내린 것이다.
범가너 입장에서는 굴욕이다. 1989년생 좌완 범가너는 한 때 빅리그 최고의 투수였다. 2007년 신인드래프트 1라운드 전체 10순위로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에 지명돼 2009년 빅리그에 데뷔한 범가너는 샌프란시스코 에이스로 10년 가까운 시간을 보냈다.
범가너는 첫 풀타임 시즌이던 2011년부터 2016년까지 6년 연속 200이닝 이상을 투구하며 6년 연속 13승 이상을 거뒀다. 6년 동안 범가너가 기록한 성적은 195경기 1,2762이닝, 93승 61패, 평균자책점 3.00. 이는 해당기간 메이저리그 전체 이닝 4위, 다승 4위의 기록이었고 6년 동안 500이닝 이상을 투구한 선발투수 131명 중 평균자책점 5위의 기록이었다.
해당기간 범가너보다 더 많은 이닝을 투구하고 더 많은 승리를 거두며 더 낮은 평균자책점을 기록한 투수는 메이저리그 전체에 단 한 명, 클레이튼 커쇼(LAD) 밖에 없었다(2011-2016 커쇼: 180G 1277IP, 100-37, ERA 2.06). 당시 커쇼가 다른 투수들과는 '차원이 다른' 에이스로 평가받는 투수였음을 감안하면 범가너는 '커쇼를 제외한 인간계 투수들' 중에서 최고였다고 볼 수 있다.
2014년 샌프란시스코의 월드시리즈 우승을 이끈 것은 그야말로 전무후무한 일로 메이저리그 역사에 남았다. 범가너는 2014년 와일드카드로 포스트시즌에 오른 샌프란시스코를 월드시리즈 정상에 올려놓았고 그 해 포스트시즌에서 7경기 52.2이닝 4승(2완봉승) 1패 1세이브, 평균자책점 1.03이라는 경이로운 기록을 작성했다. 리그 챔피언십시리즈, 월드시리즈에서 모두 시리즈 MVP를 차지했다.
하지만 그런 범가너도 전성기가 영원히 이어지지는 않았다. 2017시즌 어깨 부상을 당한 것을 시작으로 기량 하락세에 접어들었다. 2017-2018시즌 2년 연속 130이닝 미만을 소화하는데 그쳤고 2019시즌에는 건강을 되찾아 34경기 207.2이닝을 소화했지만 9승 9패, 평균자책점 3.90을 기록하는데 그쳤다. 29세 시즌이던 2019년 범가너가 던진 207.2이닝은 사실상 전성기의 마지막을 불꽃에 가까웠다.
범가너는 2019시즌 종료 후 FA 시장에 나왔고 애리조나는 그에게 과감한 베팅을 했다. 하지만 2017시즌부터 불거진 불안요소는 30대에 접어들며 더 큰 문제로 나타날 것이라는 우려도 많았다. 그리고 그 우려는 현실이 됐다. 범가너는 애리조나 입단 후 단 한 번도 기대만큼의 활약을 하지 못했다.
냉정히 말하면 애리조나의 오판이었다. 범가너가 더는 예전의 그가 아니라는 징후는 많았다. 2017-2019시즌 3년 연속 평균자책점이 올랐고 기대 평균자책점도 매년 나빠졌다. 배럴타구 허용율, 강타 허용율, 스윗스팟 명중율, 기대평균자책점, 피기대가중출루율 등 거의 모든 기대지표가 계속 하락하고 있었다. 땅볼 유도 능력이 강점인 투수임에도 뜬공 허용이 늘어났고 헛스윙 유도는 줄어들었다. 하지만 애리조나는 범가너가 2019시즌 다시 200이닝을 던졌다는 것과 그의 이름값에만 주목했다.
결국 과감한 투자는 재앙이 됐다. 범가너는 단 한 번도 에이스 역할을 해내지 못했고 2017-2019시즌 3년 연속 위닝시즌을 기록했던 애리조나는 범가너 영입과 함께 3년 연속 루징시즌을 기록하는 '꼴찌 팀'으로 전락했다. 사치세를 걱정할 수준의 돈을 쓰고 있는 팀은 아니지만 범가너의 잔여 연봉은 내년시즌까지도 애리조나 팀 재정 운영에 걸림돌로 남게 됐다.
30세 시즌부터 기량이 완전히 떨어진 범가너는 이제 33세. 오는 8월 34세가 된다. 30대 중반에 접어든 만큼 반등을 기대하는 것도 쉽지 않다. 200이닝 이상을 투구하던 이닝 소화력도 이제는 한 경기 4-5이닝을 소화하는 것이 고작인 수준이 됐다. 그야말로 성적과 무관하게 선발진의 '머릿수'만 채워주는 임시 선발 이상의 활약을 기대하기 어려운 투수가 됐다.
리그를 지배하는 선수였지만 범가너도 결국 세월을 거스르지는 못했다. 최악의 시즌을 거듭한 끝에 소속팀에서도 퇴출 통보를 받았다. '가을의 전설'은 이제 옛 추억 속에만 남아있는 모습이 됐다.(자료사진=매디슨 범가너)
뉴스엔 안형준 markaj@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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