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 건물, 통째로 실어 나른다"... 도심 전체가 '3㎞ 이사' 하는 스웨덴 소도시
편집자주
인류와 지구를 위해 새로운 시도를 하는 유럽의 마을과 도시를 탐험하는 기획을 신은별 베를린 특파원이 한 달에 한 편씩 연재합니다.
스웨덴 최북단에 위치한 도시, 키루나. 이곳은 존재하기 위해 사라져야만 한다. 그야말로 역설적 운명에 처한, 인구 2만 명도 안 되는 소도시다.
사연은 이렇다. 스웨덴 국영 광산 기업 'LKAB'는 1900년대부터 키루나에 풍부하게 매장된 철광석을 캐기 시작했다. 100년쯤 흐르니, 땅이 꺼지기 시작했다. '시청 등 주요 시설이 몰려 있고, 주민들이 모여 살던 원도심(도시의 형성·발달 과정에서 최초로 도심지 역할을 한 지역)이 수십 년 안에 폭삭 내려앉는다'는 계산이 나왔다. 2004년 LKAB와 키루나시는 "원도심을 버리고, 신도심을 만들어야 한다"는 결론을 내렸다.
그로부터 19년이 흐른 지금, 이들의 '과감한 도전'은 잘 진행되고 있을까. 지난달 26일(현지시간) 키루나를 찾아 직접 확인해 봤다.
철광석 채굴 100년... "도심 침하, 당장 피합시다!"
"광산 채굴로 인해 도심이 가라앉고 있습니다. 우리는 20~25년 안에 도심을 떠나야 합니다. 당장 도심을 옮겨야 합니다."(2004년 키루나시 보도자료 내용)
키루나 주민들은 19년 전 시의 깜짝 발표를 아직도 기억하고 있었다. 그만큼 도시 안팎에 충격적인 뉴스였다. 일단 사업 규모가 유례없이 컸다. 20만 ㎡에 걸쳐 2,500~3,000개 공간을 부수고, 그만큼을 새로 지어야 했다. 이사 대상자만 약 6,000명. 도시 인구 전체(약 1만8,000명)의 3분의 1이 삶의 터전을 옮겨야 했다.
원도심 지반 침하가 심각하다는 건 어느 정도 예상된 바였다. 광산 중심부에서 도심까지의 거리가 불과 2~3㎞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유럽 최대 철광석 회사인 LKAB의 채굴량이 어마어마했다. 해마다 키루나에서 2,600만 톤의 철광석을 캐냈다. 에펠탑 6개를 만들 수 있는 분량을 매일 채굴한 셈이다. 지반 침하는 가속화할 수밖에 없었다.
'초대형 싱크홀' 위에서 살아갈 순 없는 노릇이었다. 일부 건물에선 갈라짐 등 붕괴 전조 현상도 보였다. 그렇다고 LKAB에 '채굴 중단'을 요구할 수도 없는 형편이었다. 주민 상당수가 LKAB와 직·간접적 관계를 맺으며 생계를 이어간 탓이다. 키루나시에 따르면, 약 2,000명이 LKAB에서 근무한다. LKAB를 대상으로 한 운송업, 요식업 등으로 범위를 넓히면, 키루나에서 LKAB 영향권 밖에 있는 이가 드물다. 이곳에서 평생을 살았다는 유엘은 "철광석이 키루나뿐만 아니라 스웨덴을 먹여 살리는 자원이라는 점도 주민들 선택에 고려됐을 것"이라고 말했다. 좋든 싫든, 주민 대다수가 동의했고, '도심 이전 프로젝트'가 시작됐다.
달라진 도심 풍경... '목조 교회 이사'는 고난도 과제
2023년 현재, 도심 풍경은 이미 많이 바뀌었다. 기차역은 2017년 철거됐고, 3㎞쯤 떨어진 곳에 새 역이 생겼다. 물론 아직도 역 위치를 헷갈려하는 경우가 많다. "철도역 위치가 바뀌었으니 꼭 확인하라"는 안내문이 도시 곳곳에 붙어 있다.
1958년 만들어진 시청도 사라졌다. 대신 4㎞가량 거리에 새 청사가 생겼다. 덴마크 기반의 유명 건축사무소가 설계한 새 시청은 옛 청사보다 수십 배 크고 화려하다. 원도심의 상점들 역시 대부분 문을 닫았다.
도시엔 공사 현장의 소음이 가득했다. 원도심에선 건물 철거 작업이, 신도심에서는 새 건물을 짓는 작업이 한창이다. 무릎까지 눈이 쌓인 도로를 굴삭기 등이 끊임없이 오갔다. 키루나의 도시 계획을 총괄하는 니나 엘리아손 수석건축가는 27일 한국일보 인터뷰에서 "전체 사업 중 절반 정도 진행됐다"고 했다.
그중 최대 과제는 '키루나 교회' 이전이다. 교회는 1912년 원도심에 들어섰다. 1900년대 초 철광석 채굴에 기반해 도시가 부흥할 때부터 자리를 지킨, 키루나의 상징적 건축물이다. 아름답기로도 유명하다. 붉은 목조 건물인 교회는 뾰족하게 뻗은 지붕, 그 주변에 달린 12개의 황금 조각 등이 특징이다. 한때 '1950년 이전 만들어진 가장 인기 있는 목조 건물'로 뽑혔다.
이처럼 귀한 건물을 부술 수는 없었다. 나무를 일일이 조립해 만든 탓에 '해체 후 재조립'도 불가능에 가까웠다. 그래서 "통째로 옮기자"는 결론이 내려졌다. 800명 정도를 수용할 수 있는, 600톤 규모의 거대한 건물을 실어 나르는 것은 고난도 작업이다. 대형 트레일러를 구하고, 길도 새로 내야 한다.
모든 걸 완벽하게 준비해도, 이동 중 건물이 붕괴되거나 훼손될 위험을 배제할 순 없다. 이에 2026년 이사를 앞두고 교회도 잔뜩 긴장 중이다. 교회 관계자는 "전문가들을 믿지만, 어떻게 100% 안심하겠는가"라고 반문했다.
"첫 단추 '꼼꼼히' 끼워야"... '협상의 늪'서 얻은 교훈
도심 이전 사업을 주도하는 건 LKAB다. 철광석 채굴에서 비롯된 일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키루나시의 부담도 상당했다. 전체 스케줄을 짜고, 이에 따른 행정 절차를 진행하며, 무엇보다 LKAB와 주민 간 협상이 원활하게 이뤄지는지 등을 관리해야 할 의무가 있었다.
사업 초기엔 '큰 무리 없이 진행될 것'이라는 낙관론도 많았다고 한다. 건물 철거 등과 관련해 가장 어려운 부분으로 꼽히는 주민 동의 절차가 비교적 수월했다. LKAB가 "보상을 충분히 하겠다. 이전 비용도 모두 대겠다"고 한 탓에 '돈 걱정할 일'이 없었다.
그러나 이는 오산이자, 오만이었다. 진행 단계마다 어려움이 닥쳤다. "원도심에서 신도심으로 터를 옮기는 이들에게 원도심과 같은 규모의 부지, 건물을 제공하겠다"는 LKAB의 제안엔 합의가 이뤄졌는데, 이후 '누구에게, 어떤 장소를, 어떻게 분배하는 게 공정한가' 등을 둘러싼 논의는 공전을 거듭했다.
신도심 이사를 원치 않는 원도심 주민들에겐 어떤 보상을 할지에 대해서도 의견이 잘 맞지 않았다. 미국 기반 언론 '크리스찬사이언스모니터'는 2014년 "키루나시의 안 카트린 프레드릭손 법률 고문은 LKAB와 보상 체계를 합의하는 데에만 1년을 썼다"고 보도했다. 지난한 과정을 거쳐 LKAB가 시세보다 25% 높은 가격으로 부지, 건물을 매입하는 것으로 결론이 났다.
'이전 비용 전액 부담'을 약속한 LKAB에게 정작 영수증을 내밀면 '이것까지 부담하는 건 과하다'는 반응을 보일 때도 있었다고 한다. '공사 현장 인부들의 숙소 비용은 누가 대야 하느냐' 등 예상하지 못했던 이슈가 계속 터져 나왔다. 엘리아손 수석은 "초기 계약 단계에서 최대한 많은 경우의 수를 고민하고, 이를 계약서에 기재했어야 했다"고 지적했다.
'소수민족 의사 배제' 잘못도... "우리 경험, 피와 살 되리"
도심 이전 사업이 최종적으로 마무리되는 시점은 2035년. 그러나 키루나시에선 "이미 너무 많은 것을 배웠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예민한 사안의 협상 과정에서 주민 신뢰를 잃지 않는 법을 익힌 건 큰 수확이다. 엘리아손 수석은 "LKAB나 키루나시 입장에서 볼 땐 '이사 대상자 6,000명 중 1명'이지만, 당사자로선 '삶이 흔들리는' 일"이라며 "모든 정보를 투명하게, 실시간으로 공유하는 게 가장 중요하다"고 했다. LKAB와 키루나시는 거의 모든 의사결정을 홈페이지 등에 공개하고, 주민 상담 전용 '핫라인'도 운영한다.
원도심에 대한 기억을 간직하는 게 중요하다는 것도 배웠다. 엘리아손 수석은 "당장 별다른 의미가 없어 보이는 건물과 공간이라도, 그것을 철거하는 게 주민 한 사람 한 사람에겐 아픔일 수 있다는 것을 알았다"며 "건물들을 사진으로 촬영하고, 그곳에 담긴 역사 등을 문서로 정리해 주고 있다"고 말했다. 스웨덴 옛 시청에 있던 종탑은 새 청사 건물에 재활용되기도 했다.
잘못도 새삼 깨달았다. 도심 이전 계획 수립·진행 과정에서 소수민족 '사미족'의 의견을 간과한 게 대표적이다. 사미족은 스웨덴 정부가 공인한 토착 민족으로, 인구는 2만 명 정도로 추산된다. 이들은 순록과 유목 생활을 하는데, 일부 경로가 키루나를 지난다.
그러나 LKAB와 키루나시는 이 사업이 사미족에 미칠 영향을 고려하지 않았다. 사미족의 대표기구인 사미의회에서 의장을 맡고 있는 스테판 미카엘손은 "도심 이전은 지방자치단체 등 '주류'의 결정이었고, 우리 입장이 반영될 틈은 없었다"고 아쉬움을 표했다. LKAB와 키루나시는 늦게나마 이를 반성했고, 올 초부터 소통을 확대했다.
키루나시는 이런 잘못들도 꼼꼼하게 기록해 두려고 한다. 시행착오를 통해 배운 것들이 다른 도시, 지역에 피와 살이 될 것이라는 확신이 생겼기 때문이다. 엘리아손 수석은 "기후변화로 인한 해수면 상승 탓에 사라질 위험에 놓인 도시가 많다. 전쟁 중인 우크라이나도 도심 재건 사업이 필요할 것"이라며 "도심 이전 수요가 많아질 미래에 우리의 사례가 교본이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키루나(스웨덴)= 신은별 특파원 ebshi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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