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년 전에도 두 차례 비극… '우울증 커뮤니티' 성착취 덫이었나

최다원 2023. 4. 22. 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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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울 호소 미성년자 심리적 지배 성관계 요구
유사 마약· 약물 이용… 의제강간 의혹도 제기 
"커뮤니티 자정 작용 강화해야" 목소리 커져
게티이미지뱅크

최근 서울 강남에서 10대 여학생이 ‘라이브 방송’을 켜놓고 추락해 숨진 가운데, 숨진 학생이 활동했던 온라인 커뮤니티 디시인사이드 ‘우울증 갤러리’에서 그루밍(길들이기) 성범죄가 빈번하게 저질러졌다는 의혹이 커지고 있다. 2년 전 우울증 갤러리 회원 2명이 극단 선택을 했던 것도 성착취 때문이란 증언도 나왔다.


신뢰 쌓은 뒤 성관계 요구

21일 한국일보 취재를 종합하면, 2021년 우울증 갤러리 여성 회원 2명이 7개월 사이 잇달아 목숨을 끊은 것으로 파악됐다. 우울증 갤러리는 우울증에 대한 정보 교환을 목적으로 디시인사이드 내에 개설된 하위 커뮤니티다.

사망한 두 여성과 갤러리에서 함께 활동했다는 제보자들은 “이들이 생전에 다수의 성인 남성 회원들로부터 성관계를 목적으로 한 가스라이팅(심리적 지배)에 시달렸다”며 “그런 만남이 반복되면서 우울증이 심화된 것 같았다”고 전했다.

디시인사이드 우울증 갤러리 캡처

우울증 갤러리에선 성착취가 비일비재했다는 게 제보자들의 공통된 목소리다. 가해자들은 우울감을 호소하는 청소년들이 정서적 안정감을 얻으려고 커뮤니티를 찾는다는 점을 노렸다. 가해자들은 의도적으로 접근해 숙식을 제공하거나 고민을 들어주며 심리적 장벽을 허물었다. 의료법상 만 18세 미만이 처방받을 수 없는 향정신성 의약품도 제공했다. 물론 그 대가는 성관계였다.

하지만 가해자에게 의존하게 된 피해자들은 이를 정상적인 교제나 원하는 것을 얻는 대신 성관계를 해준다는 식의 거래로 착각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피해자 중에는 만 16세 미만 청소년이 있다는 폭로도 나왔다. 현행법상 만 16세 미만과 성관계를 하면 동의 여부와 상관없이 의제강간죄로 처벌받는다.


과거부터 만연, 다른 플랫폼 안전지대 아냐

제보자들은 술이나 약물로 미성년자를 인사불성 상태로 만든 뒤 성범죄를 저지르는 일도 있었다고 털어놨다. 한 회원은 “2021년 말부터 수면제 성분을 술에 타마시는 행위가 유행했다”며 “피해를 본 여성들이 강간으로 고소한 사건도 있었다”고 했다.

이런 범죄가 꽤 오래전부터 있었던 정황도 포착됐다. A씨는 고교 1학년이던 2003년, 학교폭력 피해로 우울증을 앓다가 디시인사이드 갤러리에 “죽고 싶을 만큼 괴롭다”는 글을 올렸다. 그러자 20대 후반 남성으로부터 “만나서 상담해주겠다”는 연락을 받았다. 음식점에서 만난 남성은 술을 마셔본 적이 없는 A씨에게 소주를 계속 권했다. A씨는 얼마 지나지 않아 의식을 잃었고 모텔에서 성폭행을 당했다. 피해자는 한국일보에 “그땐 고소 같은 건 생각도 못했으며, 충격으로 일상생활이 더 어려웠다”고 토로했다.

디시인사이드뿐 아니라 다른 플랫폼도 안전지대는 아니었다. B씨는 딸이 트위터를 통해 만난 남성에게 1년 10개월간 그루밍을 당하다 2021년 9월 극단 선택을 했다고 전했다. B씨는 한국일보에 “상대 남성은 딸에게 가출 후 가족과 연락을 끊을 것을 요구하는 등 정상적인 사회 생활을 어렵게 만들었다”고 밝혔다. 유족은 남성을 고소했으나 죽음과 직접적인 혐의점이 발견되지 않아 무혐의 처리됐다고 한다.


경찰, 내사 착수 등 수사 확대

한국일보 자료사진

온라인 커뮤니티는 같은 종류의 병을 앓는 사람들이 모여 경험을 공유하고 조언해준다는 측면에서 범죄의 온상으로 볼 필요는 없다. 그러나 운영사가 좀더 적극 모니터링을 하는 등 감시 체계를 강화할 필요가 커보인다. 전덕인 한림대성심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우울증 환자들은 심리적으로 취약해 가스라이팅 범죄에 취약한 경향이 있다”며 “대화 주제가 우울증을 악화하거나 범죄로 이어지지 않도록 ‘건전한 통제’가 있어야 한다”고 당부했다.

경찰도 우울증 갤러리의 부작용이 드러난 만큼 범죄 연관성을 살펴보고 있다. 서울 동작경찰서는 우울증 갤러리 활동가들의 모임인 ‘신대방팸’에 대해 입건 전 조사(내사)에 착수했다. 신대방팸은 동작구 신대방동 주택에 함께 거주하는 이들의 모임(패밀리)으로, 이곳이 성폭력과 약물 오남용의 근원지라는 의혹이 최근 제기됐다. 그러나 신대방팸의 한 회원은 “우리는 친목 모임일 뿐인데 일부 회원이 루머를 퍼뜨리는 것”이라며 “명예훼손으로 고소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강남경찰서도 최근 방송통신심의위원회에 디시인사이드 내 우울증 갤러리의 일시 차단을 요청했다.

최다원 기자 da1@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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