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중화요리, 이미 와 있는 미래
’진지아’ 최형진 셰프
‘현지에서 먹힐까?’라는 프로그램이 있었다. 오너셰프 이연복과 주방을 보조하는 연예인들이 미국과 중국 현지에서 짜장면, 짬뽕, 탕수육, 깐풍기 같은 메뉴를 푸드트럭에서 파는 예능이다. 짬뽕은 호불호가 갈리지만 짜장면을 비롯한 다른 메뉴들은 현지인들로부터도 호평을 받았다.
사실 짜장면의 세계화는 내 아이디어였다. ‘중화’가 없는 한국 중화요리를 비판한 ‘짜장면뎐: 시대를 풍미한 검은 중독의 문화사’(2009)에서 짜장면의 세계화 가능성을 언급하면서 “한국 짜장면이 중국인들과 세계인들에게 어떤 평가를 받을지 지켜볼 일이다”라고 썼다. 물론 제작진이 내 책에서 아이디어를 얻었는지는 확인할 길이 없다. 그런데 한국의 중화요리는 정말 현지에서 먹힐까?
최근 미국에서 한국 중화요리에 대한 수요가 빠르게 늘고 있다. 이미 미국 애리조나의 주도 피닉스에 한국 중식당이 개업을 앞두고 있다. 미국 최고의 휴양 도시이자 백인 보수층 거주지인 스코츠데일이 지척이다. 인테리어 비용만 20억원이 넘는 대공사도 막바지다. 한국에서 파견할 직원 선발도 마쳤다. 1970년대 서울 동부이촌동에서 시작한 전설적인 중식당 홍보석의 메뉴를 재해석한 한국식 중화요리를 선보일 예정이다. 한국과 미국을 오가며 한국 중화요리를 세계에 알리는 꿈을 이룬 이는 최형진 셰프이다. 이연복의 수제자이기도 하다.
최형진과의 인연은 오래다. ‘짜장면뎐’을 읽은 최형진이 먼저 전화를 걸어왔다. 당시 홍보석 수석 셰프이자 한국중식연합회 부회장을 맡고 있던 최형진과 중화요리에 대해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의기투합하는 사이가 되었다. 최형진은 싱가포르 세계중화요리대회 2관왕으로 실력을 인정받았다. 글로벌 중식 브랜드 피에프창(P.F.Chang’s)의 높은 문을 두드려 롯데월드몰에 아시아 1호점을 유치한 경영자이기도 하다. 지금은 여러 방송에 출연하면서 유명해졌지만 온화한 표정과 겸손한 태도는 처음 그대로다.
최형진은 현재 송리단길 ‘진지아’의 오너셰프다. 가정식 중화요리를 선보이는 진지아에는 짜장면과 짬뽕이 없다. 한국 중화요리의 낡은 틀을 탈피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골목 식당부터 고급 호텔까지 짜장면과 짬뽕의 매출 비중을 생각하면 쉽지 않았을 도전이다. 그래도 진지아에는 늘 사람들이 붐빈다.
진지아의 시그니처 메뉴는 마라곱창전골(3만2000원)이다. 사천요리 마라탕을 새롭게 해석하고 한국인이 좋아하는 직화 곱창을 푸짐하게 올린 메뉴다. 진지아는 전국적인 마라 열풍의 진원지이기도 하다. 마라(麻辣)의 기본 재료는 산초나무 열매 화초와 고추다. 얼얼한 맛 ‘마’는 화초에서, 매운 맛 ‘라’는 고추에서 나온다. ‘마’와 ‘라’의 배합에서 마라탕의 맛이 결정된다. 마라곱창전골은 ‘마’와 ‘라’의 절묘한 배합의 결과이다. 고유의 풍미를 지닌 2만~3만원대의 요리류(해산물냉채, 쯔란등갈비, 망고크림새우, 몽골리안비프, 어향가지볶음, 삼선해물누룽지전골), 1만원대의 식사류(게살볶음밥, 마파두부덮밥, 새우완탕면, 마장면)도 합리적인 가격에 즐길 수 있다.
19세기 말부터 해방 전까지 중화요리는 중국인이 만들고 중국인에 의해 소비되었다. 해방 이후부터 1970년대 초반까지 한국 외식 문화를 이끌었던 중화요리는 중국인이 만들고 한국인이 소비하는 음식이었다. 화교들이 주방을 떠나기 시작한 1970년대 중반부터 중화요리는 한국인이 만들고 한국인이 소비하는 음식이 되었다. 그렇다면 중화요리의 4단계는 어떤 모습일까?
중화요리를 먹을 때 한없이 행복한 한 사람의 시민이자 연구자로 중화요리가 한국인이 만들고 세계인이 소비하는 음식이기를 소망한다. 140년이 넘도록 한국인과 희로애락을 함께 한 K중화요리는 그만한 자격이 있다. “미래는 이미 와 있다. 단지 널리 퍼지지 않았을 뿐이다.” 미국의 SF 작가 윌리엄 깁슨의 말이다. K중화요리는 이미 와 있는 미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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