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말로 문건 정리, 노동 고민은 없어… 민노총은 괴물이다”
21세기에 간첩이 있겠냐고 생각하는 사람이 의외로 많다. 윤석열 대통령도 참모진에게 “간첩이 이렇게나 많나”라고 되물었다고 한다. 그런데 있다. 우리가 살고 있는 대한민국에.
올해 초 민노총 전·현직 간부 4명이 북한 공작원을 접촉해 지령을 받은 사건이 터졌다. 구속영장을 보면 굉장히 구체적이고 치밀하다. 수년간 100여 차례 대북 보고문, 대남 지령문 등을 주고받았다고 한다. 북한 공작원은 작년 10월 핼러윈 참사 이후 ‘퇴진이 추모다’를 포함한 반정부 시위 구호도 직접 적어줬다. 북한 지침이 일상 가까운 곳까지 파고든 것이다. 하지만 민노총은 ‘윤석열 정부의 종북 몰이’라고 한다. 사과나 반성은 한마디도 없다. 오히려 정부를 겁박하며 ‘총파업’을 예고하고 있다. 야당도 “공안 정국의 부활”이라며 민노총 편을 들었다. 그러는 사이 민노총 간첩단 연루 사건은 서서히 잊히고 있다.
지난 13일 서울 여의도 한 사무실에서 만난 민노총 출신 이수봉 동서미래포럼 전략연구원 부원장은 “이 사건을 우습게 보면 안 된다”고 했다. 또 “우리나라가 경제적으로 성공했다고 해서 북한을 이겼다고 생각하면 큰 오산”이라며 “사상적 측면에서는 현시점에서 우리가 완패다. 북한이 민노총 등을 이용해 수십 년 동안 대남 의식화 사업을 해온 결과가 사회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1995년부터 민노총에서 대변인, 정책연구원 원장, 사무부총장 등 상근 간부를 지내며 내부 활동에 깊숙이 관여해왔다. 그러다 민노총이 노동운동의 근본적 개혁을 이뤄내지 못하고, 민주당 또한 여기에 동조하는 현실에 환멸을 느껴 2012년 말 민노총과 결별했다. 당시 대선을 앞두고 민노총 소속 5000명과 함께 안철수 무소속 후보 캠프에 합류하며 정치에 발을 들였고, 이후 국민의당, 민생당에서 인천 지역 국회의원, 서울시장 선거 등에 출마했다. 이번 인터뷰는 간첩단 사건을 계기로 민노총을 떠난 지 10년여 만에 꺼내놓은 내부 고발이다.
-민노총은 공안 탄압이라고 주장한다.
“간첩단 사건은 팩트다. 북한의 구체적 지침을 받았다. 지도부는 사과해야 한다. 간첩을 색출하겠다고 약속하고 재발 방지책을 마련해야 한다. 그러나 민노총은 윤석열 정권 퇴진과 총파업을 노선으로 정했다. 보통 심각한 문제가 아니다. 국민이 민노총을 북한의 지침을 받아서 움직이는 조직으로 인식하고 있는데도 자정 노력이 없다. 그 사람들을 보호하면 결국 이적단체로 찍힌다.”
-민노총 조합원이 120만명이다.
”조합원도 손을 놓고 있을 일이 아니다. 개혁을 요구해야 한다. 안 되면 탈퇴하는 쪽으로라도 지도부를 압박해야 한다. 그러나 무감각하다. 심각성을 모른다. 보수 정권의 ‘공안 몰이’라는 프레임이 먹히는 것이다. 묻고 싶다. 윤석열 정부가 고문을 했나? 이건 팩트다.”
-간첩 활동이 어떻게 가능했을까.
“민노총은 지금도 주사파가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인천, 경기동부, 울산, 광주·전남 등 4대 연합 조직은 이런 정파적 규율을 중요하게 여긴다. 이것을 기초로 하고 성실하고 착한 헌신적인 활동가가 움직인다. 이렇게 조직이 현장에서 서서히 민노총 밑바닥을 장악해간 것이다.”
-민노총 간부가 미군기지를 촬영해 북에 넘겼다고도 한다.
“민노총 중앙 간부면 현장 곳곳을 다 들여다볼 수 있다. 조합원들이 정부 기관, 기업에 다 포진해 있는데, 뭘 못 하겠나. 북한 손아귀에 다 노출돼 있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이번 사건은 문재인 정권에서 일어났다.
“민노총 세력이 커진 건 정권의 영향이 컸다. 민노총 주사파들은 김대중 정부의 햇볕 정책을 타고 굉장히 좋은 조건에서 활동했다. 급속도로 세가 확장된 시기다. 민주당과 결탁했다. 서로 적당히 눈감아 주면서 이해를 채웠다. 민주당 입장에서는 민노총이 표이자 돈이다. 10만원씩 후원금을 만들어주는 건 일도 아니다. 민주화 운동권 세력 중 민노총의 현실을 아는 사람이 없었겠느냐. 그냥 타협한 것이다.”
-내부에서 문제의식은 없었을까.
“사무부총장을 지낼 때 일이다. 정책기획실에 사업계획을 가져오라고 하면 북한 쪽 얘기를 그대로 써왔다. 노동 현실에 대한 고민이나 시장 개혁에는 전혀 관심이 없었다. 한·미·일 동맹 반대, 민족 자주 투쟁이 기본 관심이었다. 또 내부 보고서에 북한 방송의 지침을 그대로 사용하는 경우가 많았다. ‘고립시켜 타격, 섬멸해야 한다’는 표현들을 써서 문건을 정리해왔다. 단어도 그렇지만 이 내용을 조합원들이 알까 무서웠다.”
-노동 문제가 담기지 않았다는 건 좀 충격이다.
“북한은 민노총의 노동운동을 이해하지도 못하고, 또 이해할 필요도 없다. 그 논리를 따라가다 보니 민노총이 주한미군 철수, 남북 평화 통일, 민족교류 같은 것만 더 외치게 된 것이다.”
-이런 일이 가능할 수 있나.
“상층부가 진행하는 대의원 대회에서조차 어떤 문제 제기도 없었다. 어차피 강경한 파업 노선을 바꾸기는 어렵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현장 조합원 정서와 점점 동떨어져 갔다. 이게 지금 민노총의 현실이다.”
-간첩 활동이 위협적이지 않게 느껴진다.
“큰 문제다. 적어도 몇 십년 동안 북한의 대남 의식화 사업이 먹힌 것이다. 일례로 이승만을 독재자라고만 믿는 것이다. 공산주의에 맞서서 자유민주주의 국가로 만든 대통령으로 생각하지 않는다. 박정희도 군부 독재자라고만 생각한다. 그 시절 공산주의와 맞서 싸운 게 어떤 의미인지는 전혀 모른다. 북한, 좌파 논리에 설득당했다.”
-또 어떤 게 있나.
“영화에서도 미국, 일본은 악마로 표현한다. ‘괴물’에서는 미군이 독성물질을 한강으로 흘려보내면서 괴물이 등장하고, ‘리멤버’에서는 백선엽 장군을 모티브로 한 주인공을 총살한다. 역시 북한의 논리를 그대로 투영한 것이다. 북한은 민노총 등을 이용해 계속해서 이런 의식화 작업을 하고 있다. 수십 년이 누적되면 역사의 진실도 바뀐다.”
-윤석열 정부가 민노총 개혁에 칼을 빼들었다.
“민노총은 오히려 정부를 공격하고 있다. 이유는 하나다. 국민을 설득할 자신이 있는 것이다. 북한을 절대로 우습게 보면 안된다. 많은 이들이 망한 나라로 생각한다. 우리가 경제적으로 이겼다고 한다. 간첩을 보내봤자 무슨 힘을 발휘하겠냐고 한다. 절대로 그렇지 않다. 우리는 이미 북한에 사상적인 측면에서 밀리고 있다. 그래서 민노총도 사과하지 않는 것이다. 보수가 대안을 제시하지 못하고 국민을 설득하지 못하고 있다는 뜻이다.”
-이번에도 총파업을 예고하고 있다.
“민노총은 창조할 힘은 잃었지만 나라를 망하게 할 힘은 있다. 총파업만 들이밀면 자본가 쪽에선 뭔가 내놓는다. 그걸 아니까 총파업이라는 무기를 쓰는 거다. 그렇게 철밥통 기득권이 돼 간 거다.”
-수십 년째 같은 방식으로 정부를 압박한다.
“북한의 핵무기와 똑같다. 핵무기로 위협하면 미국도, 우리도 북한에 뭘 주면서 달래왔다. 그렇게 막대한 비자금이 북한으로 흘러 들어갔다. 북한이 정치적, 경제적으로 핵무기를 포기할 이유가 없다. 민노총도 총파업이란 무기를 해마다 사용한다. 그러나 결국 임금 극대화 노선에 이용하는 결과로 될 뿐이다.”
-민노총에 부정적인 시각도 많다.
“민노총이 괴물이 돼 버렸다. 민노총 노래 1절 가사가 ‘노동자가 주인 되는 날까지’다. 노동자가 주인이면 기업주는 노예가 된다. 안 맞는 거다. 마르크스 레닌주의에 근거한 노동운동은 이미 소련 붕괴로 인해 힘을 잃었다. 그런데도 민노총은 어떤 노동 이론도 정립하지 못하고 관념적으로 과격해져만 갔다. 현장에선 월급만 올려달라고 한다.”
-방법이 있을까.
“1990년대까지는 설득력이 있었다. 그러나 이대로면 기업도, 나라도 망한다. 정상적이지 않다는 걸 국민도 안다. 2009년에도 이런 문제의식 속에서 처음으로 기본소득을 주장한 책을 강남훈 한신대 교수 등과 함께 냈다. 2021년에는 4차산업에 따른 ‘제3정치 경제론’을 주장했다. 하지만 기본소득도 이재명 대표와 정치권으로 넘어가면서 변질, 선거용이 돼 버렸다. 사기를 치는 것이다. 그래도 노동구조 변화에 따른 노력이 계속돼야 한다.”
그는 현 정부에서 민노총의 위법 행위가 엄격하게 법의 심판을 받아야 한다고 했다. 간첩단 사건뿐 아니라 건설노조의 조폭적 행태도 분명한 원칙을 가지고 대응해야 한다는 것이다. 어설픈 타협은 잘못된 시그널이 될 수 있다는 점도 강조했다. “민노총과 대화는 쉽지 않을 거다. 대화가 잘돼서 우리나라 경제가 좋아지면 북한의 이익에 부합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파탄으로 끌고 갈 가능성이 높지만 그렇더라도 논의 테이블은 마련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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