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문난 집돌이·집순이, 결혼 10년 만에 캠핑족 된 사연

서효인·시인 2023. 4. 22. 0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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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주말]
[서효인의 주말에 뭐할까] 아이들 위해 뒤늦게 입문… 홍천강에서의 캠핑 예습기
일러스트=한상엽

강물에 부딪친 햇빛이 사방으로 흩어졌다. 이런 걸 윤슬이라 하던가. 눈이 부셔 손을 이마에 가져가 그늘을 만들었다. 그늘 사이로 다시 홍천강을 보았다. 본래부터 거기에 있던 것은 사람에게 경외감을 준다. 그것을 경치라 불러도 좋고, 뷰라 불러도 좋다. 그저 가만히 앉아 자연의 일부가 된다. 도시의 시끄러움과 일상의 번잡함을 잠시 놓아두면 이윽고 진짜 나를 찾는 시간이 올… 리가 없지.

둘째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린다. “아빠! 이리 와 봐!” 텐트 팩에 걸려 넘어진 걸까? 다른 사이트에서 시끄럽게 구는 건 아니겠지? 헐레벌떡 소리 나는 데로 뛰어간다. 둘째는 중앙 광장에서 줄넘기 중이었다. 방금 난생처음으로 줄넘기 10번에 성공했다나. 바로 옆 트램펄린에는 첫째가 한가운데에 앉아 다른 아이들의 반동에 몸을 맡긴 채 방방 웃고 있었다. 트램펄린보다는 방방이라 불러야 제맛이지. 어디 위험한 구석은 없는지, 다른 아이에게 방해가 될는지 유심히 살폈지만, 다행히 별일 없어 보였다. 아니, 별스레 즐거운 듯했다. 해는 기울어 노을을 만들었고, 윤슬은 더욱 아스라해져만 갔다.

캠핑장에 왔다. 코로나를 핑계로 주말 외출도 여러 해 삼갔다. 사실 코로나는 그럴싸한 핑계에 불과했다. 우리는 교제할 때부터 야외 활동을 즐기지 않는다는 점에서 꽤 잘 맞았다. 카페에 들어앉아 책을 읽거나 그게 아니면 영화관에 갔지, 여행은 생각해보지 않았다 캠핑은 말할 것도 없었다. 그러나 아이 둘의 부모가 된 지금, 우리의 옛 취향 같은 게 뭣이 중하겠는가.

시작은 첫째 아이의 습관을 잡는 데서부터였다. 다운증후군을 안고 태어난 아이는 크면서 심리적 문제인지 본래의 성격인지 사소한 강박을 보였다. 이른바 ‘루틴’이라는 걸 만들어 지키려고 하는데 가령 이런 거다. 거실 전등은 꼭 켜져 있어야 하며, 현관 중문은 계절을 불문하고 꼭 닫혀야 한다. 물건을 찾기 위해 서랍을 잠시 열어두는 것도 용납할 수 없고, 마트든 학교든 가던 길로만 가야 한다. 녀석은 그만의 규칙이 깨질 때마다 엉엉 울거나 자리에 주저앉아 고집을 부린다.

지금까지는 그러려니 넘겼지만, 앞으로 이러한 성향이 더 강해지면 일상생활에 좋을 리 없을 것이었다. 아이 스스로 만드는 규칙을 깨고, 아이를 좀 더 자유롭게 하는 방법이 무얼까? 주변 선생님께 여쭤보고 또 자문해본 결과, 여행이 답이었다. 여행 중에서도 각종 변수에 유연하게 대처해야 할 일이 많은 캠핑이 제격이었다. 이러한 사정으로 우리 부부는 뒤늦게 캠핑에 입문하게 된 것이다. 게다가 둘째가 언제 사춘기에 입문할지 알 수 없는 노릇이다. 가면 갈수록 아이들에게 애정을 갈구하는 게 일인데, 애정할 수밖에 없게끔 좋은 추억을 남기는 거다! 이렇게 양가의 소문난 집순이, 집돌이가 만나 결혼 10년 만에 캠핑 다니게 되었습니다, 하는 이야기.

결말이 ‘행복하게 오래오래 살았습니다’가 될지는 모르겠다. 철저한 준비가 먼저였다. ‘초보 캠핑’을 키워드로 검색에 힘썼다. 내가 모르는 세계가 펼쳐졌다. 텐트와 버너 정도 있으면 되려나 싶었는데 그게 아니었다. 갖가지 캠핑용품들은 잠들어 있던 나의 물욕을 깨웠다. (나의 물욕은 사실 잠든 적이 없다. 이미 깨어 있었고, 종목만 바뀌었을 뿐). 장바구니에 수많은 물건이 들락날락했다. 그러던 중, 일단 글램핑이라도 가서 예습부터 하라는 이름 모를 캠핑 선배의 조언을 댓글에서 본 것이다. 행복하게 오래오래는 몰라도 홍천강 윤슬 앞에서의 한순간은 행복했다. 아, 갈 만하겠다 캠핑. 글램핑이랑은 완전히 다른 차원의 것이겠지만, 도전해볼 만하겠다, 캠핑. 이런 다짐과 함께.

캠핑존을 슬쩍 둘러보니 각양각색의 텐트가 멋들어지게 서 있었다. 폴대를 당기고 팩을 박는 아빠들의 능숙함이 얼마나 멋지던지…… 나도 그들처럼 할 수 있을까? 글을 쓰고, 출판사에서 일한다는 이유로 속절없이 나약해진 어깨와 허리와…… 몸뚱어리 전반이 걱정이다. 텐트를 세우고, 세팅을 마친 그들은 자연스러운 순서라는 듯 화로에 불을 붙였다. 나도 예습하러 온 자의 겸손함을 바탕으로 신중히 따라 했다. 대여한 화로에 장작을 넣고 토치로 불을 쏘았다. 불이 좀처럼 안 붙어 끙끙대다 겨우 성공했다. 둘째가 손뼉 치고 좋아했다. 첫째는 주머니에 손을 넣고 캠핑 의자에 최대한 편안한 자세로 앉아 불을 구경했다. 첫째가 저렇게 의젓하고 얌전하게 앉아 있는 건 오랜만이다. 저 한 장면만으로도 이번 예습은 성공한 것 같기도 하다.

어디서 본 건 있어 해남 고구마에 포일을 둘러 화로에 넣었다. 화로에 넣는 건 보았는데, 언제 꺼내는지는 못 본 게 함정이었다. “고구마가 언제 익을까?” “고구마 맛있겠지?” “고구마 이제 먹을 수 있어?” 시간차로 보채는 아이를 점잖게 타이르며 아직이라고 했다. 사실 언제가 적절한지 몰랐다. 그냥 나도 능숙한 척을 해보고 싶었을 뿐이었는데…… 한참 뒤 꺼낸 고구마는 그 형체를 알아보기 힘들었다. 시커멓게 타서 재만 남아버렸다. 둘째는 가방에 놓아둔 휴대전화를 뒤적뒤적 꺼내더니 고구마 사진을 찍는다. 그리고 제목을 붙인다. ‘지옥에서 온 고구마’.

다음 날 철수할 텐트가 없기에 조금은 여유롭게 주변을 산책할 수 있었다. 각자의 텐트 아래에서 아침을 준비하는 사람들의 등허리로 아침 해가 온기를 넣어주었다. 아파트 놀이터에서는 만날 실패했던 줄넘기가 캠핑장에서는 이상하게 잘 된다고 둘째는 뿌듯해했다. 첫째는 어제 사람이 많이 양껏 타지 못한 그네에 앉아 발을 동동 굴렀다. 아, 조금은 괜찮은 것 같았다. 도시의 시끄러움과 일상의 수고로움이 아이들과의 캠핑으로 모두 사라지진 않을 것이다. 되레 더 신경 쓸 게 많겠지만, 앞으로가 기대된다. 기대에 찬 상념에 잠기는데 다급한 아이의 목소리. “아빠 이리 와 봐!” “그래! 간다, 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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